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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한Meehan Apr 18. 2020

나는 오늘도 살을 뺀다

365일 다이어트중

몇 년 전 어느 날 엄마가 바지 하나를 사 왔다. 회사에서 누군가 사 입은 걸 보고, 비싸지도 않은데 편해 보여서 같은 걸 주문했다며. 그런데 입어보지 않고 인터넷으로 주문했던 터라 엄마에게 조금 작았다. 결국 그 바지는 내 차지가 되었는데, 그 만 오천 원짜리 슬랙스를 징하게도 많이 입고 다녔다. 캐주얼하게도 포멀하게도 아무 때나 입을 수 있고, 신축성이 좋아 편하기도 했지만 내가 진짜 그 슬랙스를 사랑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 바지를 입은 나는 유난히 말라 보여서 좋아했다. 그랬던 그 슬랙스를 올봄 오랜만에 입어 보았는데, 이럴 수가. 지난여름부터 열심히 운동 한 효과일까? 그새 살이 빠져서 슬랙스가 크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뒷모습이 어벙해 보여서 말라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더.. (중략). 자 그렇다면 애정템 슬랙스를 잃었다는 슬픔을 뒤로하고 살이 빠졌다는 희소식에 초점을 맞춰본다.


다이어트는 내 평생의 숙원이라고 해도 표현에 모자람이 없다. 지금의 나를 보는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까지 다이어트에 체중 감량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만, 그건 정말 남의 얘기일 뿐이다. 일단, 살이 쪄보지 않은 사람은 다이어트를 향한 강박을 모른다. 너무 마르거나, 노력해도 근육이 붙지 않아서 가지는 고민을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기본적인 뼈대와 골격이 작은 편이 아니고, 요즘에서야 알았지만 운동을 하면 근육도 제때 생기는 체질이라 조금만 살이 붙어도 남들보다 거대해 보인다. 그런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교를 거치면서까지도 살집이 있어 이만저만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물론 나 스스로도 자신감이 없어졌기 때문에 동작이 큰 스포츠는 전혀 하지 못했다. 움직이는 걸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운동 자체를 싫어했다기보다는, 운동을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보이는 걸 싫어했다. 사춘기를 지나는 소녀의 입장으로 달리기를 할 때 살이 흔들리거나, 격한 스포츠 경기 중 옷이 올라가는 그런 종류의 상황이 너무 창피해서 운동을 더욱 기피했다. 나한테 낙제에 가까운 체육 점수 줬던 선생님은 그걸 알고나 있나 몰라?


초등학교 때 엄마와 공중목욕탕을 갔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 식성으로 이미 살이 많이 쪘었는데 그날 거기서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엄마에게 넌지시 내가 무슨 병이 있는 건 아니냐고 물었다. 솔직히 지금 되짚어 생각해보면 그냥 잘 먹는 초등학생이었을 뿐이었고, 병이 있다고 느낄 수준만큼 살이 찐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어쨌든 나는 그때 이후로 공중 목욕시설을 이용하는 걸 굉장히 꺼리게 되었다. 뭔가, 모두가 내 몸에서 흠을 찾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친구들과도 목욕탕은 물론 수영장도 가지 않았고, 친구 집에서 자게 될 때에도 옷 갈아입는 걸 보이기 주저하게 되었다. 정확히 그 공중탕 사건만 원인이 된 것은 아니지만 내 다이어트 트라우마 역사상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한 마디임에는 틀림없다. 제3자는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살이 찐 사람은, 살이 쪘기 때문에 받는 시선이 어떤 느낌인지 너무 잘 안다. 나는 그래서 몸을 사리게 되었고, 그만큼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은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같이 먹어주는 오빠와, 함께 먹성 좋았던 사촌 언니, 오빠가 있어 다행이었다. 우리는 매번 만날 때마다 새로운 다이어트를 다짐하며 수십 번, 아니 어쩌면 수백 번의 다이어트 내기를 갱신했다. 명절 때 만나면 덕담은, "오 너 살 빠졌네?"였고 새로운 달을 시작하는 의식처럼 체중계 위에 올라가고는 했다. 빌리 부트 캠프, 덴마크 다이어트, 계란 다이어트, 바나나 다이어트, 마일리 사이러스 하체 운동, 줄넘기, 아침 조깅, 밀가루 끊기, 1일 1식, 굶기 등등등 안 해본 게 없었다. 나는 키가 조금 늦게 큰 편이었는데, 키가 크면서 서서히 살도 빠졌고, 성인이 되어서도 자연스럽게 젖살이 빠져 지금의 내가 되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밥 한 숟갈, 과일 한 조각을 먹으면서도 칼로리를 걱정하고, 허기를 참아왔던 또 다른 내가 있다. 나에게 체질이 마른 것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정말 감개무량이다. 하지만 내 노력과 의지와 인내의 산물인 것을 꼭, 두 번, 세 번 알아주길 바란다.


나는 지금도 다이어트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고 무언가를 먹는 적이 거의 없다. 이걸 먹으면 살이 찌겠지, 이거 살찌는 음식인데-부터, 어제 많이 먹었으니 오늘은 이것만 먹어야지, 돈 아낀다는 셈 치고 하나만 먹어야지 등의 합리화와 자책을 통해 음식을 섭취한다. 나는 지금껏 빵 하나를 온전히 다 먹은 적이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한 꼬집 떼어먹는 게 습관이 되어서, 엄마는 한 모퉁이가 뜯겨나간 빵 덩어리를 보며 집에 쥐새끼가 산다며 농담을 한다. 그냥 강박이다. 한 번쯤은, 하루쯤은 그냥 마음 놓고 먹어도 되는 걸 알고는 있는데, 조절하지 않으면 또 살이 찔 테니까 항상 절제 모드이다.


사실 나의 식습관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짜게 먹는 것도 안 좋아하고, 국물을 먹을 때면 건더기만 건져먹고, 과자나 사탕 등 간식도 먹지 않는다. 내가 면이나 빵 같은 밀가루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과일이나 아이스크림 같은 걸 많이 먹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왜 살이 찌는 걸까? 답은 그냥 많이 먹어서였다. 나는 먹는 양이 많다. 언제나 또래 친구들보다 많이 먹어서, 학창시절 친구들이랑 놀고 집에 돌아오면 밥을 또 먹었다. 지금도 역시 8조각으로 나뉜 피자를 친구들은 2조각씩, 나는 늘 기본 3조각, 많이 먹을 때는 4조각까지도 먹는다. 내가 살이 찌는 이유다.


그러니 나는 적게 먹으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지 않으면, 한도 끝도 없이 먹고, 또 그만큼 살도 찐다. 건강을 해치는 정도가 아니기에, 살이 조금 찌면 어떠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리고 나 또한 눈치 볼 것도, 스트레스받을 것도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다시는 살이 찌기 싫다. 헬스장의 호구라고 불려도 좋고, TV 광고의 희생양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으니 살은 찌기 싫다. 이 퍽퍽한 닭가슴살을 평생 먹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만약 내가 살이 쪄서 고깝게 보는 사람이 있다면 한 대 때려줄 의향은 있지만, 애초에 그런 시선 받는 것 자체가 싫다. 잘못된 사회의 외모지상주의를 개선해야 한다고? 물론 훌륭하다. 하지만 그러기까지 내가 받는 상처는 누가 이해해줄 것이며 누가 책임져 줄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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