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천군작가 Mar 26. 2021

Woman in Love

음악이 있는 이야기  내가 너를 부를 때 -16-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보여주긴 싫었어
손 흔드는 사람들 속에 그댈 남겨두긴 싫어
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댄 나를 잊을까
기다리지 말라고 한건 미안했기 때문이야

종일 노래 가사가 맴돌았다.

그리고 하늘을 본다.

초봄의 강원도는 여전히 겨울이라고 우기고 있었다.

가을은 가을이 아닌 차라리 겨울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짧은 곳이었다.


마지막 면회


그 남자는 몰랐다. 이것이 그들에게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만약 알았다면 그 남자는 그 여자를 잡을 수 있었을까?

그 남자는 그래도 잡지 못하였을 것이다.

군인으로 그것도 짧지 않은 시간이 남아있었기에 어찌할 수가 없다는 것을 그 남자는 알았을 것이다.

물론 탈영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그 여자를 잡는다고 하여도 과연 곁에 머물러 있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 남자 : 날씨도 추운데 옷을 이렇게 입고 왔어?

그 여자 : 남쪽나라는 아직도 더워요.


그 여자는 입을 삐죽거리며 그 남자를 바라본다.

그 여자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 여자 : (우리 이것이 마지막이야. 어쩌면 잘못된 선택이라 해도 현제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해.

마지막이기에 너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어. 아니 살아오며 너에게 한 모든 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할 수 없을 것을 알기에 후회 없이 사랑했어)


그 여자는 지금 이 순간 떠나야 하는 자신의 마음을 차마 그 남자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 남자는 그 여자의 그런 마음도 모른 채 늘 그래 왔던 것처럼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 여자 : (넌 웃는 게 참 이뻐. 그리고 그 눈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부분이라는 거 넌 모르지. 이제 그 예쁜 눈을 못 본다는 것이 자꾸만 눈물이 나게 만들지만 오늘만은 꾹 참을게 내가 얼마나 많은 날을 눈물로 보낼지는 몰라도 오늘만은 네 앞에서 웃을게)


그 여자는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고 있었다.


그 남자 : 저녁은 뭘 먹지? 그리고 그다음은 뭘 하지?

그 여자 : 너 좋아하는 거 먹어 늘 그랬잖아.

그 남자 : 내가 먹고 싶은 거? 지금은 없는데.

그 여자 : 군생활도 힘든데 고기 먹어.


Life is a moment in space
삶이란 우주 속의 한 순간일 뿐
when the dream is gone, / It's a lonelier place.
꿈이 사라질 때, 삶은 더 외로운 곳.
I kiss the morning goodbye
난 아침에 작별 키스를 하지만
but down inside / You know we never know why.
마음 깊은 곳에선, 알다시피 우린 이유를 몰라요.

Barbra Streisand의 Woman in Love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이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음악이 슬픈 노래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그 순간 그 음악을 즐겼다.

작고 아담한 터미널에 두 사람은 자꾸만 시계를 바라보며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영영 이것이 마지막인데 그 남자만 모른 채...


그 남자 : 혼자 내려가게 해서 미안해.

그 여자 : 뭐 언제는 혼자 아니었나. 치

그 남자 : 다음에 우리 결혼하면 그때는 세상 어디를 가든 꼭 함께 가자.


순간 그 여자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 여자 : (바보야. 나 이제 네 곁에 있을 수 없어. 나 너무 힘들단 말이야. 이게 우리 마지막이란 말이야. )


그 여자는 눈물을 삼키며 돌아서 걸었다. 곧장 화장실로 달려간 그 여자는 그제야 멈추지 않는 눈물을 흘렸다.

너무도 서럽게 눈물이 흘렀다.


터미널에서 빠져나가는 버스를 바라보며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그 남자는 그 자리에서 손을 흔들었다.

그런 모습을 흐릿해질 때까지 그 여자는 고개를 돌려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 여자 : (바보야 미안해. 내가 바본거지 넌 바보가 아닌데... 나 널 너무 사랑해. 그런데..... 어쩔 수가 없어.... 나 너무 힘들어서 떠나는 거야.... 바보야 사랑해 우리 다음 생에 만나면 그때는 절대 헤어지지 말자. 사랑해)


9월이라지만 강원도의 날씨는 알 수가 없었다.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하였으니 말이다.


그 남자 : 낙엽이 떨어지는 걸 보니 곧 첫눈이 오겠군


바람도 이젠 제법 차가워졌다는 것을 알았고 다녀간 그 여자에게서 매일 오던 편지가 끊어진 지 보름이 지났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그 남자는 매일 쓰던 편지를 여전히 쓰고 있었다.

하지만 답장 없는 편지를 쓰기를 반복하던 그때 그 여자의 편지가 왔다.

아무런 이유 없이 떠난다고 그리고 결혼할 거라고.

순간 그 남자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어떻게 걸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남자는 인사과에 가 있었다.


인사과장 : 어쩐 일이야?

그 남자 : 예.... 예 급하게 집엘 좀 다녀와야 하는데 휴가증에 도장 좀 찍어 주십시오.

인사과장 : 지금?

그 남자 : 예 좀 급해서...

인사과장 : 지금 몇 신지 알아? 저녁 7시야. 내일 아침에 찍어 줄 테니 다시 와.

그 남자 : 저 탈영할지도 모릅니다.

인사과장 : 자식 협박하네. 무슨 일인데.

그 남자 : 다녀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인사과장 : 일단 휴가증 줘봐. 내가 검문소에 전화해 놓을 거니까 다녀와. 그리고 너 다녀와서 뺑뺑이 돌 각오해.


그렇게 그 남자는 늦은 시간에 휴가증을 들고 터미널로 갔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분명 도착하면 막차가 가고 없을 거란 것을.

그 남자는 두리번거리다 택시로 달려갔다.


그 남자 : 지금 갈 수 있습니까?

기사 : 어디 갈 겁니까?

그 남자 : 진주요. 경남 진주.

기사 : 너무 먼데. 탈영한 거 아니죠?


그 남자는 휴가증을 보여주며 차에 탔다.

택시는 의정부를 지나 수유리를 지나고 있었다.

어둠 속으로 달리는 택시 안은 그 어둠만큼이나 긴 정적이 흘렀고 간간히 기사가 뭐라고 물어도 그 남자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새벽 3시


그 남자는 택시에서 내렸다.

멀어져 가는 택시를 바라보고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새벽 공기가 차갑다는 것을 느낄 사이도 없이 그 남자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아니 언제 걸어왔는지 강변에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했고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였는지도 알았다.

강변을 따라 지나는 도로에 가로등이 하나 둘 꺼지고 멀리서 여명이 밝아온다.


그 남자 : 그래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너 힘들다는데 내가 어쩔 수 없구나.


강물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그 남자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남자 : 무엇이 널 그렇게 힘들게 만드는지를 알고 싶지만 묻어 둘께. 그리고 너 행복하길 바랄게.

비록 내가 널 잡지 못하지만 아니 지금의 나는 군인의 신분이기에 널 잡을 수가 없다. 어쩌면 넌 내가 널 잡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려줄레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거란 말뿐 어떤 확신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널 잡을 수 없다.


그 남자는 한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그 자리에서 일어나 터미널을 향해 걸었다.


그것이 그 남자와 그 여자의 마지막이었다.

눈가에 맺힌 눈물 사이로 신호등 불빛이 아른거리고 그 남자는 그렇게 걸었다.

그리고 멀리서 사라지는 그 남자의 뒷모습은 너무도 슬픈 그래서 차마 볼 수 없을 정도의 모습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 남자는 평생을 그 여자를 잊을 수 없을 것이란 것을 모른 체 그렇게 사라져 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It Must Have Been Lov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