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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의노래 Jan 05. 2022

간격: 나무와 나무 사이

[먼 곳의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4]


아름다운 세상

음악을 만들고 부르는 일을 하지만 어느때는 듣는 것도 부르는 것도 힘이 드는 순간들이 오곤 해요. 한 동안 새 음악들을 잘 듣지 못했어요. 어떤 압박감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그런 평화로운 시간을 내 스스로 포기한 삶을 살고 있어서였는지도 모르겠어요. 새로 소설을 읽기 시작하고 다른 이들의 삶의 모습을 글 속에서 만나면서, 그리고 지하철에서 졸지 않게 되면서 다시 음악을 듣기 시작했어요. 오늘 아침에는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음악가의 새 앨범을 들으면서 왔는데, 남은 소설 몇장을 읽다말고 잠시 음악 앞에 멈췄어요


강아솔 <잠든 너의 모습을 보며>

결국 한 사람만 이 세상에 남게 되는
시간이 언젠가 찾아오겠지
매일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매일이 사라져가고 있는 걸지도 몰라
그래서 오늘도 사랑을 말해
모든 걸 잊지 않기엔
기억은 힘이 약해
그래서 매일 사랑을 말해


‘너’는 누구의 연인이었을지

누워계신 어머니의 뒷모습이었을지

아니면 늙으신 할머니의 뒷모습이었을지 알수는 없지만 매일 사라지고 있는 우리는 서로를 향해 그렇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어야 하는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한 동안 당신과 나눈 소중한 이야기들이 잊혀질까 두려워, 조용히 혼자가 되면 그 이야기들을 기록하곤 했어요. 다시는 말하지 않을 것 같은 순간의 느낌들,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것 같은 찰나의 마음들, 눈빛들, 바람들, 풍경들… 나눈 이야기 속에 담긴 단어와 문장들이 오롯이 살아나 그 순간을 기억하게 했어요. ‘기억은 힘이 약해’ 라는 말은 참 맞는 것 같아요. 몇번이고 다시 꺼내어 보곤 했지만 오래간만에 노트를 꺼내보니 또 새롭고 그리운 말들이네요. 기억력이 약한건지 오늘에 충실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제를, 작년을, 지난 시간의 나를, 누군가를, 자주 잊어요. 뇌의 방향도 앞으로만 가는 이해하기 힘든 지경이라 그래도 지나온 것들이 그렇게 잊혀지는건 아까워서 가끔 어떤 것들은 그렇게 기록되도 좋겠다 생각했어요. 오래전 옛 연인에게 썼던 800통에 이르는 손 편지들이 사라졌을때부터였을까, 그런 시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집착이 생긴 것도 같아요.(그럼에도 나는 매일 잊고 잊혀져 가지만) 어느 순간부터 일기도 글도 자주 쓰지 않게 되니 어느새 나는 기록하기 조차 잊었는데, 어쩌면 당신 덕분에 무언가를 기록하고, 지금도 덕분에 다시 이렇게 편지라도 쓰고 있네요. 고마운 일이죠 내겐.


우린 모두 사라질 것이고 우리의 기억도 시간도 사라지겠지요. 어떤 기억들이 오롯이 남아서 마지막까지 나에게 담겨져 있게 될까 궁금해요. 아무리 기록해도 언젠가는 다 사라져 가겠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꼭 하나 남는 그것은 있겠죠. 그게 무엇이든지.


당신과 편지를 주고 받을 땐 자주 시집을 읽고 엉성하지만 ‘시’인척 하는 글들을 써서 나누기도 했는데 마지막으로 시를 읽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네요. 무엇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는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도대체 어디에 가 닿고 싶은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꾸준히 새로운 일들을 향해 한치의 쉼도 없이 가고 있네요. 그래서 당신과 함께 했던 가만히, 여기에, 있는 그 시간들이 더 소중했던 것 같아요.



언젠가 친구들과 노래로 만들었던 ‘안도현’ 시인의 <간격>이라는 시를 읽으며 오늘의 편지를 마무리 할까 해요. 그날도 지리산의 아주 작은 구들방 아래서 아무 할 일 없이 서로 시를 읽어 주다가 누군가는 기타를 들었고 누군가는 한 소절 멜로디를 시작했고 누군가는 그 멜로디를 이어갔고 어느새 우리는 화음을 쌓았고 그렇게 노래가 되었어요~ 이 노래는 그런 시간들의 기록이기도 해요. 숲틈사이로 우리는 우리가 되어가고 있었겠죠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개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진채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되는
벌어진채로 최대한 벌어진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간격과 간격 사이

울울창창 숲을 이뤄
울울창장 숲을
이룬다는 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멀리 있을 때는 몰랐다.

울울창창 숲을 이뤄
울울창창 숲을 이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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