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_빌뉴스
우리는 리투아니아 빌뉴스 버스 터미널에서 폴란드 바르샤바행 야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타는 야간 버스에 약간 긴장해 있던 나에게 딸이 뜬금없는 거지 타령을 했다. 무슨 소리일까 주변을 돌아보니 과연 아이의 말처럼 '거지'가 많았다.
1년은 감지 않은 듯 떡진 머리에,
엉덩이가 어디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쳐진 더러운 바지를 입고,
신발을 신지 않은 건 예사,
살림을 지고 다니나 의심스러운 커다란 배낭을 멘,
거지 같아 보이는,
그들은 바로 여행자들이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딸이 질색을 했다. 그런 꼬마가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아이에게 세상엔 많은 종류의 여행이 있다는 걸 굳이 설명하지는 않았다. 이 아이도 분명 몇 년 후에는 저보다 더 한 꼴로 세상을 여행하겠다며 배낭을 메고 집을 떠날 날이 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 저 '거지'들이 행여나 자기 곁을 스칠세라 내 손을 꼭 잡는 이 작은 꼬마.
트윈 베드가 무색하게 제 자리는 비워두고 굳이 내 침대 속으로 파고드는 솜뭉치처럼 부드러운 아이.
영원히 내 곁을 맴돌 것 같은 아이도 정말 언젠가 나를 떠나겠지. 걱정하는 엄마의 눈빛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어릴 적 제가 그랬듯 꼭 잡은 내 손을 애써 뿌리치고는 세상으로 나가겠지. 그럴 날이 분명히 오겠지.
스무 살쯤이었나, 바다로 여행을 가는 나에게 엄마는 비키니를 사주었다.
내가 알아서 사겠다는 걸 마다하고 굳이 같이 가서 내게 비키니를 입혀보고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엄마는 알았던 것 같다. 그때 내가 가려는 곳이 그냥 바다가 아니었음을.
스무 살, 어른이랍시고 당당하게 바다로 떠난다는 딸이 엄마 눈에는 마치 전쟁에 나가는 군인 같기라도 했을까.
이제 마음껏 가고 싶은 곳으로 가렴. 이제 엄마는 널 잡지 않을 거야.
지금은 고작 강원도 어느 바닷가이지만,
앞으로 어디를 가도 된다는 암묵의 허락처럼 엄마는 내게 비키니를 사주었던 것 같다.
귀를 열개쯤 뚫고, 머리를 온갖 색으로 물들이고 혹은 싹 다 밀어버린 아이가 몸보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작별 인사를 한다.
씩씩하게 집을 나서는 아이. 그 아이를 황급히 잡아 세운다.
아이의 가방 안에 콘돔을 밀어 넣는다.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며 아이는 진짜 집을 나선다.
내가 생각하는 수년 후의 시나리오 중 하나다. 과연 나는 이렇게 쿨한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그때 비키니를 입혀놓고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나라면 어떨까?
비키니는커녕 누구랑 가는지, 어떻게 가는지, 뭘 먹고, 어디서 자는지를 꼬치꼬치 물어보고 가지 말라고 했다가 안 가면 안 되냐고 사정하고 싶을 것 같다. 이 작고 여린 아이가 엄마의 눈이 없는 곳에서 행여나 다치지는 않을까, 상처받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게 될 것만 같다. 그래도 굳이 가는 아이 앞에서 설마 눈물바람이라도 하는 건 아닌지 벌써부터 얼굴이 화끈거린다.
다수의 '거지'와 함께 야간 버스에 올랐다. 출발하기도 전에 자리가 벌써 불편한데 아이는 작은 몸을 애써 부대며 금세 잠이 든다. 버스의 에어컨 바람이 찰까 스카프를 덮어주고 나도 자리를 잡아 본다.
앞뒤로 앉은 '거지'들의 부산스러움도 끝났지만 알 수 없는 흥분이 버스를 가득 메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옆자리에 앉은 새로운 사람에 대한 호기심, 떠나는 기쁨, 도착의 기대.
그것은 모두 같은 목적지를 가진 여행자들의 흥분이었다.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새근새근 잠든 아이는 여행의 이 기분이 뭔지 모를 것이다. 그저 따라다니느라 고단한 하루가 오늘은 버스에서 끝났을 뿐이겠지. 언젠가 길 위에서 이 흥분을 느끼게 될 아이가 미친 듯이 부러웠다.
'거지'같이 떠돌며 세상을 알게 될 너의 앞으로가 부럽다.
아이야, 그건 잊지 마.
버스에서든, 텐트에서든 그게 어떤 침대이든지 가리지 않고 잘 자는 너를 만든 건 나야.
길 위에서 너를 수없이 안고 업고 재우며 널 키웠거든.
여행자가 되어 남보다 조금 수월한 면을 발견하거든 나 때문이라는 걸 꼭 기억해야 해.
아! 거지 같을 너의 여행이 벌써부터 미친 듯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