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지 않는 여름, 그날의 밤

러시아_모스크바

by 서작가

모스크바에 첫날, 밤 9시가 되도록 해가 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한국 시간으로는 이미 새벽 시간.

졸리고 피곤한데 밖이 훤하니 도통 잠을 자기가 어색하기까지 했다.

밤 11시가 넘으니 그제야 해가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2시가 넘어가니 조금 밤 같았다.

그렇게 겨우 잠이 들었지만 얼마나 잤을까, 따가운 햇살에 눈을 뜨니 새벽 4시. 이미 해는 중천에 떠 있다.


말로만 듣던 '백야'를 그렇게 만났다.


이토록 환하고 긴 여름밤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해가 막 지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슬슬 나가려고 준비를 시작했지만 시차에 적응한 아이들은 졸음에 눈을 무겁게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냥 아이들 재우고 보드카나 한 잔 할까.

어차피 붉은 광장은 낮에 다 보기도 했던 곳이니까.


하지만 우리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조금은 무리해서 마지막 밤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었다.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 왔다는 이유로 여행의 밤 외출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졸려도 참아라 얘들아, 이게 우리의 마지막 밤이란다.





러시아에서 밤 외출이라니.

조금은 긴장되고, 조금은 설레기도 했던 그 밤.

해는 졌지만 어슴푸레한 하늘은 밤이라고 하기에는 완전하게 어둡지 않았다.

3시간 후면 또 해가 떠서일까. 모스크바의 여름밤은 까맣다기보다 차라리 푸른 느낌이었다.

광장에 도착하고 보니 12시가 넘었다. 하지만 붉은 광장엔 아직도 활기가 넘쳤다.


역시나 낮에 보았던 붉은 광장은 밤에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었다. 푸른 밤하늘과 조명에 바실리 성당은 나갔던 영혼이라도 들어온 듯 살아나 보였다.


진짜 모스크바란 이런 거지.

아이들은 이제 반은 잠에 취해 광장을 내달리고 있었다. 엄마들은 사진 찍고 감탄하기에 바빴지만 아이들은 광장의 저 끝에서 이 끝까지 달리며 이건 꿈일까, 현실일까 궁금하지도 않은 듯 우리의 정신을 사납게 했다. 하지만 우리도 그저 눈으로 아이들의 위치를 확인할 뿐 이 밤을 만끽했다. 오늘 밤, 이 광장에 나쁜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오기를 잘했다.

밤의 붉은 광장.




아이들은 정신없이 광장을 뛰고-

엄마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진을 찍어대며 웃고-

그래도 내일이면 돌아간다니 아쉬워했을 그 밤.

열아홉 그때처럼 깔깔대며 웃었던 그 밤.


어느 날 문득, 겁도 없이 덜컥 모스크바행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붉은 광장을 서성이는 우리를 상상이라 했을까. 혹은 언젠가 상상했던들 진짜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상상 불가의 곳, 러시아란 나에게 그런 곳이었다. 그래서 그 밤이 그토록 좋았다.


잘 해내고 있는 우리가 기특해서, 좋아서, 그리고 아쉬워서.


그날 밤, 모스크바에 했던 나의 작별 인사를 들었을까. 다음을 기약할 수 없었기에 더 잡고 싶었던 아쉬운 마음은 들켰겠지. 광장에 눈물 한 방울 또르르 떨어뜨린 사연은 비밀로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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