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칼럼
마케팅을 하다보면 트렌드를 예민하게 관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뷰티 에디터의 요청에 의해 우연히 시작한 칼럼 연재는 회사의 법인 설립과 맞물려 마라톤을 잠시 멈추었다. 지난 칼럼의 연재를 통해 국내외 산업과 브랜드 안에서 맞물려 돌아가는 작은 톱니바퀴를 돌아보고자 한다
오늘 다시 보는 칼럼은 북칼럼 중 18번째로 연재되었던 "트렌드의 기술"이다. 여전히 지금도 나에게 유용한 책이고 이 책을 완독했을 당시에는 머리 속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가끔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하지 않는 책들이 등장하곤 하는데 당시 이 책이 그랬다. 더 먼저 읽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며 빠르게 써 나간 북칼럼, 트렌드의 홍수 속에서 찾은 맑은 수정 같은 책이다.
오랜 동안의 경험에 의해서 직관적으로만 파악되는 개념이라고 믿어 온 트렌드는 사회의 흐름과 함께 변화해 나가는 특별한 패턴이 있다. 트렌드의 패턴을 읽는 기술을 언급하기 전에 과연 트렌드가 무엇인지 먼저 명확히 해 보자. 트렌드 사회학에서 보는 '트렌드란 이미 일어난 뭔가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일어날 무언가에 대한 ‘예측’이다.' 1936년 트렌드(Trend)라는 잡지가 창간이 되었을 때 트렌드라는 용어는 새로운 제품 소식을 의미했다. 이 후 '트렌드는 신제품을 만드는 제품 개발로 인해 생기는 변화 과정'이라는 개념으로 진화했다. 1960년대가 되면서 트렌드결정자(Trendsetter)라는 용어가 사용되며 트렌드는 스타일, 취향과 밀접한 연관을 보였다.
트렌드라는 개념을 외면한 상태에서는 상품기획, 디자인, 시장조사를 망라하는 통합적인 마케팅의 개별적인 요소들이 평범함을 넘어서 최고의 경지를 넘어설지라도 종종 시장의 외면을 받게 된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부으면 예측할 수 있는 게 트렌드라면 무조건 돈을 많이 투자하는 기업과 브랜드가 영원히 고객의 사랑을 받게 된다. 과연 그럴까 자문해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만은 없다. 내가 감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시장과 사회는 서서히 변해가고,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은 이미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다. 그래서 트렌드를 흔히 신비롭고 예측 불가능하고 설명이 불가한 현상이라고 믿게 된다. 마케팅이란 개념이 중요하다고 여긴 그 순간부터 트렌드는 언제나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관련 서적과 논문을 탐독해봐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막연함에 내심 불편했다.
분명히 고기는 손 안에 있는데 과연 스스로 트렌드라는 고기를 잡아낼 수 있을지는 언제나 미지수였다. 아주 오랜만에 숨겨 놓고 혼자 몰래 꺼내 보고 싶은 책을 만났다, 이 책을 만나기 위해 그동안 무수히 많은 책들 사이를 헤매고 다닌 것 같다.
트렌드 해부학(Anatomy of a Trend)이라는 원문 제목처럼 트렌드의 개념, 패턴, 확산 배경, 비밀 그리고 마지막 트렌드를 읽는 기술을 낱낱이 밝혀준다. 존 나이스비츠의 마인드세트(Mindset) 이 후 아주오랜만에 정독한 트렌드 지침서, 두 번 읽었지만 앞으로 10번은 더 읽고 100번은 더 뒤적거릴 것만 같은 숨기고 싶은 책이다.
아무리 예측하기 어려운 트렌드이지만 스타일과 취향은 수시로 변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특정한 패턴으로 반복되고 이는 지극히 인간의 행동을 반영한 결과이기 때문에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면 트렌드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는 게 트렌드 사회학으로 증명된다.
아디다스를 모방한 일본의 운동화를 미국으로 수입하다가 만든 브랜드, 유럽의 럭셔리 란제리를 관찰 후 만든 미국의 섹시 란제리, 랄프 로렌에 힙합이 추구하는 프레피룩의 흐름을 반영한 패션 브랜드 그리고 스키와 윈드서핑 시 시린 발을 위해 호주에서 신던 부츠는 무엇일까?
바로 나이키, 빅토리아시크릿, 타미힐피커와 어그부츠다. 스타일과 취향의 변화는 하룻밤 사이에 광범위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그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하고 읽을 수 있다면 제2의 나이키와 타미힐피거를 만들어 낼 수 기회는 누구에게나 있다.
정보의 홍수를 넘어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우리의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정보가 밀려들어 온다. 무수한 정보들 사이에 향후 시장의 흐름을 이끌 트렌드와 전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메가트렌드를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트렌드를 읽고 미래의 흐름을 진단하고 준비할 수 있다면 가벼운 물살에도 흔들리는 돛단배와 같은 고단한 삶을 세차게 몰아치는 파도에도 유유히 항해하는 항공모함같은 여유로운 삶으로 반전시킬 수 있다.
뷰티 산업은 전 산업 중에서도 트렌드의 확산과 변화가 가장 빠른 분야인만큼 생존을 위해서라도 ‘섞고 관찰하고 모방’을 통한 트렌드 분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 주 중국 출장에서 만난 고객과 바이어를 통해 느낄 수 있었던 시장의 흐름,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직접 보여주고 이를 여러 데이타가 증명하고 있다. 늦은 밤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그 행간에 숨은 의미는 무엇일까 되뇌이며 다시 한 번 책과 칼럼을 뒤적거린다. 나를 위해서 우리 브랜드를 위해서 그리고 시간에 쫓기며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을 위한 값진 책,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