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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지언 Aug 09. 2015

세잔의 세계는 구, 원추, 원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폴 세잔 (Paul Cezanne, 1839-1906)

그릇과 유리잔과 사과 (1879-1882)
자연의 모든 것은 구(球)와 원추 및 원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이 단순한 도형들로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한 남자가 있습니다.


이 남자는 부유한 은행가인 아버지를 두고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으며, 대학에서는 법학을 공부하였으나 결국엔 모든 걸 포기하고 화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요즘의 시각으로 바라보자면 성공이 보장된 길을 포기하고 일부러 힘들고 험난한 길을 걸은 것입니다. 물론 남자의 아버지는 아들이 미술을 하는 것을 맹렬히 반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아버지를 설득해주어 이 남자는 화가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남자는'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폴 세잔입니다.


정해진 대로의 인생길이었다면 사회적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을 수 있었을 테지만, 미술로 돌아선 세잔의 길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세잔의 아버지는 세잔이 미술계에서도 엘리트 코스인 에콜 드 보자르에 입학하길 바랐지만, 세잔은 결국 합격하지 못하고 혼자서 독학을 하게 되지요.

(그림을 인터넷으로 배우는...)


세잔은 지속적으로 미술계에서 고립되어 있다가 1895년, 세잔의 나이 56세 때에야 겨우 첫 개인전을 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첫 개인전도 젊고 진보적인 미술가와 평론가들은 좋아하였지만 일반 대중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못하였습니다.


지금에야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해진 세잔이지만, 젊은 시절의 세잔은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화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30대 중반이 되도록 자신의 작품을 팔아보지도 못했을뿐더러, 고향에 돌아가면 언제나 아버지에게 큰 비난을 들었습니다. 이러한 세잔을 미술계에서 지속적으로 이끌어준 것이 바로 어렸을 적의 죽마고우인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에밀 졸라입니다.

(밥값 못한다고 구박받는 세잔을 위로해주는 에밀 졸라)


프랑스의 대문호로 더 유명한 졸라는 세잔과는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는데, 당시 체구가 작아 괴롭힘을 당하던 졸라를 세잔이 도와준 것이 인연이 되어 둘은 죽마고우가 되지요. 그들은 시간이 날 때면 같이 시를 짓거나 드로잉을 하며 시간을 보내곤 하였는데, 재미있는 것은 화가로 유명해진 세잔의 어릴 적 꿈은 시인이었다는 것이며, 대문호인 졸라는 세잔이 떨어진 미술대회의 수상자였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만남?)


이후 졸라는 집안 사정으로 세잔과 헤어지게 됐어도 세잔에게 지속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기를 종용하였고,  그때마다 세잔은 늘 고뇌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세잔은 졸라의 바람대로 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고, 졸라는 이러한 세잔을 자신의 인상파 화가 친구들에게 소개하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수줍음을 많이 타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 되지 못하였던 세잔은 인상파의 화가들과 쉽게 친해지지는 못했습니다. 이렇게 대인관계가 썩 좋지 않았던 세잔은 결국엔 인상파는 물론 에밀 졸라와도 절연하게 되지만 피사로, 모네, 르누아르와는 지속적으로 교우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세잔은 인상파 화가들과 함께 활동하였지만, 인상파 화가들이 빛의 반사에 의해 나타나는 대상의 색채의 표현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면 세잔의 경우에는 색채보다는 그려지는 대상을 이루고 있는 구조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세잔은 사물의 본질은 외면이 아닌 내면에 있다고 생각하였고, 이러한 본질을 화폭에 담아내기 위해 하나의 사과를 썩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그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러한 세잔의 작품과 개념은 비록 19세기에 속해있지만 그의 작품은 20세기의 많은 화가들에게 경향을 미쳤으며,  그중 가장 큰 영향을 받은 화가가 바로 피카소입니다.

어떤가요? 피카소가 영향을 받을만 한가요?

세잔이 사물을 구조로 바라보고 결국엔 "자연의 모든 것은 구(球)와 원추 및 원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이 단순한 도형들로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라고 말한 것은 사물을 큐브만으로 바라보는 피카소의 큐비즘과 확실히 닮아있습니다.


세잔의 이러한 화풍은 그의 말년에 가장 원숙하게 나타납니다.

특히 목욕하는 사람들을 소재로 그린 그림은 1875년에 시작되어 세잔이 죽기 직전까지 계속해서 그려진 연작이지요. 평론가들은 이 그림 속 인물의 형태가 구와 원추, 원기둥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세잔의 화풍의 형태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말합니다.

(얘들아 세상 별거 없다... 구, 원추,  원기둥뿐...)

대수욕도 (1906)


재미있는 것은 이 그림의 속사정인데요. 성격상 사람을 대하는 것이 어렵고 주변 사람들의 눈총이 무서워서 세잔은 실제 모델을 불러서 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예전에 그렸던 드로잉이나 사진을 참고하여 상상만으로 그림을 그렸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의 형체를 보지 못하고 상상만으로 그려진 <목욕하는 사람들> 연작은 인물화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추상적인 인체의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그래서인지 <목욕하는 사람들>의 인물 형체를 보고 있자면, 왜인지 피카소의 작품과 비슷하다고 느껴지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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