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작가 Oct 15. 2020

나의 작고 어린 여행 친구

우리 다음에는 어디 가지?

“이번에 오사카도 재미있었어?”

“응. 괜찮았어.”


친구네 놀러 가는 엄마 따라와 놓고 괜찮았다고 선심 쓰듯 말하는 윤. 

처음 데리고 다닐 때를 생각하면 비교할 수 없이 컸지만, 여전히 엄마 따라간다고 떼쓰는 건 변하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까지 나를 따라다닐 생각일까?


“엄마, 다음에는 어디 갈 거야?”


아직 오사카에서 집에 가는 비행기를 타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벌써 다음을 말한다. 

아이에게 여행은 이토록 쉽고 별다를 거 없는 일이 되었나. 이건 좋을 걸까, 아닌 걸까. 


“어디 가고 싶은 데라도 있어?”

“나 횡단 열차 타보고 싶어.”

“횡단 열차? 시베리아 횡단 열차?”

“응. 기차 타고 며칠씩 여행 가는 거.”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흥미를 보이는 아이를 보니 이제 제법 여행이란 게 뭔지 아는 것 같다. 모름지기 여행을 꿈꾼다면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타 봐야지.


“중간에 안 내리면 일주일 동안 계속 기차 타는 거야. 알고 있어?”

“알아. 중간에 내려서 여행도 하고, 기차도 타고 그러는 거지.”

“기차 안에서 씻지도 못하고 모르는 사람들이랑 기차 타고 며칠씩 가는데 괜찮아?”

“친구도 사귀고 재밌을 것 같지 않아?”


어머 얘 좀 봐. 호스텔 공동 화장실에 혼자 못 가겠다고 울던 꼬마가, 낯선 외국인이 말이라도 걸면 겁을 먹던 겁쟁이가 이런 말을 하다니. 내가 아는 그 아이 맞아? 


시간이 너를 이렇게 자라게 해 주었나, 아니면 여행이 너의 마음을 키워주었나. 


“그래, 재미있을 거야. 나중에 꼭 가봐.”

“엄마는 안 가?”


해맑은 얼굴로 묻는 아이. 그 여행마저 나와 함께 가자고 한다. 

아, 그런데 이 엄마는 횡단 열차 여행은 좀 자신이 없는데 어쩌지? 

기차를 그렇게 오래 타는 것도 자신 없고, 불편한 잠자리는 더더욱 힘들단다. 엄마도 나이가 들었나 봐.


“가, 가야지. 그런데 그런 여행은 친구랑 가는 게 더 재미있을걸?”

“그런가? 그래도 엄마랑 가고 싶은데.”

“그래, 가면 되지. 그까짓 횡단 열차 한번 타보지 뭐.”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몇 년 후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횡단 열차를 타겠다고 할 때 그때도 과연 엄마와 같이 가겠다고 할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아마 엄마 좀 데리고 가달라고 오히려 아이에게 내가 사정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널 얼마나 데리고 다녔는데 이럴 수 있냐고 치사하게 굴 수도 있다. 


커다란 배낭을 멘 아이가 집을 나설 때
쿨하게 손을 흔들어 주는 엄마가 되는 게 나의 목표인데
그렇게 될지 자신이 없다.


“나중에 딴소리하지 마. 엄마랑 간다고 한 거 꼭 지켜.”

“당연하지.”


지금은 당연해도 나중에는 당연하지 않은 일이 부지기수인 걸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엄마를 1순위 여행 친구로 생각해주니 다행이고 고맙기도 하다. 

이런 시간들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기 때문이다. 


비행기 탑승 사인이 들어왔다.

벌써 다음 여행 얘기로 이번 여행이 끝나는 아쉬움을 지운 듯 아이의 발걸음이 가볍다. 


나의 작고 어린 여행 친구, 윤. 

우리 다음에도 꼭 같이 가자.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도 할머니랑 똑같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