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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Sep 28. 2020

캘리포니아에서 온 멜로디 아줌마

학교에 입학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언어 교환 짝꿍을 구하는 일이었다. 보통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는 학생들이 별로 없다고 했는데 신기하게도 신청하고 그다음 주에 짝꿍이 정해졌다며 연락이 왔다. 내 짝꿍은 학부 2학년 여자였다.  막 BTS가 타임스퀘어에서 공연을 하고, 시상식에서 무대를 하던 떄라 나이를 보니 혹시 방탄소년단 팬인가? 주위에 아미들에게 도움을 구할 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메일을 주고 받고 도서관 1층 카페에서 만난 날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엄마가 한국에서 아주 어릴 때 입양되셨어. 그래서 난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궁금해.”


금발 머리 미국 아가씨 입에서 나온 대답이 엄마가 한국에서 입양되신 분이라니. 유전자는 정말 오묘한 것이다. 말하지 않으면 전혀 모르겠다고 했더니, 동생은 완전 한국 사람 같다며 가족사진을 보여줬다. 유전자는 정말 놀랍도록 동생에게만 한국의 흔적을 남겨놓았다. 역시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 특히나 미국에서는 말이다.


몇 주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다가 용기를 내서 그녀에게 제안했다.      


“어머님이 학교 오시게 되면 우리 집에 와서 한국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     


흔쾌히 알겠다고 하고 2주쯤 지나서였을까, 어머니가 학교에 오신다며 수업이 없는 날 점심을 먹자고 연락이 왔다. 요리를 잘하지 못하지만, 영혼을 끌어모아 한국의 맛을 전파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보쌈이랑 두부김치를 포함한 몇 가지 한식을 만들었다. (산 것도 많다. 한인마트 만세!) 

유학생이 영혼을 끌어모아 준비한 손님 초대 데코레이션. 1년짜리 유학생의 단촐한 짐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문이 열리고,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가 집에 들어왔다.      


“Nice to meet you, I’m Melody!”     


오우, 유쾌한 멜로디 아줌마. 정말 동네에서 오며 가며 봤을 법한, 익숙한 얼굴의 멜로디 아줌마는 얼굴에 한가득 웃음을 담고 인사를 해주었다. 버지니아에 살면서 봉사활동을 워낙 많이 하신 분이라 그런지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우리 말도 차근차근 들어주시고, 우리 아기에게도 정말 살갑게 대해주셨다. 동네 한식당을 자주 찾아가 한식을 자주 먹는다고 하셨는데 쌈이며 김치며 정말 거리낌없이 능숙하게 드셨다. 마지막으로 준비한 수정과에 엄지척을 날리면서 너무 맛있어서 계속 사먹겠다고 하셨다.      

멜로디 아줌마의 귀여운 선물들. 땅콩은 정말 맛있었다. 

1959년에 생후 6개월 된 멜로디 아줌마는 미국 캘리포니아로 입양되었다고 한다. 양부모님은 멜로디 아줌마 말고도 입양한 자식이 2명이 더 있었고, 그 시절 멜로디 아줌마를 UC버클리 경영학과에 진학시킬 만큼 애정과 정성으로 키웠다고 한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영어를 가르치다가 미군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버지니아에 새롭게 정착하셨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우리 엄마와 시어머니가 1957년생이니 정말 우리의 엄마들과 비슷한 삶을 살았을 수도 있었던 멜로디 아줌마를 보면서 내가 전후 시절 입양된 사람들을 모두 영화 국제시장에 나오는 ‘막순이’ 이미지로 형상화하며 나만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을 알았다.


멜로디 아줌마는 본인의 엄마를 찾기 위해 젊은 시절 한국 홀트 재단에 연락했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의 흔적은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홀트 재단에서 초청해서 몇십 년 전 딱 한 번 한국을 찾은 적이 있다고 했고, 대학교 시절 짧게 배운 한국어는 이제 인사말 정도만 할 수 있단다. 가족들과 영화관에 가서 기생충 영화를 보고 동네에 있는 한식당에 자주 찾아간다는 말에서 간신히 ‘아, 한국에 대한 친밀감이 있기는 하시는구나!’ 하는 정도였다.


아무렇지 않게 웃으시면서 “어머, 네 아들이 나를 정말 좋아한다. 한국에서 자주 보던 얼굴들과 비슷해서 그런가 봐!” 말하는 멜로디 아줌마. 나에게 추수감사절에는 어떤 음식을 먹는지 신이 나서 설명하시고, 수정과는 처음 보는 멜로디 아줌마. 한국에서 입양됐을 때의 감정보다 캘리포니아에서 대륙의 반대편인 버지니아로 이사 왔을 때 힘듦에 관해 이야기하는 멜로디 아줌마.


그녀에게 한국은 어떤 의미일까.


기억하지도 못할 한국의 흔적은 전형적인 동양인의 외모로 남겨져 숱한 시간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설명해야만 했을 그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정말 문학 시간에 배우던 혼란을 겪었을까, 그리고 그녀는 어떤 답을 찾았을까.


난 감히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미국 대선 이야기를 신나게 하는 그녀에게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맞장구를 쳤다. 버지니아 특산품인 땅콩과 맛있는 커피를 선물로 주고 간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속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던 고정관념은 모두 깨져버렸다.

   

그저 그녀를 캘리포니아에서 온 멜로디 아줌마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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