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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일 Feb 13. 2022

검정치마-Antifreeze 노래읽기

낭만이 얼어버린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스

https://youtu.be/PGADim6UzHE



우린 오래 전 부터 어쩔 수 없는 거였어
우주 속을 홀로 떠돌며 많이 외로워 하다가
어느 순간 태양과 달이 겹치게 될때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거야

하늘에선 비만 내렸어
뼈속까지 다 젖었어
얼마 있다 비가 그쳤어
대신 눈이 내리더니
영화서도 볼 수 없던 눈보라가 불 때
너는 내가 처음 봤던 눈동자야

낯익은 거리들이 거울처럼 반짝여도
니가 건네주는 커피 위에 살얼음이 떠도
우리둘은 얼어붙지 않을거야
바다속의 모래까지 녹일꺼야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거야
얼어붙은 아스팔트 도시위로


숨이 막힐 것 같이 차가웠던 공기속에
너의 체온이 내게 스며들어 오고 있어


우리 둘은 얼어붙지 않을꺼야
바다속의 모래까지 녹일꺼야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꺼야
얼어붙은 아스팔트 도시위로

너와 나의 세대가 마지막이면 어떡해
또 다른 빙하기가 찾아오면은 어떡해

긴 세월을 변하지 않을 그런 사랑은 없겠지만
그 사랑을 기다려 줄 그런 사람을 찾는거야
긴 세월을 변하지 않을 그런 사랑은 없겠지만
그 사랑을 기다려 줄 그런 사람을 찾는거야

사진 by @haileypick



검정치마의 'Antifreeze'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이다.

멜로디도 좋지만 특히 가사의 스토리에서 느껴지는 그 세기말적 로맨티시즘이

내 감성을 잔뜩 끌어내기 때문에 좋아한다.


노래는
지구에 '빙하기'가 찾아왔다는 설정에서 시작된다.



미래의 어느 시점.

비가 내려 뼛속까지 젖더니,

영화에서도 볼 수 없던 눈보라가 치며

세상이 모두 얼어버린다.

이렇게 '내'가 속해있던 안전한 세계가 한꺼번에 붕괴할 때,
무너진 세계 속에서 내가 처음 만나게 된 것은, 바로 '너'의 눈동자였다.





그렇게 만난 너와 나는 사실

'오래 전부터 어쩔 수 없는' 거였다.


각자 외로운 소행성으로 이 광활한 우주를

여태까지 홀로 떠돌았지만,

'태양과 달이 겹치는',

자주 오지 않기에 더욱 운명적인 순간에,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서로가 서로에게 'the one'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너와 내가 만나게 된 것은, 오래 전부터 불가항력의 알수없는 힘에 의해 정해진 것 - 즉 우리는 '운명적 관계'인 것이라고,

그것이 실제이든 실제가 아니든,
운명적 관계가 존재하든 아니든,

노래속 연인은 그렇게 자신의 관계의 운명성을 규정하고 그것을 믿는다.







시간은 흘러,
빙하기 하의 지구는

낯익고 안전했던 거리가 거울처럼 반짝이며 낯설게 변하고,
'따뜻함'이 속성인 커피에 살얼음이 뜬다.

이들은 모두 '내가 속한 세계'가 붕괴하는 징후들이다
이렇게 내가 몸담은 세계가 하나씩 무너져내리는

절망적인 순간에

나는 '우리들은 얼어붙지 않을거야'라고 외친다.


주변이 모두 얼어붙어도,

주변의 모든 것이 자신의 본디 속성을 잃어버려도

우리는 얼어붙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사랑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체온으로 세상을 녹이고,

춤을 추며 '절망'과 싸울 것이다.


사랑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는,

 '낭만적 사랑'의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낭만적 사랑'은 신화일 뿐이다

변하지 않는 사랑, 모든 것을 이겨내는 사랑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시대말적 빙하기에 처한 노래속 연인은,

낭만적 사랑을 믿으며 시대의 마지막 로맨스를 만들어낸다.


이어지는  '너와 나의 세대가 마지막이면 어떡해'라는 가사에서는

이들 연인 스스로가
'낭만적 사랑'을 하는,

아니, 적어도
'낭만적 사랑'의 가능성을 믿고 있는 마지막 세대이면 어찌하냐는 두려움과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빙하기'
'낭만적 사랑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시대'로도 읽힌다

이는 비단 이 연인만이 갖고 있는 두려움이 아니라,

어찌보면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두려움일 것이다


우리 시대의 낭만은 정말 죽었는가?








이러한 두려움에 대해, 노래 속 연인은 말한다.

빙하기만큼이나 긴 세월을 기다리는, 그런 낭만적 사랑은 사실 정말 신화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랑은 사실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랑의 가능성을 믿고
운명적인 the one을 기다릴 수 있는,

그런 '낭만'을 가진 사람은 존재한다고.
그런 사람을 만나서 빙하기를 이겨내자고.


'낭만적 사랑'은 신화이지만,

'낭만'을 가진 사람과의 '사랑'은 실화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예전에 한 영화를 봤을 때, Antifreeze가 떠올랐었다.

바로 좀비와 인간의 사랑을 그린 좀 생뚱맞은(?)영화,

웜 바디스.




정상적 세계가 무너져내리고,
사람이 사람을 먹는 디스토피아의 상황 속에서
'사랑'을 통해 '내가 속했던 세계'로 돌아온다는 설정이
Antifreeze의 빙하기 설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속에서
좀비인 R이 사랑할 능력을 되찾자

다시 '인간'이 될 수 있었다는 설정은 어쩌면

진정한 사랑을 할 능력을 잃어버린 현대인은 사실 살아있는 것처럼 보여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살아있는 '좀비'나 마찬가지라고 설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찬가지로, Antifreeze의 빙하기 또한
'사랑할 능력을 잃은, 낭만이 얼어붙은 이 시대'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운명적 'the one'이 존재하든,

낭만적 사랑이 신화이든 아니든간에

그 존재 여부를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래속 연인이 서로를 '태양과 달이 겹치는' 운명적인 순간에 비로소 만난 소중한 인연인 것으로 여기듯,

내가 만나는 사람을 그만큼의 무게로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로  대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주변의 모든 것이 얼어붙어도 우리만은 변치 않겠다는, 얼음마저 녹이겠다는,

그 정도의 따뜻한 온도를 갖는 것.

인스턴트적 소모성 관계가 아닌, 관계를 좀 더 진정성있게 이어나가는 '현실적인' 낭만을 갖는 것이 아닐까.


https://youtu.be/AvM6l023gJ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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