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림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지언 Sep 07. 2020

나를 꺼내줘요

-들리나요?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이런 소리가 처음으로 들린 것은 내가 16살 때였다.    


집 정원에 있는 대리석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내 목소리가 들린다면, 나를 구해주세요. 나를 여기서 꺼내주세요.    


처음에는 그저 환청이라고 생각했다.    


돌이 말을 걸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목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렸다.    


목소리가 내 수면까지 방해하자, 나는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다.    


나는 해머를 들고 깨부술 셈으로 돌 앞으로 갔다.    


화가 잔뜩 나 있던 나는 그대로 돌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내리쳤다.    


돌은 나의 해머질에 따라 작은 파편들을 토해냈다.     


그리고 몇 번의 해머질이 계속되자 둘로 갈라져 버렸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분명히 보았다.    


그 돌이 흘리는 ‘피’를….    


얼마 동안을 죄책감에 못 이겨 악몽에 시달렸는지 모른다.    


단순한 무기물이 아닌 생명을 죽였다는 죄책감은 어린 나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의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다른 돌덩어리에서 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 나는 우악스러운 해머가 아니라 용돈을 모아 산 끌과 정, 망치를 가지고 돌 앞에 섰다.    


그리고 조심스레 돌을 잘게 부수기 시작하였다.    


태어나서 처음 하는 조각이었다. 당연히 익숙지 않았다.    


망치로 손을 몇 번이나 내리치고, 눈에 돌이 튀어서 실명의 위기를 몇 차례나 겪으면서도 며칠이나 걸려 돌을 쪼아냈다.    


그리고 결국 나는 그의 인도 속에 그를 돌 속에서 꺼냈다.    


그 이후로 난 목소리를 내는 돌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새 조각가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내가 조각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돌 안에 갇혀 있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돌 속에서 그들을 꺼낼 뿐이다.    



Rodin <Dana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