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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일 Jun 18. 2021

잔반

흐리게 비벼진 세상만 한 그릇 남아서

비비는 만큼 비빔면은 맛있어졌다


일 치르고 혼자 남은 첫 날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면을 삶고 오이를 잘랐다

어슷썰기로 뚝 뚝

도마 위 칼 소리만

동그랗게 떨어졌다


남은 비빔장을 모두 풀고

눈을 비볐다

빨개질 때까지

물기 찰 때까지


양념은 왜

오래된 게 더 매울까


냉장고가 기억하는 세월

짙은 내용물

세상에 두고 간 마지막 손맛이


희미해졌다


흐리게 비벼진 세상만

한 그릇 남아서


- <잔반>, 해일(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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