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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현 Nov 01. 2019

걱정 말아요, 무대

우리의 걱정과 불안함이 이야기가 되고, 공연이 된다.

한 공연은 어떻게 시작될까. 사실 공연의 시작은 소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글을 쓸 때 소재를 생각하는 것처럼,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공연을 만들까'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한다. 그 고민을 바탕으로 작가가 쓴 대본이 나와야 하고, 그 대본에 연출과 배우, 무대, 조명이 섞여 한 공연이 무대에 오르는 것이다.


그러면 위에서 말한 공연의 '소재'는 어디에서 올까? 최근에 필자가 본 몇몇 공연들을 생각해본다. 기존에 자주 올랐던 작품들은 덜어내고, 초연이나 재연이었던 작품들만을 가지고 오자.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 뮤지컬 ⟨벤허⟩,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 연극 ⟨오만과 편견⟩, 연극 ⟨이갈리아의 딸들⟩이 떠오른다.


오늘 주로 이야기할 극은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다. (© ㈜랑)

대부분의 작품들은 역사적인 사실이나 과거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그 이야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무대에 그려낸 것들이다. 그런데 이 중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는 다음 웹툰에 연재 중인 캐롯 작가의 동명 작품 중 한 에피소드,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를 뮤지컬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결은 조금, 다르다.


우선 동시대의 웹툰을 공연화했다는 점에서, ⟨이토록 보통의⟩는 완전한 창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애초에 공연을 의도하고 쓰이지도 않았거니와, 에피소드 제목인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만 보아도 배경이 말 그대로 '안드로메다'기에 무대로 옮기기 쉽지 않았을 이 작품. 필자는 이 작품이 최근 좋은 평을 받은 것이, 우리가 느끼는 걱정과 불안을 무대 위로 옮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걱정과 불안함의 이야기


이야기에는 늘 갈등이 있다. 갈등이 없는 이야기는 대단히 어색한 서사가 된다. 오죽하면 중학교, 고등학교 때 소설의 대표적 구성인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을 달달 외우게 했을까.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사이가 좋지 않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을 이룩하고자 하는 거룩한 갈등이 있었고, ⟨지킬 앤 하이드⟩는 선과 악을 구분하려는 지킬 박사의 내면적 갈등이 결국 다른 인격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갈등의 서사는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서사인 것 같다.

사람들이 갈등이 담긴 서사를 (그것도 갈등이 강하면 강할수록)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네 삶에도 다양한 갈등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삶에는 극이나 영화나 소설에 나올 정도로 강한 갈등 잦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갈등을 이해할 수 있는 삶을 살아왔기에 더욱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걱정과 불안, 갈등을 담은 서사는 본질적으로 가장 좋은 마케팅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극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위에서 언급한 ⟨이토록 보통의⟩는 무려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라는 엄청나게 공포스러운 서사를 가지고 있다. 너무나 일상적으로 나와 만나고 사랑을 나누던 내 연인이 어느 날 갑자기 "사실 나는 네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 ㈜랑

스포일러를 최대한 피하기 위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토록 보통의⟩는 나의 연인이 알고 보면 '복제 인간'이었다는 서사다. 일 년간 꿈에 그리던 여행지로 여행도 가고, 행복한 시간을 함께 하던 연인은 원래 연인의 복제 인간이고, 진짜 연인은 그녀의 꿈이자 목표였던 우주비행을 다녀왔다면 어떨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이 이야기가 곧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속에 살고 있다. 바둑기사 이세돌이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거둔 소중한 1승은 바둑에 있어서 인류가 인공지능에게 거둔 마지막 승리가 되었다. 인공지능을 통한 음성 합성으로 인간은 이미 전화 속 상대가 사람인지 인공지능인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완벽하게 데이터화 된 연인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또 다른 복제 연인을 알아볼 수 있을까?


© ㈜랑

이런 종류의 공포를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운하임리히(Umheimlich)라고 했고, 영어로는 언캐니(Uncanny)로 번역되곤 한다. '친밀한 대상으로부터 느끼는 낯설고 두려운 공포'라는 뜻이다. 이전에는 소설 ⟨프랑켄슈타인⟩이나 히치콕의 영화 ⟨사이코⟩, ⟨새⟩ 등을 설명할 때 주로 사용했던 개념을 현대 극의 불안함과 갈등을 표현하는 것에 동등하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각 시대에 따른 불안과 걱정들이 있다. 메리 셀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쓰던 1810년대는 인도네시아의 탐보라 화산이 대분화를 해서 세계적으로 '여름이 사라진 해'로 유명했고, 종말론적인 분위기가 팽배하던 그 시대의 갈등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알파고의 승리로 인한 인간 내면적인 불안함이 관객들이 ⟨이토록 보통의⟩의 서사에 공감하게 하는 데 한몫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무서운 척하고 썼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 ㈜랑)


현대의 이야기는 현대의 고민과 걱정들을 담아낸다. 그리고 무대는 이야기를 현실로 가져온다는 점에서 가장 강한 현실화의 수단이 된다. 현실을 화면 속에 가장 구체적으로 그려낸 영화나 드라마조차도 실제 사람이 내 앞에서 말하고 움직이는 무대만큼 효과적으로 서사를 전달하지 못한다. 그래서 무대는, 우리가 안고 있는 걱정과 불안을 현실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매개체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공연의 목적은 공포와 갈등을 전달하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토록 보통의⟩는 무려 이 서사의 무대를 아름답고 몽환적으로 그려 낸다. 필자가 위에 쓴 것과 같은 복제 인간의 기괴함과 공포 따위는 극 속에 거의 존재하지도 않는다. 극이 초점을 맞추는 건, 그런 갈등의 상황에서 그들의 사랑이 어느 방향을 향하는 지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극이 시대의 걱정을 담아낸다고 해도, 결국 그 극을 본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걸어가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그것이 공연이 우리를 위로하는 방식이며, 무대가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바다.


브로드웨이의 공연 포스터는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걱정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작가 조승연은 최근 유튜브에서 브로드웨이를 소개하며 뮤지컬 ⟨해밀턴(Hamilton)⟩과 뮤지컬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를 현재 미국에서 가장 핫한 극으로 소개했다. 이 두 극을 통해 조승연은 미국이 최근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다문화 국가로서의 미국의 정체성', '인종차별'임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 언젠가 공연을 보러 대학로에 가게 된다면, 잠시 고개를 들고 어떤 극들이 공연장 벽을 차지하고 있는지 돌아보자. 우리의 걱정, 우리의 고민은 무엇일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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