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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일 Feb 11. 2022

시를 잃은 그대에게


“이 수업에는

시 합평 때마다 자기가 쓴 시를 읽으며 우시는 어머니가 있고

자기 이름 대신 어머니의 이름으로 호명되고 있는

한 아들도 있고

수업 때마다 책상에 모두를 위한 간식을 올려 두시는 아버지도 있다 귤을 가져오신 날에는

‘귤 까먹으면서 시를 읽으면 좋잖아요’라는 말을 하시며 수줍게 웃으셨고

새해 직후 수업에는 신년 떡을 가져오셨다


조개 모양 마들렌이 모두의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날엔

습작 노트에

‘교실에 들어가보니 책상에 바다가 이사와 있었다’라는 문장을 썼다

오늘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반숙란을 먹었다


시는 가끔 생활을 유예하는 방식인 것 같다 오늘 낮에는

내가 나인 것을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있었지만

밤에는 견딜 수 있었다”

-2019. 1. 16 일기 중에서




시를 매일같이 쓰던 시절, 뭘 하든 시 생각밖에 안 나던 시절.


 그 때 썼던 일기들을 보면 어쩜 저렇게 감성이 풍부했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문장일 뿐인데도 시 같다.


일기장에 “밀가루처럼 말들이 떨어졌다. 발아하지 못한 말의 씨들이 덜 하얘지는 방식으로 쌓였다”, “잃어버린 마음에 매일 출석해”, “진폭이 큰 감정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해가 느슨해지는 이런 시점에는 사물과 사람이 가진 기울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따위의 말을 쓸 수 있었다니.


뭔가를 써야할 때가 되면 텅 빈 워드 페이지 위 깜빡이는 커서를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마음을 진솔하게 써내려 가려면 술이라도 마셔야 할까’, 고민하는 지금의 나와는 참 다르다. 아니 지금은 애초에 내 마음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아내기도 쉽지 않다.



그 땐 뭘 써야할 지에 대해 고민한 적이 없었다. 합평 모임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매주 새 시를 가져올 수 있냐고 궁금해할 정도로. 복수의 시 수업들과 2개의 합평 모임을 병행했는데 시를 못 써간 적이 한번도 없었고, 화장실에서도 시 생각이 나서 메모 중독증에 걸릴 정도였다.


고민할 겨를도 없이, 마음 속에 물레 같은 게 쉴 새 없이 돌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을 모조리 토해내고, 얼른 실을 자아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계속해서 뭔가 쓰고 싶었고, 써졌고, 그래서 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쉬지 않고 21km를 달려도, 매일같이 한 시간씩 수영을 해도 영감이 떠 오르기는커녕 오히려 머릿속이 진공 상태가 된다. 그 때의 나라면 뭔가를 써 내려가게 해줄 씨앗이 수도없이 생기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넘쳐 흐르던 나의 씀에 대한 욕구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언제부터 거세된 것일까.




하나의 가설은 있다. 그건 미치도록 시인이 되고 싶었던 그 때, 나와 비슷한 꿈을 꾸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물었던 질문과 일맥상통한다.


“너는.. 세상에 행복한 시인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일견 중2병스러운 질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 때 내가 그렇게도 절절히 시에 기댈 수밖에 없던 이유는 생활이 어지간히 힘들었기 때문이구나, 싶은 거다. 위의 일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 당시 시는 나의 도피처이자, 유일하게 숨 쉬는 공간이자, 맘에 들지 않던 내 생활을 유예하는 방법이었던 거다. 생활 속에서 쉽사리 털어내지 못한 스트레스가, 우울감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물레 역할을 해준 것이다.   

글을 쓸 때면 죄책감 없이 내 안으로 깊이 침잠할 수 있었고, 그래서 아주 오래 전 숨겨뒀던 빙하 밑의 기억까지 모두 꺼내어 훌륭한 글감을 발굴할 수 있었다. ‘시’라는 장르의 모호성 덕분에 그 글감들은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내가 숨기고 싶은 만큼 맘껏 숨기면서도 동시에 내 마음이 허용하는 만큼의 자유로움은 곁들여 표현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를 지독히도 괴롭히던 일은 다행히도 1년이 채 되지 않아 깨끗이 해결되었고, (사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게 왜 그리도 힘들었을까 싶다, 아마 지금보다 어렸기 때문이겠지.) 그 뒤 나는 다시 무척이나 힘들어하던 일도 돌아서면 누구보다 빠르게 잊어버리는,

천상 낙천적인 “NO STRESS, YES 붕어”적인 DNA를 가진 나로 돌아갈 수 있었다.


본 트랙으로 돌아온 나는 달리기 한 번으로, 맛있는 음식과 풍부한 취향의 음악으로, 친구들과의 맥락 없는 수다로 낮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정상적으로 깨끗이 털어내며 퇴근 후의 시간 동안엔 삶의 다양성을 흠뻑 만끽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복귀했다.


그렇지만 그건 새로운 딜레마를 만들어냈다. 어찌됐던 시인이 되고 싶은 것(이건 이상과 백석 시인의 시집을 침대 밑에 숨겨두고 읽던 중학교 때부터의 꿈이다), 계속해서 어떤 장르로든 글을 쓰고 싶은 것, 글로 내 속내를 드러내고 나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을 남기는 것이 천생의 목표인 나는 변하지 않는 걸. 하지만 뭘 써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행복할 때도 물론 글을 썼지만, 그것은 시가 아니었다. 내가 했던 일, 좋았던 일에 대해 시계열적으로 사진과 곁들이는 초등학생 그림일기와 다를 바 없는 글만을 쓸 수 있었다. 2019년에 궁금해 했던 질문의 답을 직접 경험으로 찾아버린 것이다. 정녕 행복한 사람은 시를 잘 쓸 수 없는가. 털어낼 수 없는 삶의 우울감이 있어야만 좋은 글을 쓸 수 있는가.

(이 말은 그런데 너무 슬프다)




시에 미쳐 있을 때 내가 시에서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무용하다”는 점이었다. 시는 필연적으로 무용하며, 그렇기에 개개인이 거기서 ‘굳이’ , ‘부러’, ‘유난스럽게’ 찾아내는 의미가 더 소중할 수 있었다. 아니, 의미 따위는 없어도 좋았다. 가끔은 이렇게까지 무용한 일에 전력을 다하는 시인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눈에는 정말 무용해 보일 수 있는 문장들과 가치에 온 마음을 쏟고 있는 나 자신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런 신기한 부분을 좋아했던 것 같다. 굳이 의미와 효용을 찾지 않아도 되는 삶의 부분.


하지만 삶의 시련 및 그것을 견디게 해 준 ‘시’와 멀어진 후의 내 삶은 극단적으로 ‘유용’을 추구했다. 아니, 그것을 추구해야만 할 것 같았다. 뭔가를 새로 시작할 때는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 거기 들이는 비용에 비해 내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어느 정도인지를 반드시 고민하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이것도 내 ‘과잉 수정’의 일부일 수 있을까.

어쩌면 시와 함께한 당시 내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그 시절의 나를 내심 까마득히 잊고 지내고 싶었던 무의식이 발현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post-poetry 시절을 살아내며 나는 내 천성보다 과하게 논리를 추구하고자 했고, 과하게 감성을 억눌렀던 것 같다. 그랬기에 쓰고 싶은 말, 하고 싶은 말을 술과 꿈을 통해 찾아야만 했겠지.


원래 내 인스타 바이오의 소개말은 ‘좋아하는 일들을 좋아할 수 있을 만큼 합니다’였다. 이렇게 쓰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좋아하는 것이 생계가 되거나 그 결과의 성패가 내 자존감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그것들에 몰입하게 되면, 좋아하는 마음 자체가 퇴색될 수 있기 때문에, 딱 좋아할 수 있을 만큼 하고 싶다’고 설명하곤 했다.


하지만 그 글귀를 올해부터는 ‘좋아하는 것들을 맘껏 좋아하며 삽니다’로 바꿨다. 그 전의 소개글이 논리를 추구해야 한다고 믿는 내 자아가 시를 멀리하기 위해 만들어낸 변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딱 ‘좋아할 수 있을 만큼’만 한단 말인가. 감성적인 내가 싫어진 나머지 스스로 과잉수정해서, ‘지나치게 논리적인 나’를 추구하느라 나온 말 같다.

 좋아하다 보면 잘 하고 싶고, 너무 잘 하고 싶다 보면 실패할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싫어질 수도 있고, 그러다가 다시 좋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실패할까 봐 두려워서 ‘좋아할 수 있는 만큼만 좋아하자’고 정도를 정해두는 건 비겁한 일이다.


시를 잃어버린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다시 아무 재고 따짐 없이 시를 좋아할 수 있던 그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지.

행복한 사람도 분명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정의하는 행복은 삶에서 무용한 것들을 특히 아낄 줄 아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적어도 내게는 매우 중요한 것들이니까.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좋아하고, 누구에겐 무용해 보일지 모르는 일들을 가늠할 수 없는 이유로 설레면서 하고, 그것들이 주는 감정의 홍수에 젖는 삶을 살고 싶다.


생활이 죽을만큼 힘들지 않아도, 글과 가까운 삶을 살아야지. 글과 나, 또는 시와 내가 공존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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