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토너를 떠올리면 울먹하다. 그 감정의 실타래는 복잡하고 엉켜있지만 가장 큰 부분은 상실감이다. 물론 스토너는 존 윌리엄스가 만들어 낸 가상의 인물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300Page가 넘는 장편을 읽으면서 생생하게 스토너를 경험한다. 그리고 책장을 덮을 때면 그를 가슴 깊이 존경하고 애정 하게 된다. 그리고 가슴 속 한 켠에 스토너를 위한 방이 생기게 된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독후감을 계속해서 미뤘다. 가장 쓰고 싶으면서도, 쓸 때마다 우왕좌왕하게 돼서. 스토너에 대한 주체 못 할 사랑이 나만 가지는 감정은 아닌듯싶다. 존경하는 신형철 문학평론가조차 "이 책에 대해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라는 말로 이 책을 소개한다. 문학평론가가 할 말이 너무 많아서 할 말을 못 찾겠다니, 소설에 대한 가장 큰 찬사다.
스토너는 존 윌리엄스가 쓴 장편소설로 1965년에 발간됐다. 작가인 존 윌리엄스 나이 43세 때이다. 소설 스토너는 스토너라는 인물의 일대기에 대해서 기록한 책이다. 한 인물의 전체 삶을 다루는 소설은 우리가 그 인물에 깊숙하게 관여하게 된다. 그러니 이 책이 좋고 말고는 간단한 문제다. 그 "스토너"란 인물이 마음에 들면 독자에게 좋은 책이고, 그렇지 않다면 안 좋은 책이다. 그러나 나는 스토너를 싫어할 사람은 없을 거라 단언한다.
이 소설을 줄거리 요약하는 것은 불가해서 가장 좋았던 부분만 집어 본다. 평범한 중산층에서 태어난 스토너는 집안 농사일에 보탬이 되고자 진학한 대학에서 느닷없이 문학과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여러 해를 지나 결국엔 영문학 교수가 된다. 스토너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잘 못된 결혼, 부당한 일에도 화 한 번 없다. 그런 그가 이 소설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건 면접관으로 참가한 대학원생 면접에서 "문학"이 모욕을 받는 때였다. 대학원 면접자가 본인이 가진 장애를 약자의 무기로 사용하는 동시에 문학에 대해 기초도 없이 무리한 담론을 진행할 때, 스토너는 처음으로 자세를 제대로 갖춰 잡은 뒤 그 학생을 몇 가지 질문들로 요리한다. 그것은 대학원생의 좌절을 위해서가 아닌, 훼손된 문학에 대한 복권을 위한 용감한 행동이었다. 그 행동의 결과로 스토너는 불우한 교수 말년을 보내게 되지만 그럼에도 그는 불평불만하지 않는다.
스토너는 절대 대단한 인물이 아니다. 세상을 구원한 사람도 아니고, 대단한 철학가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매일매일을 아주 충실하게 살아간다. 그가 가진 선택지에서 최선을 위해 고민한다. 또한 스토너는 부지런히 사랑한다. 부모님이 있었고, 그리고 연인, 가족, 동료, 문학, 학생들이 그렇다. 이 대단할 것 없는 스토너 일대기를 보다 보면 이내 그에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건 평생을 성실하고 진실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에 대한 존경에서다.
거꾸로 말하면 우리도 누군가의 스토너가 될 수 있다. 때때론 사랑받을 만한,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건 사소하지만 꾸준하고 성실하게 하루를 부지런히 살아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새해를 맞은 모두에게 이 책을 권한다. 삶을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멋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