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공간을 원해
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가끔은 기도를 하듯이 종교가 없는 사람도 가끔은 사원이 필요하다. 취향이 맞는 상점이나, 혼자 머물러있기 좋은 카페나, 괜히 한번씩 들르게 되는 코인노래방 같은 곳들은 그 사람의 사원일지 모른다. 우리는 숨어있기 좋은 곳에서 나를 발견하고 내 안에 깃든 신을 만난다.
요즘 공간이란 것은 가장 고급스러운 취향으로 취급된다. 땅값 비싼 이 나라에선 더 그렇다. 내가 어떤 영화를 좋아하고 어떤 작가를 좋아하고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것은 이제 큰 값을 쳐주지 않는다. 그 취향은 검색 한 번이면 복제될 수 있다. 그러나 공간은 쉽게 복제될 수 없다. 일정 면적의 부동산을 내 것으로 만들 재력이 필요하고, 그 내부를 상징적인 부자재들과 독창적인 레이아웃으로 구성해 나만의 맥락을 구현할 상상력이 필요하다. 또한 그것을 추진할 자기확신이 필요하다(그건 자본주의에서 가장 비싸게 먹히는 것들이다).
공간은 외부의 타인들을 나의 내부로 들이고, 들어선 사람들은 스스로 느낀다. 나의 취향을 타인에게 강권하거나 떠벌거릴 필요 없다. 사람들은 공간을 채운 노래에 귀기울이며 공간을 구성하는 디테일에서 어떤 맥락, 분위기를 읽어내기 위해 눈을 굴릴 것이다. 그 공간의 몇몇 단면들은 사람들의 인스타그램에 미술품처럼 전시될 것이다. 그럼에도 공간은 타인에게 모든 것을 내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곳에 머물러있는 시간 만큼, 카메라에 담은 사진 만큼만 그 공간을 취할 수 있다. 책을 사고 옷을 사듯이 그 공간 자체를 내 방으로 가져올 순 없다. 그건 택배로 발송되지 않고 모바일앱으로 배달되지도 않는다. 다만 공간은 원래 있던 거기에 있을 뿐이다. 그러니 누군들 자기를 닮은 공간 하나 있어주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세상에 공식적으로 자신의 자의식을 편입시키는 몇 없는 방법이기 때문에. 거리마다 곳곳에 자의식 카페, 자의식 주점, 자의식 편집샵, 자의식 서점들이 늘어가는 이유일 것이다. 각자의 증명들이자 분투들이다. 나는 어쨌거나 응원하는 편이다.
나는 올해 말에 독립해서 내 집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사실 전세겠지만). 더 이상 혼자 살기를 미루면 인생의 중요한 경험 중 몇 가지를 놓치게 될 것 같다. 일인용 사원이 될지 자의식 주거공간이 될지 모르겠으나, 그냥 마음 편한 곳이었으면 좋겠다. 사실 세상엔 그런 곳이 별로 없다. 피로가 불안을 덮거나 불안이 피로를 덮는 시간이 엎치락 뒤치락 이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