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도 내 생각을 할까요?
그와 나의 마지막 접속 시간
그와 대화를 나누던 메신저를 열어보았다.
한 달 전쯤에 멈춰버린 그와 나의 대화. 지워버릴까를 수십 번 망설이다가 지난 대화를 읽어보며 나는 또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이런 내가 한심하고 안쓰럽고 바보 같아서 서둘러 대화창을 닫았다.
연락처 목록의 그의 이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매일 부르던 그의 이름. 부를 때마다 달콤한 맛이 나는 것 같아 내 입술의 아이스크림이 되었던 그 이름. 차마 소리 내어 부르지 못하고 입술만 움직여 이름을 불러본다. 이제는 너의 이름을 부를 일이 없겠지. 한때는 너무 당연하던 것이 때때로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들이 되곤 한다. 이렇게 이름을 부르는 작은 것조차도.
이름을 불러보는 대신 그의 이름을 손 끝으로 눌러보았다.
익숙한 그의 정보들이 떠오른다.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나는 하나씩 읽어본다. 그의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그동안 몰랐던 메신저의 새로운 기능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 접속 시간이 나와 있다는 것! 그와 이 메신저를 통해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이런 기능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하긴 그와 헤어지기 전에는 그가 언제 마지막으로 접속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내가 접속해 있으면 당연히 그도 접속해 있었으니까. 그와 나는 언제나 함께 '온라인'이었으니까.
남들이 흔하게 쓰는 카톡 대신 이 메신저를 선택한 이유는 둘만의 특별함을 위해서였다. 가족과 친구들 혹은 회사 사람들이 수시로 말을 걸어대는 카톡 대신 이 메신저를 울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 사람뿐이라는 것이 좋았다. 카톡과는 다른 그 메신저의 알림음이 들릴 때마다 휴대폰을 보기도 전에 나는 행복했다. 확인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라는 확신이 나를 안도하게 하고 충만하게 했다. 이제는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그 소리가.
마지막 접속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메신저를 열어보았다. 그가 언제 이 메신저에 다시 접속하는지 미치도록 궁금했다. 그와 나는 다른 사람하고는 이 메신저로 소통하지 않았다. 우리 두 사람만을 위한 메신저였기 때문에 그가 이 메신저에 접속한다는 것은 나와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나와의 대화를 다시 보거나 혹은 나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서라거나.
하루에도 몇 번씩 메신저를 열고 그의 이름을 눌러 마지막 접속 시간을 확인했다. 그도 나처럼 우리의 대화를 다시 읽어보며 나를 그리워하는 것은 아닌지, 나에게 연락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바심 내며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러나 그의 접속 시간은 여전히 한 달 전, 마지막 대화를 나눈 그 날에 멈춰 있었다. 나는 헛된 기대와 망상에 사로 잡힌 사람인 걸까. 남자랑 헤어진 게 뭐라고 내 감정 하나 제어하지 못하고 이토록 쩔쩔 매고 있단 말인가. 이건 구남친의 SNS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답답하고(SNS에는 사진이라도, 근황이라도 나와 있지만 이건 겨우 접속 시간뿐이다) 더 구차했다.
그는 나와 헤어진 것으로 모든 것이 깨끗하게 정리가 된 거 같아 보여 내가 더 구차하게 느껴졌다. 헤어졌는데 뭐하러 메신저의 지난 대화를 다시 읽어본단 말인가. 그런 건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너울대는 파도처럼 지난 감정에 질척이는 나 같은 사람이나 하는 짓이다. 물론 그는 모르지만 나는 안다. 그래서 더 구차하다. 그는 모르고 나만 알고 있다는 것이.
어젯밤 던져버린 휴대폰을 들어 밤새 했던 중대한 결심을 실행하기로 한다.
그와 나눈 대화를 모두 지우고 이 메신저에서 탈퇴하겠다. 그와의 대화는 이대로 내 기억 속에 묻어두고 메신저를 삭제해 나의 구차함을 더 이상 확인하지 않겠다. 나는 이별을 했고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접속 시간 : 오늘 새벽 4시 21분
잠, 잠깐만.....!
오늘 새벽 4시? 21분...?
눈을 깜빡이며 마지막 접속 시간을 계속 확인해본다. 한 달 전에 멈춰있던 그의 마지막 접속 시간이 바뀌어 있었다. 그것도 새벽 4시! 내가 질척이는 감정에 괴로워하며 잠 못 이룰 때 그가 드디어 메신저에 접속을 한 것이다. 왜지? 뭐 때문이지? 메신저에 접속한 이유가 뭐지?
나는 어느새 모든 것을 삭제해버리기 위해 휴대폰을 열었던 것을 잊어버리고 진정되지 않은 가슴을 억누르며 메신저에 떠 있는 그의 이름을 자꾸 눌러본다.
오늘 새벽 4시에, 그는 내 생각을 했다. 분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