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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실격 Feb 04. 2024

역사 "책"과 역사 "문학"이 다른 점

하얼빈

하얼빈은 김훈 작가가 안중근 의사와 그의 이토 히로부미 의거 활동에 대해 기록한 이야기다. 김훈이 김훈했다. 좋은 의미로.


김훈 작가는 대부분 훌륭한 글을 적어내지만 역시 그 문장이 가장 빛나는 장르는 역사 문학이다. 그는 독자를 소설에 배경이 되는 시대로 돌려보내는 일뿐만 아니라, 그 작중 인물의 삶을 체험하게끔 만든다. 칼의 노래를 읽으면 독자는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이순신이 된다. 남한산성을 읽으면 성을 지키자는 신하들과, 성을 열어 화친을 맺자는 신하들의 말에 혼란을 경험하는 인조가 된다. 그리고 하얼빈에선 두 개의 시점이 병렬적으로 진행되는 데, 하나는 이토 히로부미이며, 다른 하나는 안중근 의사다. 독자는 두 명의 인물 시점을 쫓아 1909년 하얼빈에 도달한다.


아주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 소설은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건,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바 아니다. 


다만 하얼빈은 역사 문학이다. 문학은 역사를 하나의 객관화된 사건에서, 1인칭 시점으로 치환한다. "1909년 하얼빈에서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라는 사건은 그 배경을 들여다보면 층마다 켜켜이 사건과, 좌절과, 동기와, 가족과, 번민, 다짐, 결의 등이 숨어있다. 김훈은 한 개의 사건을 연필로 분해해서 그 사이사이에 쌓인 이야기를 발라낸다.


김훈은 누구보다 말에 집착하는 작가다. 그는 할 수 없는 말과 할 수 있는 말을 구분하려고 애쓴다. 비트겐슈타인이 좋아할 법한 작가다. 그의 소설 속 인물도 언어에 대해서 작가와 동일한 인식을 공유한다. 어쩔 땐 말장난처럼도 보인다. 특히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생각할 때가 그런 장면이 두드러진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고 싶다는 "살의"의 마음보다 그의 작동을 중단하고자 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이토를 죽여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토가 본인이 죽는 사유를 모른다. 안중근은 그가 꼭 조선인에게 죽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하지만 그 두 개는 공존할 수 없는 일. 안중근은 이것을 무척 서운해한다.


이 소설에선 천주교도 중요한 비중으로 다뤄진다. 특히 천주교지만 살인을 한 안중근을 용서하고자 한 빌렘과, 그것을 용인하지 않으려고 한 뮈텔의 갈등이 깊다.


칼의 노래는 김훈이란 렌즈로 들여다본 고독한 개인의 이순신을 다룬 소설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의 톤앤 매너로 안중근과 이토의 내면을 깊게 살피는 책이다. 따라서 김훈 작가의 이전 역사 문학을 재밌게 읽었다면 이 책도 마찬가지로 좋게 느껴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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