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라인 평대점 방문기
빡빡이로 머리를 밀고나서 조금 즐거워졌다. 일단 너무 편해져 괜한 짜증이 현저히 감소했다. 하루의 가용시간 또한 늘어났다. 오분 안에 샤워하고 스킨로션까지 바를 수 있다. 오분만에 아기 침대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좋은 점은 약간 바보같이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능이 감소한건지 행동이 약간 어벙하고 존박표정이 될 때가 있는데, 요즘날의 고테츠 머리스타일이 그런 간지를 만드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아웃도어 라이프 스타일 샵, 홀라인 평대(@hollain_eastjeju) 구경은 즐거웠다. 머리가 짧아지니 왠지 비박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객기덩어리가 되었다. 실제로는 글램핑도 잘 안가지만 상상은 자유라서 즐겁기만 하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KEEN의 트래킹화. 올해는 특히 여행지에서 신발을 자주 사고 있다. 빈도로 놓고보면 가장 일상적인 아이템이라서 여행의 즐거움을 떠올리는 데 좋기 때문이다.
신어보고 맘에 들면 아내와 하나씩 살 심산이었다. 아예 똑같은 색깔, 그러니까 커플운동화는 어쩐지 쑥스러워서 피하려 했지만 내가 고른 디자인은 공교롭게도 모두 여성용이었다. 이 때부터 상황이 약간 맥없이 웃기기 시작했다. 황해의 하정우가 도박판에서 잃을 때처럼 초조한 몰골이 된 나는 더군다나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었기에 기분이 몹시 초라해졌다. 그래도 신어봐야했다. 사장님께서는 정확한 실착 사이즈 측정을 위해 샘플 양말을 빌려주신다고 했다. 흔쾌히 승낙하지 말아야했다. 발가락 양말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벙어리 양말이었다. 엄지발가락 부분과 디 아더스만 나뉘어져 있었다. 교토에서 얼굴을 하얗게 칠하신 분들이 신었던 걸 본 것 같다. 왠지 바보같은 내 모습을 보고 아내의 웃참챌린지가 시작되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양말의 색깔은 국방색이었다. 무장공비처럼 허겁지겁 양말을 챙겨신었다. 닌자거북이 발을 신발에 쑤셔넣고 대충 사이즈를 확인한 뒤 구매했다. 그때부터 정신이 혼미했다. 사장님께서 홀라인은 서울에도 있다고 하셨는데 내 머릿속에 퓨즈는 이미 나가있었다.
찾아보니 상수역(@hollain)쪽에 있다. 집에서 멀지 않으니 가볼 예정이다. 양말은 꼭 신고갈 생각이다.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강태공이 티백을 낚시하는 귀요미를 추가로 구매했다. 다행히도 알리나 테무에 없다. 요 신발을 안 신은 날에는 책상에서 홀라인의 굴욕을 떠올리며 미소짓게 되기를 고대한다. 아이가 좀 더 크면 캠핑은 못하더라도 제주에서 트래킹은 꼭 해볼 계획이다. 그 때 홀라인에서 쉬어가며 오늘을 이야기하면 즐거울 것임이 분명하다. 제주의 동쪽을 가면 들릴 곳이 생겨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