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꽃이고 봄은 봄이라서
“엄마, 우리 오늘 어디 갈 거야?”
“어디 가지?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오사카에 처음 오는 것도 아니고 친구네 집에 온다는 생각으로 미리 준비한 게 없었다.
꼭 가고 싶은 곳도, 꼭 봐야 할 것도 없었다. 그냥 동네를 슬슬 돌아다니다가 맛있는 거나 먹고 친구랑
밀린 수다나 떨 심산으로 온 여행이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 먹으려고 했는데 못 먹은 거 있는데 거기 갈까?”
윤이 맛있는 데가 있다고 내게 가자고 했다.
원래 먹을 거에는 큰 관심이 없는 아이가 음식을 추천하다니.
대단한 맛집이 아니고서야 아이가 관심을 보일 리 없었다.
“그래, 점심은 거기서 먹자.”
윤이 말하는 곳은 난바에 있는 규카츠 식당이었다.
규카츠가 소고기로 만든 커틀릿이라고 하는데 얼마나 맛이 있길래 윤에게까지 소문이 난 것일까.
물론 유튜브에서 본 게 확실하지만 이번만은 유튜브 지식인을 믿어보기로 했다.
난바까지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지하철로 몇 정거장 되는 거리이기는 했지만 갈아타는 번거로움까지 더하면 걸어서 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시내에 살면 이런 게 좋다. 어디든 걸어갈 수 있다는 것.
변두리에 사는 나로서는 외국에 사는 친구네 가야 느껴보는 편리함이다.
동네를 나와 골목길을 걸으니 담장 위로 벚꽃들이 무성했다.
한국보다 따뜻해서 이미 벚꽃이 많이 지고 있다고 하더니 그래도 아직 꽃은 한창이었다.
한국에서 하얀 홑 벚꽃만 보다가 여기 오니 진하고 연한 분홍빛 겹벚꽃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게
특이하고 예뻤다.
“어머, 윤 저거 봐! 꽃 너무 예쁘다!”
“응. 그렇네.”
내가 꽃을 보며 예쁘다고 수선을 떠는 거에 비해 윤은 덤덤하다.
그래도 혼자 보기 아까워 꽃을 지나칠 때마다 보라고 아이를 불러 세웠다.
“왜 어른들은 자꾸 꽃을 보라고 하는 걸까?
엄마도 할머니랑 똑같네.”
아이의 말에 깜짝 놀랐다. 어른들이 왜 그렇게 꽃을 좋아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던 때가 나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쁜 건 알겠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적이 나도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내가 어느새 그런 어른이 된 것이다.
아직은 세상 모든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나이.
그때는 작은 꽃 한 송이, 매년 돋아나는 새순도 그냥 당연하게 이뤄지는 거라 귀한 줄 몰랐고
그런 게 예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나도 모르게 아름다운 것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처럼 무사하게 제 자리를 지켜가는 것들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러니 올해도 피어난 이 꽃이 눈에 들어올 수밖에.
“예쁜 거 같이 보고 싶어서 그렇지.”
“나도 다 보고 있어.”
그래, 아직은 꽃이 예쁘다고 하는 엄마가 이해가 안 되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그래도 할머니랑 똑같다는 건 좀 너무 하지 않니?”
“할머니도 꽃만 보면 예쁘다고 자꾸 보래.”
그래도 아직은 프로필 사진에 꽃을 걸어놓을 정도는 아니라고 애써 위안해 보지만
꽃 사진은 이미 갤러리에 수두룩하다.
언젠가 나도 모르게 그 사진 중 하나를 걸어놓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위험하다, 위험해.
윤이 말했던 규카츠 식당에 가니 손님의 99%가 한국인이었다. 모두 윤처럼 유튜브 지식인들이 틀림없다.
돈가스처럼 겉에 튀김가루를 묻혀 살짝 튀겨낸 소고기를 개인 화로에 구워 먹는 규카츠에 윤은 맛보다는
재미에 홀린 모양이다. 그래도 꽤 잘 먹었으니 이 정도면 성공한 식사였다.
“만족?”
“응. 만족!”
모처럼 엄마의 잔소리 없이 식사를 끝낸 윤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난바의 상점들을 슬슬 구경하며 우리는 하릴없이 이 골목 저 골목을 들어가 걸었다.
따뜻한 봄날의 햇빛 샤워에 여행 오기 전 나를 힘들게 하던 것도 햇살에 바싹 말라 날아가는 기분이다.
담벼락 아래 떨어진 꽃들이 만들어 놓은 꽃길을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이번에는 아이에게 보라고 하지 않고 혼자 보기로 했다.
너는 아직 이 꽃길의 아름다움을 모를 테니 나만 만끽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