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돌리는 시간
세탁기를 돌릴 때면
잠시 멈춰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된다.
오늘 내 손에 들린 이 빨래 바구니에는
하루하루의 시간이 그대로 담겨 있다.
어제 젖었던 수건,
아이의 얼룩진 티셔츠,
퇴근길에 벗어놓은 남편의 셔츠,
밤늦게 혼자 울다 말라버린 내 잠옷까지.
이 모든 것이 다시 함께 모여
세탁기 앞에 놓인다.
그냥 통째로 던져 넣고 돌려도
어찌 보면 상관없는 일이지만
왠지 오늘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젖은 것, 색이 빠질 것,
섬세한 재질의 것,
각기 다른 옷들을
하나하나 손에 들고 살핀다.
누군가의 옷을 살핀다는 건
그 사람의 하루를 이해하려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무심코 던져놓은 빨래 속에도
숨겨진 감정들이 있다.
바쁘게 보냈을 그날,
말없이 흘린 땀방울,
무거운 마음으로 입었던 옷.
세탁기 앞에서
나는 조용히 그 마음을 헤아려본다.
물의 온도를 맞추고,
세제의 양을 조절하고,
탈수는 너무 세지 않도록
부드럽게 다뤄야 할 옷은
별도로 손빨래도 해본다.
마음도 세탁이 필요하다.
그냥 잊자고, 그냥 씻겨나가라고
마구잡이로 밀어 넣으면
오히려 더 상처받는다.
감정도 섬세히 분류해야 한다.
슬픔은 슬픔대로,
서운함은 서운함대로.
그에 맞는 온도와 속도로 헹궈줘야
다시 말릴 수 있다.
빨래가 돌아가는 소리는 참 묘하다.
처음엔 거칠게 엉켜 있다가
물에 젖고, 거품이 생기고,
하나하나 풀려나듯 돌아가기 시작한다.
마치 내 마음도 그렇게
천천히 풀려나가는 느낌이 든다.
삶이 복잡하고 엉켜버렸을 땐
이처럼 한 겹씩 풀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물속에서 천천히 풀어지는 섬유처럼
내 안의 감정도 그렇게
풀리고, 젖고, 헹궈지고, 다시 새로워지기를 바란다.
세탁이 끝나면
다시 햇살이 가득한 베란다로 향한다.
물기를 머금은 옷을
하나하나 걸어두며
나는 비로소 오늘 하루를 정리한다.
그 순간의 바람,
마른빨래에서 풍겨오는 깨끗한 향기.
그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살림은 때로
세상의 가장 단순한 움직임 속에서
삶의 가장 깊은 위로를 건넨다.
나는 오늘도 세탁기를 돌리며
내 마음을 함께 헹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