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승 Oct 26. 2021

남자친구가 가버렸다

더 이상 내 손과 내 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네가 하늘나라로 가버린 22일은, 우리가 그토록 서로를 사랑하면서 바보처럼 자존심을 세우다가 헤어지고, 1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만난 날 이후로 겨우 5일째가 되던 날이었고, 네가 빨리 해치워 버리고 싶다던 공인중개사 시험 2차와 시험이 끝나고 함께 온천물에 피곤함을 씻겨내고 축배를 들기로 한 날이 8일 남은 시점이야, 넌 부모님을 모시고 한 번 가봤던 그 온천에 꼭 나와 함께 가고 싶다고 사귀자 말자 얘기를 꺼냈었고, 예약 사이트가 오픈되자 말자 이미 두 달도 전에 예약을 했었고.. 우리는 어서 그날이 와서 단풍 구경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수 없이 했었어.


다시 만나면서, 우리가 앞으로 함께 견뎌야 할 더 힘든 일이 많을 텐데 서로 사랑하니까 서로 도와서 꼭 이겨내 가자고 말한 지 아직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는데, 왜 바보처럼 허무하게 넌 가 버린 걸까? 난 아직 너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는데, 왜 남겨진 내가 미안하고 속상하게 혼자 그렇게 가버린 걸까.


선배는 네가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이미 하늘나라로 떠났으며, 네 모습은 뼈 하나 부서지지 않았고 외상 하나 없이 깔끔했다고 했어. 네가 타던 차는 고철로 만들어서 누가 와서 박아도 너는 살 거라고 말하곤 했었는데, 왜 네 차는 무사하다고 하는데 너는 살아있지 못한 걸까.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정말 하늘이 정해둔 일이고, 바꿀 수 없는 운명일까?


잘 먹으라고, 항상 잘 챙겨 먹으라고 했잖아. 몸이 튼튼해야 면역력도 생겨서 감기도 안 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시험까지 잘 마무리하게, 나를 지켜주는 남자 친구가 될 수 있게 말이야. 넌 나랑 표현 문제로 다투던 2주간 65kg 던 몸무게가 61kg가 되었다고 바보 같이 웃으며 말했는데, 혹시 나 때문에 몸이 너무 약해져서 그렇게 가버린 건 아닌가, 몸에 상처하나 나지 않았다면서 어떻게 그렇게 가버린 걸까..




니가 떠난 지 24시간이 지난 오늘 새벽, 차가우면서 촉촉하고 따뜻한 입 맞춤에 눈을 떴어 그런데 내 옆엔 아무도 없더라. 늘 네게 와있던 카카오톡 메시지도 와있지 않은 걸 확인하면서 혹시 네가 다녀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엄마와 친구들 한테도 얘기했는데, 그럴 수 도 있겠다고 말해줘서 너무 행복하더라. 그냥 네가 떠나기 전 마지막에 나한테 와준 것 같아서,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행복했어.


엄마에게 오늘 처음 너에 대해 얘길 했어,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지 얼마나 사랑했는지, 네가 나를 얼마나 아껴줬는지, 우리 관계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내가 얼마나 진심으로 너란 사람을 좋아했는지.. 네가 엄마 생일에 같이 먹으라고 줬던 아웃백 쿠폰은 사실 못 썼어.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서, 올 연말에 내려가면 꼭 같이 먹으려고, 너도 그걸 원할 테니까


엄마가 사람이 죽으면 49일간은 이 세상에 머무른다고 했어. 49일 동안 나도 바쁘게 지내면서 널 조금씩 털어버리고, 49일이 되는 날엔 웃으면서 보내줘야 너도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바보같이도 넌 날 많이 좋아했으니까 내 주위에 조금 더 많이 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넌 친구도 가족도 챙길 사람도 많은 거 알지만, 그냥 그래 줬으면 좋겠다 생각해, 참 이기적 이게도.




차라리 반신불구나 식물인간이 되었다면, 적어도 이렇게 가슴이 미어지지는 않았을 것 같아. 못다 한 말이 많아서 너무 많아서, 너에게 카톡도 보내고 싶고 영통도 걸고 싶은데 답장이 없는 네가. 너무 속상하고 슬프다, 나와 다툰 게 속상하고 슬퍼서 밥 맛이 없고 그래서 4kg나 빠졌다던 네가 이제는 조금 이해가 가. 난 네가 내 곁에 없어져서야 이렇게 속상하고 마음이 아픈데, 넌 겨우 나라는 사람이 널 사랑한다 표현하지 않아서 이렇게 까지 힘들었다는 걸 내가 진작 알았다면, 그렇게 차갑게 널 밀어내지도 울리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야..


너와 함께 가기로 했던 숙소를 차마 취소하지 못했어, 월요일 부터 상담 전화 연결이 가능하다고 해서 오늘 일어나서 취소하려 했는데 꿈에서 네가 나오더라. 너는 꿈에서도, 죽어서도 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어. 항상 내가 가장 먼저고, 내 일이 가장 먼저였던 이기적인 나를 꿈에서도 기다리고 있더라, 난 왜 이렇게 항상 이기적일까 왜 자꾸 너를 속상하게 하는 걸까?


그 곳에 가면 너를 만날 수 있을까? 죽은 너를 다시 본다는 건 어떻게 보면 너무 무서운 얘기지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으니까 조금 무섭더라도 만나고 싶긴 해. 이 감정이 희미해지기 전에, 나도 진심이었노라고 더 많이 사랑한다고 표현하지 못해서 미안했다고 꼭 만나서 말해주고 싶기도 해,


네가 죽고나서야 널 알게 된 우리 엄마도 네게 잘 다녀오라고 하더라, 다녀오는게 좋겠다고 잘 다녀오라고 하더라..


작가의 이전글 우리의 두 번째 만남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