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_크라쿠프
소금광산 '비엘리치카' 가이드 투어를 신청한 투어 사무실에 나가니 벌써 버스 3대가 대기 중이었다. 늦은 것도 아니었는데 버스는 이미 만석. 띄엄띄엄 한 자리씩은 비어 있었지만 아이와 함께 앉을 두 자리는 없었다.
따로 앉을래?
혹시나 물어봤지만 역시나. 낯선 외국인 옆에 혼자 앉는 게 아이에게 쉽지는 않을 것도 같다. 어쩌지, 난감해하는 사이 투어 사무실 사장님이 불쑥 다가와 무슨 일인지 물어보더니 버스에 대고 안내 방송을 했다.
여기서 레이디는 나고, 프린세스는 딸. 다행히 어떤 '젠틀맨'이 나타나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어린이와 함께 여행을 하면 이런 장점도 있다. 물론 약간의 부끄러움은 감당해야 한다. 프린세스로 불린다거나 하는 거 같은.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은 개인으로 입장할 수 없어서 그룹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다국적 투어팀인 우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영어 그룹으로 묶였다. 우리를 맡은 가이드는 영국식 영어를 하는 여자 가이드 '알리스'였다. 알리스를 따라 소금광산으로 끝없이 내려갔다. 여기서 길을 잃으면 다시 못 나갈 것 같이 깊고 어두운 길을 계속 내려갔다. 개인 투어가 안 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소심한 레이디인 나는 그룹 내 유일하게 어린이를 동반하고 있었으므로 가이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룹 맨 앞에서 알리스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녀를 놓치면 안 돼! 프린세스는 내가 지켜야 하니까.
하하하... 하.
알리스의 말에 나만 웃었다. 왜 웃지 않는 거야? 농담이라고 생각한 건 나뿐인가?
설마 질문에 대답 못한다고 엘리베이터를 안태우겠냐고.
알리스는 성실한 가이드였다. 분명히 소금광산 전체 가이드 중에서도 톱클래스에 들 것이 분명했다. 꽤 자세한 설명을 해주고 어려운 폴란드 발음은 몇 번씩 따라 하게도 했다. 때때로 가이드라기보다는 엄격한 선생님처럼 모두가 그 단어와 발음이 될 때까지 확인하곤 했다.
광산 안에 *코페르니쿠스 동상을 설명할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맨 앞에서 알리스를 따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코페르니쿠스까지가 최선이었다. 그 이상의 이름과 명칭과 연도를 이해하는 건 레이디와 프린세스에게 버거운 일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뒤로 가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그룹 맨 뒤에 있었다.
*지동설을 주장한 그 코페르니쿠스가 크라쿠프에서 대학을 다니고 1493년에 여기 소금광산에 방문했다고 한다. 1973년 그의 탄생 500주년을 기념해 광산 안에 동상을 세웠다.
하하하... 하하.
이번에도 나만 웃었다. 농담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알리스, 당신!
내가 아는 유일한 답이었던 '코페르니쿠스'는 대답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알리스는 정말 답을 맞힌 사람들만 문밖으로 내보내 주었다. 이런 상황에 당황하는 건 오로지 나뿐인 듯, 다른 사람들은 손을 들고 대답하고 의기양양하게 밖으로 탈출하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투어를 예약할 때 이런 조항이 있었는데 나만 몰랐던 건 아닐까?
다들 이렇게 진지하게 문제를 맞히다니.
다들 왜 이러는 거예요?
서둘러 밖으로 나오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순식간에 지상으로 올랐다. 내가 지금 어딜 다녀온 거지?
시험 감독관 같던 알리스와 모범생들로 이루어진 투어 그룹. 산에서 소금이 났다더니 여기 뭔가 이상하다.
버스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 때문에 머리가 울릴 지경이었지만 전혀 시원하지 않았다. 찜질방에 들어온 것처럼 땀이 줄줄 흘렀다. 숙소에 겨우 돌아와 확인해보니 그날은 37도 폭염의 날씨였다. 시간이 아까운 여행자라도 돌아다닐 날씨가 아니었다. 침대에 뻗듯이 누웠다. 어딜 가나 내 몸 누일 침대가 최고다.
깜짝 놀랐다. 투어 중 드문드문 필요한 얘기는 해주었지만 그 얘기는 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 영어 잘 모르잖아,라고 하려다가 프린세스 앞에서 어쩐지 레이디가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심드렁한 프린세스.
이럴 땐 어쩔 수 없다.
코페르니쿠스 정도는 프린세스보다 레이디가 더 잘 알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