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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작가 Sep 25. 2020

교토에서 하루

그게 뭐가 '뷰티풀' 하다고 그래

새벽부터 서둘러 교토역에 도착, 란덴 열차를 타고 아라시야마에 도착했더니 사람이 많지 않았다. 

워낙 관광객이 많아서 자칫하다가는 사람 구경만 실컷 하고 온다고 해서 일찍 움직였는데 한적한 아라시야마의 아침 풍경을 보니 서두른 보람이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파랗고, 벚꽃이 몽글몽글 피어나 꽃그늘을 만들어내고 있는 모습이 벌써 기분이 좋았다.


“미세먼지도 없고 한적하고 너무 좋다.”

“역시 여행할 때는 날씨가 좋아야 해. 오늘 진짜 딱 좋다.”


아라시야마의 중심가는 옛날 일본 마을처럼 길과 건물들을 꾸며놓았다. 

아기자기한 상점에서는 교토 특산물로 만든 간식거리를 팔거나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때때로 기모노를 차려입은 관광객들이 다니는 걸 보니 전주 한옥마을 일본 버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낯선 풍경인데 이상하게 익숙한 느낌이랄까. 


오후가 되니 확실히 사람들이 많아졌다. 

한적하던 아침나절의 풍경은 사라졌고 어딜 가든지 사람들로 복잡했다. 

수학여행 온 학생들부터 우리 같은 여행자들이 섞여서 여기가 교토의 관광 1번지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Oh, my god!”

“Beautiful!”


대나무 숲인 치쿠린으로 가는 길.

 특히 서양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우리와 가는 길이 비슷했던 그들은 가는 내내 놀라고 감탄하기 바빴다.


“도대체 뭘 보고 저렇게 놀라는 거야?”

“그러게 말이야. 뷰티풀이랄 게 없는데 왜 자꾸 뷰티풀이라는 거지?”


워낙 작은 거에도 크게 반응하는 게 서양 사람들 특징이라고 하지만 그렇게까지 감탄할 게 없는데 이상했다. 

뭘 보고 저러나 유심히 봤더니 모양을 내 가꾼 작은 나무, 신사 앞에 세워진 인력거, 

하다못해 쓰레기통을 보면서도 오마이갓을 외치며 사진을 찍었다. 


“아시아에 처음 왔나 봐. 이런 게 신기하다니. 그게 더 신기하네.”

“한국에 더 좋은 거 많은데.”

“맞아. 쟤네들 한국 가면 기절하는 거 아니니?”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 우리는 여기에서도 애국심이 발동되는 건가. 

불과 몇 시간 전에 교토가 좋다고 생각했으면서 다른 외국인이 좋아하는 건 또 못 봐주고 있다. 


대나무 숲에 들어서니 소문대로 해도 들어오지 않을 만큼 빽빽하게 대나무가 뻗어있었다. 

그런데 사람이 대나무보다 더 많았다. 사진에서 보던 치쿠린은 사람 하나 없는 고즈넉한 길이던데 

현실은 대나무보다 사람들 뒤통수 구경만 하게 생겼다. 

다른 사람이 걸리지 않는 사진은 찍을 수도 없었고 뒤따라오는 사람들 때문에 지체할 수가 없었다. 


“이게 뭐야! 사진 하고 완전 다른데?”

“진짜 실망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데 많지 않냐?”

“엄마, 이게 끝이야?”


우리는 치쿠린에 실망했다.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것도 있고 우리에게 대나무 숲이 그렇게 특별하지도 않았다. 

유명세에 비해 평범하다고 느꼈다.


“저 사람들 봐봐. 너무 좋아하는데?”


오마이갓을 입에 달고 가던 그 외국인들이었다. 

생전 처음 대나무 숲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생각해 보니 처음일 수도 있겠다) 대나무로 덮인 하늘을 봤다가 

길을 봤다가 난리가 났다. 그 와중에 물론 오마이갓과 뷰티풀에 어썸 같은 단어들을 남발하고 있었다. 

너희들은 고작 이런 대나무 숲에도 감동하니 좋겠다. 

그런데 한국에 더 좋은 거 많거든? 한번 가보지 않을래?


괜히 어깃장을 놓긴 했지만, 나도 교토가 좋았다. 

치쿠린이 아무리 실망스러웠다 해도 완벽한 봄 날씨와 벚꽃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미세먼지 하나 없는 화창한 날의 그 신선한 기분이 교토에서 마셨던 말차 맥주 맛처럼 쌉싸름하고도 

시원하게 떠오른다.    


“엄마 이거 사주라.”


토끼 캐릭터 미피 숍을 지나치지 못하는 윤. 아이에겐 교토가 분홍 미피로 기억되려나. 

그런데 솔직히 우리도 미피 숍에서 오마이갓, 뷰티풀, 어썸 이런 비슷한 말 안 했다고 장담 못 한다. 

어쨌든 뷰티풀 했던 교토에서의 하루였던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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