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속의 잡동사니
살다 보면 한 번쯤, 서랍을 열다가 멈칫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무언가를 찾으려 서랍을 열었지만,
정작 거기엔 찾고자 했던 것보다
오래전에 넣어두고 잊은 것들이 가득하다.
구불구불 꼬인 고무줄,
종이포장도 뜯지 않은 AA 건전지 두 개,
이젠 쓰지 않는 리모컨,
잃어버린 귀걸이 한 짝,
언젠가는 고치겠다고 챙겨 둔 끊어진 목걸이.
하나하나 꺼내보다 보면,
그건 단지 물건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내가 꾹 눌러 넣어둔 작은 마음조각처럼 느껴진다.
당시엔 분명 필요했던 것들이다.
잊을 수 없었던 무언가,
다시 꺼내 쓸 날이 오리라 믿었던 것들.
하지만 시간이 흘렀고,
나는 그 존재조차 잊고 있었다.
마음속에도 그런 서랍 하나쯤은 있다.
늘 닫혀 있는 그 마음 구석에
버리지 못한 감정,
정리되지 않은 말들,
되돌아보지 않은 기억들이
잡동사니처럼 어지럽게 쌓여 있다.
처음엔 버리기 아까웠고,
정리하려니 어쩐지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서 그대로 덮어두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처럼 살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언젠가 그 서랍을 열어야 할 때가 온다.
어디에 뒀더라,
기억을 더듬다가 결국 다시 마주하게 되는
내 안의 오래된 감정.
그리고 그제야 깨닫는다.
이제는 정말 버려야 할 때가 왔다는 걸.
다시는 필요하지 않은 마음,
더 이상 맞지 않는 감정들.
그건 추억이 아니라 짐이었다는 걸.
물건을 하나하나 꺼내어 보며
나는 조심스럽게 내 마음도 꺼내어 본다.
그때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
오해로 남은 장면,
혼자 앓다 묻어둔 마음의 파편들.
살림의 서랍을 정리하는 일은
결국 내 마음의 서랍을 정리하는 일이다.
버릴 건 버리고,
남길 건 곱게 다시 접어 담는 일.
그게 나를 더 가볍게 만들어준다.
정리 후 남은 빈 서랍을 보면
마음도 환하게 정돈된 느낌이 든다.
이제는 새로운 무언가를 담을 수 있을 것 같은 여유.
감정을 정리한다는 건
단지 과거를 털어내는 게 아니라
앞으로를 위한 공간을 여는 일이라는 걸,
나는 오늘 서랍을 정리하며 다시 배운다.
살림은 참 깊다.
작은 물건 하나에도
삶이, 마음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오늘 내가 정리한 건
고무줄과 건전지만이 아니었다.
그 안에 눌러두었던
내 지난날의 마음 한 조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