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속 버리지 못한 옷
옷장을 열면 꼭 한두 벌 때쯤,
입지 않으면서도 버리지 못한 옷이 있다.
입으면 조금 끼고,
어쩐지 내 스타일은 아닌데도
매번 정리할 때마다 ‘이번에도 그냥 두자’ 하며
슬며시 다시 걸어두게 되는 옷.
한때 자주 입었던 원피스,
여행 가기 전 들떴던 마음으로 산 치마,
혹시 살이 빠지면 입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남겨둔 청바지.
모두 지나간 시간 속의 나와 함께했던 옷들이다.
문제는,
그 옷들을 꺼내 입지 않으면서도
그 자리를 비워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옷장은 늘 가득하지만
막상 입을 옷은 없다.
입고 싶은 옷을 찾기 어렵고,
새 옷을 걸 공간도 부족하다.
마음도 그렇다.
지금은 입지 않는 감정,
이미 지나간 관계,
더는 나에게 맞지 않는 기억을
버리지 못한 채 마음 한편에 그대로 두고 살아간다.
그땐 소중했던 말,
그때만큼은 간절했던 순간,
그 모든 감정들이
지금의 나에겐 어쩌면 맞지 않는 옷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르는데
괜히 그 시절을 배신하는 것만 같아
마음속 옷걸이에 그대로 걸어두고 만다.
하지만 결국,
마음도 숨을 쉬기 위해선
공간이 필요하다.
지금의 나를 위한 여백,
새로운 감정을 담을 틈.
버림은 포기가 아니다.
놓아주는 일이다.
그때의 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더 정직하게 마주하려는 선택.
그래서 오늘은 조심스럽게
그 옷들을 꺼내본다.
그때 그 옷을 입고 어디에 갔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떠올려 본다.
그리고 조용히 말한다.
“고마웠어. 덕분에 즐거웠어.
하지만 이제는 보내줄게.”
그렇게 옷을 접어내는 손끝에
마음도 조금 가벼워진다.
비워진 옷장 안에는
햇살이 더 깊이 스며든다.
살림이 마음을 닮았다면,
정리는 결국 나를 위해 하는 일이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구분 짓고,
미련이 아닌 애정으로 정리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온기를 담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옷장을 정리하며,
나는 내 마음을 하나씩 정돈해 간다.
버리지 못해 쌓인 시간들을
부드럽게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