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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실격 Apr 11. 2024

4년 차 직장인의 별거 없는 출근 루틴

아침 일곱 시 오분이면 눈이 떠진다.


내 알람은 7시 10분과 12분이다. 못 잔 5분과 7분만큼 손해 본 기분이다. 아무리 많이 자도 부족하다. 딱 한 시간만 더 자면 좋겠는데. 늘은 퇴근하고 조금만 더 일찍 자자고 생각하면서 온수 보일러를 켠다. 한 번도 지켜진 적 없는 다짐이다.


머리를 말리면서 경제 유튜브를 본다. 적극적으로 투자하진 않지만 그래도 시장을 떠나기 무섭다. 혼자 뒤처질까 무서운 걸 FOMO라고 한다나. 안 그래도 부족한 월급 조금이라도 다른 방법으로 키려고 기웃기웃한다. 요즘 SNS 보면 "월 천만 원 벌기"라는 콘텐츠가 수두룩 빽빽인데, 어떻게 다들 그렇게 잘 버는지 모르겠다. 대부분은 허풍이겠지만.


출근 룩을 고른다.  매일 같은 옷을 로테이션 한다. 하의는 검은 / 회색 슬랙에 상의는 몇 가지 아이템 정도로. 우리 회사는 복장 규정이 타이트하지 않다. 옆팀 과장님은 가끔 회색 추리닝을 입고 출근한다. 조금 눈꼴 시렵긴 하다만 상사에게 나무랄 수는 없다. 옷 고르기에 5분 정도 쓴다.


루테인, 마그네슘, 비타민C, 유산균을 먹을 시간이다. 새삼 영양제를 꼬박 챙기는 나이가 됐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런 감정의 지난한 반복과 누적이겠지 싶다. 짧은 감상을 마치고 큰 덩어리 알약을 입에 털어놓는다. 꿀꺽 냉수에 태워서 넘긴다. 가끔 영양제 먹는 걸 까먹는 날도 있다. 그럴 때면 하루라도 더 젊어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거만 같은 기분에 억울하다.


여자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운전대를 잡는다. 지난밤에 안녕했는지를 묻는다. 월, 수, 금요일에 여자친구는 새벽반 수영을 나간다. 어떤 수영을 배웠는지를 듣는다. 애인은 조잘조잘 참새처럼 잘 얘기한다. 짧은 아침 통화도 중대한 영양제 복용 과정이다. 출근하게 되면 수화기 너머로는 협상과, 요구와, 불만과, 문책의 목소리만 넘어온다. 그러니 출근 전 이 통화는 오늘 하루 마주할 모든 전화를 이겨낼만큼 사랑이 넘치는 말들로만 채운다.


운전해서 10분 정도 걸려 회사에 도착한다. 이제 8시다. 아침을 먹을 때도 있고 그냥 회사에 들어갈 때도 있다. 식사 여부를 결정하는 건 팀장 차의 주차 여부다.

 주차장에 팀장 차가 있으면 아침을 먹어도 된다. 왜냐면 우리 팀장은 매일 아침을 먹는데, 이미 밥을 먹고 있을 테니 배식을 받고 다른 자리에 앉으면 된다. 자리 결정권이 나에게 있다는 뜻이다.

 가끔 내가 먼저 도착해서 밥을 먹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늦게 도착한 팀장은 내 앞자리에 앉는다. 나는 아침부터 팀장과 밥을 먹는 시간과, 그리고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아직 마치지 못한 팀장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다. 그것부터 근무 시간으로 책정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내 식사는 그의 주차 여부에 따라 갈린다.


먹든 먹든, 8시 10분이 되면 사무실에 들어선다.

이제 출근이다.


오늘은 또 어떤 기쁘고, 고되고, 즐겁고, 화나는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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