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작가 Sep 21. 2020

친구네 집에 놀러 간다는 것

우리가 상상했던 미래 중에 이런 것도 있었을까?

연착하지 않고 제시간에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탔더니 정말 금방 오사카에 도착했다. 

지난번 계속되는 비행기 딜레이로 오사카까지 거의 하루가 걸려 심리적으로 너무나 멀게 느끼고 있었는데 

오사카는 이처럼 가까운 곳이었다.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김 차장이 말해준 역에 내렸다. 

출구를 찾아서 두리번거리는데 저쪽 개찰구 앞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김 차장이었다. 


“여기야, 여기!”


손을 흔드는 김 차장. 

거의 1년 만에 만났는데 어제 만나고 오늘 우연히 길에서 만난 것처럼 우리에게 아는 척을 한다.

슬리퍼를 신고 나온 모습이 영락없는 이 동네 주민이다.


“드디어 왔구나!” 

“되게 오랜만인데 익숙한 건 왜지?”

“그건 기분 탓.”


25년 친구 사이에 애틋함은 쑥스러우니 서로 괜한 말로 반가움을 대신해 본다. 

열일곱 살에 만난 우리는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거쳐 치기 어린 20대와 치열한 30대를 보내고 40대를 보내는 중이다. 말만 꺼내도 25년의 어느 순간을 동시에 기억할 수 있을 만큼 우리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 하고 있다. 처음 만난 열일곱 살에 상상했던 우리의 미래 중에 이런 것도 있었을까? 

네가 외국에 살면 꼭 놀러 갈 거야, 그런 생각 했을까? 

하긴 그때는 우리가 40대가 되는 날이 진짜 올 거라고 믿지 못했을 것이다.


“저녁 먹고 들어가자. 단골 우동 가게가 있어.”


혼자 오사카에서 친구를 만난 상념에 젖어있는데 김 차장이 우리를 단골 가게로 데리고 갔다. 

한적한 동네 모퉁이에 있는 작고 깔끔한 우동 가게였다. 


“여기는 새우튀김 우동이 맛있어. 그거 먹자.”


자신 있게 메뉴를 골라주고 능숙하게 주문을 하는 김 차장. 친구네 집에 놀러 간다는 건 이런 것 때문이 아닐까. 


아무리 낯선 곳이라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 
나를 자신의 영역에 어떤 거리낌도 없이 넣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것.


오사카에서 첫 식사이니만큼 오랜만에 만난 것을 자축하는 의미로 맥주도 시켰다. 


“여기서 밥 먹을 때마다 맥주 마시고 싶을 때도 많았는데 혼자라서 못 마셨거든. 

너 오니까 좋다. 맥주도 같이 마시고.”


맥주잔을 부딪치며 김 차장이 하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짠해졌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외국에서 혼자 저녁을 먹었을 친구. 

맥주 한 잔도 망설였을 그녀를 떠올리니 혼자 외국에 나가 사는 걸 마냥 부러워하기만 했던 게 미안했다. 


“그래서 내가 왔잖아. 나 있는 동안 무조건 외식하자. 맛있는 거 먹고 맥주 마시자!”

“그래, 그러자!”


오랜 친구 사이에 때로는 길게 말하는 게 낯간지러워 생략하는 말이 많아지기도 한다. 

그래도 모든 걸 속속들이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소한 걸 자주 놓치기도 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반가워 부딪치는 맥주잔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의 지난 시간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제 만나고 오늘 다시 만난 것처럼 별로 다를 것도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우리는 깔깔댔다. 

마지막 손님으로 우동 가게를 나와 천천히 김 차장의 집으로 걸어갔다. 

어둑해진 골목은 조용했고 날씨는 따뜻한, 봄이 완연한 오사카의 첫날밤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는 방콕에 안 갈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