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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Oct 28. 2024

런던에서 매일매일 등하교를 한다.

 매일 아침 8시 45분, 아이들 초등학교의 교문이 열린다. 아이들 학교는 한 학년에 반이 하나뿐인 작은 학교로 건물도 아담하게 한 층으로 이루어져 있어 교문에서 교실까지 채 10초가 걸리지 않는다. 처음 등교할 때 눈물범벅이던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지 두 달이 다 되어 가고, 하프텀(Half-term)을 맞이하는 지금은 큰 어려움 없이 등교한다. 교실에 들어선 아이들의 뒤통수를 보며 나도 교문을 나선다. 아이들도, 나도, 남편도 모두 다른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 자기 자신만의 런던을 만드는 시간이다.


 오후 3시가 되면 주섬주섬 집을 나설 준비를 한다. 하굣길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무조건 놀이터로 향하는 아이들을 위해 블루베리, 귤, 바나나 같은 과일 간식을 좀 챙기고, 물도 준비한다. 현관 앞에서 신발을 신기 전 잠시 고민한다. ‘지금 나가면 너무 이르지 않을까?’ 교문은 매일 3시 20분에 열리는데 집에서 학교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5분이면 갈 수 있다. 10분 이상 교문 앞에 서 있다 보면 다른 엄마들을 만나게 되는데 아직 편하게 수다 떨 수 있는 엄마가 없어 어색하게 말할 상대를 두리번거리며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잠시 고민하다 ‘에이, 모르겠다.’라며 문을 나선다.


입학 첫 주, 엉엉 울며 다니는 아이들에게도 상장을 주는 관대한 영국학교

 집에서 학교로 가는 길에는 건널목이 하나 있다. 항상 붐비는 좁은 도로는 건널목 앞에 서는 순간 ‘신비의 바닷길’처럼 차들이 모두 멈춘다. 건널목을 건너 길을 한번 꺾으면 학교로 가는 한적한 주거 지역이다. 등하교 시간을 제외하면 대체로 사람이 없는 한적한 길이다. 교문 앞에 가면 매일 일찍 오는 엄마 몇 명이 어김없이 먼저 와 있어 가볍게 눈인사한다. 학교 행사가 있는 날 전후로는 행사 관련된 이야기를 주섬주섬 나누고, 보통의 날에는 서로 먼 산을 바라본다. 그러다 쨍한 파란색 대문의 건너편 벽돌 건물을 바라보며, 저 건물은 언제 지어진 건물일까, 설마 이렇게 흔한 길거리 건물도 몇백년 됐다고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결국 생각이 닿는 곳은 ‘아, 다음부턴 너무 일찍 나오지 말고 꼭 시간 맞춰 나와야지.’라는 작은 다짐이다.


 3시 20분에 교문이 열린다. 1학년(Year1)인 첫째는 교실에서부터 담임선생님이 인솔하여 운동장에서 하교하지만, 초등학교 부설 어린이집(Nursery)에 다니는 둘째는 교실 문 앞에서 선생님과 인사하며 하교해야 한다. 둘째 교실 앞에서 창문 너머를 보니 당근 잘 먹어서 전생에 피터 래빗이 아니었을까 싶은 둘째가 오늘도 맨 앞줄에서 혼자 열심히 당근을 먹고 있다. 공용 쟁반에 놓인 당근을 오독오독 먹으며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 토끼 같다. 바깥이 시끄러워지자 아이들은 창밖을 보며 엄마를 찾는다. 그 와중에 둘째는 계속 당근을 먹다 흘깃 나를 보고 무심한 표정으로 손가락 하트를 날리고는 다시 당근을 먹는다.


 다 같이 모여 마무리 노래를 부르면 아이는 문을 열고 달려 나온다. 맨 먼저 나오는 날은 아무 일 없이 잘 지냈다는 뜻이고, 나중에 나오는 날은 뭔가 사고를 쳐서 선생님이 나에게 할 말이 있는 날이다. 점심을 먹다가 음식을 쏟아 옷을 갈아입었거나 학기 초 영어로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을 못해 소변 실수를 하던 날들이 있었다. 그런 날은 빨래가 한가득 가방에 차서 묵직한 가방과 묵직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다행히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거의 모든 날을 가장 먼저 나왔다. 방학이 시작되기 2주 전 금요일에는 아이가 손에 작은 종이를 들고 왔다. 일주일에 한 번 뽑는 ‘이번 주의 어린이’ 상을 받았단다. 매일 울며 가던 아이가 적응해서 선생님이 좋다고 인사를 하고, 집에서도 친구들 이야기를 하며 심지어 상을 받아 학교 소식지에 실린다니 이보다 더 좋은 마무리는 없을 것이다.


 둘째 손을 잡고 첫째를 데리러 간다. 첫째는 한국에서 신나게 어린이집만 다니다가 영어라고는 “Hello” 하나밖에 못 하는 상태로 초등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학교가 끝나고 “오늘은 뭐 배웠어?”라고 물으면 “어휴, 종일 영어만 했지, 영어만. 종일 영어만 쓰다 왔어! 어휴, 힘들다 힘들어!”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처음 한 달은 미지의 터널을 걷는 기분이었다. 아이는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 시간에 압도되어 내용보다는 영어 스트레스에 대한 기억만 남았고, 나는 나대로 아이가 일단 학교를 싫어하지 않고 나가게 하는 것이 중요해서 꼬치꼬치 캐물을 수가 없었다. 영국 학교는 듣던 대로 교과서도 없어서 학교 진도를 집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담임선생님 면담과 매주 들고 오는 숙제를 보고 아이가 수학, 과학, 역사를 골고루 배운다는 사실을 알고는 영어도 못 하는 아이가 고생한다 싶어 안쓰러웠다.


 그러나 넉살 좋은 아빠를 닮은 첫째에게 언젠가부터 하굣길에 인사하는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같은 반 친구들이 인사를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다른 학년의 형들이 하굣길에 아이를 붙잡고 자기가 오늘 만든 작품에 대해 속사포처럼 이야기했다. (첫째는 물론 알아듣지 못했다) 어느 날은 하굣길에 딱 봐도 누나로 보이는 아이가 인사를 하며 지나가더니, 나에게 “나는 얘를 아는데, 얘는 나를 모를 거예요~”하고 가는 일도 있었다. 도대체 학교에서 뭘 하는 건가 싶어 물어보니 놀이터에서 노는 쉬는 시간에 열정적으로 술래잡기하면서 저학년 사이에 명성을 날린 듯싶었다. 교실에서 한마디 안 하던 아이가 술래잡기만 하면 갑자기 방언 터진 듯 “Monster!”, “Catch me!”를 연발하며 뛰어다닌다고 하니 친구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만도 하다.


놀이터에 출석 도장 찍는 남매

 그렇게 아이들과 학교를 나와 놀이터로 걸어간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듣다가 문득 이 풍경이 너무도 생경하다. 아이들의 하원길(하교길)을 함께한 것이 2년 만이라는 사실에 새삼 놀랍다. 직장어린이집을 다니던 아이들이라 나와 남편의 출근 시간에 함께 등원하기는 했지만, 하원은 언제나 시터 이모님의 몫이었다. 한국에서는 나와 함께하는 시간 속의 아이들보다 내가 모르는 시간 속의 아이들이 더 많았다. 분명 내 기억 속에는 첫째는 매일 모래놀이만 했고, 둘째는 제대로 걷지도 못해 안겨만 있는데 어느날 회사에서 돌아온 나에게 이모님께서 첫째가 자전거를 날아다니면서 타고 둘째도 좋아하는 친구가 생겨 매일 트램펄린을 탄다고 하셨다. 내가 알던 아이들이 나도 모르는 새 커버린 것 같아 마음에 구멍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런던에서 매일 아이들의 학교로 가는 길을 걸으며 마음 속 구멍을 채우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고자 하는 그 시간을 내가 볼 수는 없지만 매일 같은 길을 오가며 그 공기가, 기운이 달라짐을 느낀다.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었던 일보다 즐거웠던 일을 먼저 종알종알 이야기하는 아이들을 보니 나와 같은 시간을 걸으며 살아가는 기분이다. 이 시간, 내가 그 아이들의 곁에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고맙다. 지금을 밀도 있게 살면 언젠가 다시 마음에 구멍이 뚫리고 바람이 새어들더라도 기댈 수 있는 따뜻한 불빛에서 위로받을 것이다. 일하는 엄마 아빠를 위해 방학도 없었던 어린이집을 보내다가 처음으로 맞이한 아이들의 방학(Half term)을 맞아 순간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행복해지기로 마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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