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_카파도키아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터키에 가면 한국 여자는 무조건 인기 최고의 여신 대접을 받는다고 했다. 길에서는 발걸음 떼는 것만큼 휘파람이 들려오고 실없는 말장난에 걷는 것이 힘들 지경이라고 했다. 형제의 나라를 넘어서 예쁘다, 아름답다, 데이트 하자 등등 터키 남자들의 공세에 한국 여자들은 여행 하기가 조금 곤란할 지경이라고 했다. 터키, 도대체 그곳은 어떤 곳이란 말인가.
터키 완전 일주 10일
때마침 터키 이스탄불 직항이 생기면서 터키 여행상품이 우후죽순 생기는 참이었다. 대부분 터키 완전 일주를 표방하는 상품들이었는데 짧으면 7일, 길어야 10일이었다. 터키가 얼마나 큰 나라인지, 이스탄불 말고도 갈만한 데가 있는지조차 몰랐기에 일주일 정도면 '완전 일주'가 가능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여유 없는 여행은 딱 질색이니까 7일보다는 10일이 낫겠어.
같이 가기로 한 친구는 이른 여름휴가를 신청하고도 주말을 붙이고 월차까지 끌어당겨 겨우 10일 휴가를 만들었지만 상사의 따가운 눈초리에 괴로워했다. 아직 사회 초년생이었던 친구에겐 회사 생활 최고의 위기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지만 나도 이 여행이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결혼하고 1년이 채 안된 새댁이었던 나는 곧 홑몸이 아닌 상태가 될 계획이었다. 때문에 이 여행은 앞으로 수년간 가지 못할 여행이 될 것이 분명했다.
"너 이번이 아니면 앞으로 나랑 여행 갈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앞으로 뒤로 아기 들쳐 업고 기저귀 가방 들고 유모차 밀면서 여행할 수 있을 것 같아? 이게 마지막이라니까!"
선배들의 눈치는 휴가지 선물로 해결될 일지만 우리들의 우정과 추억은 그렇게 무마될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우리가 가려는 곳은 터키가 아니던가.
터키가 7일이나 10일 안에 '일주'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건 가서야 알았다. 패키지 일정표에는 거의 매일 다른 도시로 이동해서 대략 9개 도시를 여행하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그렇게만 따지면 대표적인 터키의 도시들을 두루 거치는 것이니 '일주'가 맞겠지만 이동 시간이 문제였다. 도시 간 이동 시간이 버스로 짧게는 3시간, 길게는 5시간 이상 걸렸다.
아침 먹고 관광 - 점심 먹고 이동 - 새 도시에 도착해서 저녁 먹고 취침
고작 아침나절 몇 시간을 돌아보고 다음 도시로 가기 위해 버스 여행을 해야 했다. 우리는 이건 터키 일주가 아니라 '터키 버스 여행' 또는 '터키 휴게소 여행'이 맞는 이름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소떡소떡'도 없는 터키 휴게소에서는 맛도 없는 네스카페 캔커피가 3달러나 했고 우리는 고속도로변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한국 여자 여신대우설'은 어떤 면에서는 사실이었다. 발걸음을 떼지 못할 만큼은 아니었지만 여자들에게 과잉 친절을 베푸는 터키 남자들을 어디서나 마주쳤고 예쁘다, 아름답다는 말도 곧잘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물건이나 더 팔아먹으려는 '업자'의 수작이 대부분이라 며칠 지나니 아무리 예쁘다고 추켜 세워도 똑같은 레퍼토리에 질릴 뿐이었다.
(네네, 알지요, 아주 잘 알아요.)
(이거 줘도 남잖아요. 아름다워서 주긴 뭘...)
오, 이건 새로운 레퍼토리인데?
기념품 가게 남자는 윙크까지 하며 우리를 배웅했다. 그런데 파티에 초대받은 건 내가 아니었다. 친구였다.
그랬다. 듣기엔 마치 사모님~ 하는 것처럼 나에게 ma'am을 꼬박꼬박 붙이더니만 파티 따위는 귀띔도 안 해주었다. 초대한다고 갈 것도 아니고, 그 파티가 어떤 건지 알 수도 없지만 그래도 그렇지 같이 있는데 한명만 초대하는 건 무슨 경우란 말인가.
같은 한국 여자라도 유부녀는 제외하고 여신 대우하는 거라고? 아 정말 치사해!
혹시 알아?
저 동굴 수도원 중 어딘가에 현지인만 아는 은밀하고도 끝내주는
카파도키아식 클럽이 있을 줄.
호기심 많은 유부녀가 우겨봤지만 겁 많은 아가씨는 끝내 믿으려 하지 않았다. 게다가 혹시나 거리에서 그 남자를 마주쳐 끝내 그 멋진 클럽에 초대될까 봐 호텔 문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터키 남자의 끈적이는 웃음과 영혼을 조금도 건드리지 못하는 칭찬이 난무했던, 그 와중에 유부녀를 소외시키던 터키 일주 여행은 끝이 나고 버스는 열흘만에 우리를 다시 이스탄불 공항에 내려놓았다. 먼저 휴가를 가버린 자신을 벼르고 있는 회사 선배들을 위해 친구는 다디단 터키쉬 딜라이트를 샀고 나는 결혼 후 처음 맞은 여름휴가를 홀로 보낸 남편을 위해 술 한 병을 샀다.
이게 마지막이야!
농담처럼 했던 말은 실제가 되어 그 여행은 우리 둘이 간 마지막 여행이 되었다. 나는 곧 아기를 가졌고 기나긴 육아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친구는 휴가도 눈치 보던 신입 사원에서 바빠서 휴가도 못가는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이 되었다. 시간이 어느새...라는 건 너무 진부하니까 생략.
카파도키아 시골 마을의 끝내주는 클럽이 있었는지 여전히 궁금하다. 어쩌면 지금은 정말로 클럽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다음에는 용기 한번 내보려고.
초대하는 남자 없어도 내가 찾아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