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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인가 저주인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은

by 윤지영


"힘드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열망이 크지 않고,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게 아무렇지 않은 기질이라면 어떨까. 왜 나는 하고 싶은 게 이리도 분명한 사람일까. 왜 그걸 이루려고 달릴 때에만 살아있음을 절실하게 느끼는 사람인 걸까. 그리고 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이루려고 하는 삶은 이리도 험악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길일까. 왜 나는 고달픈 길을 사랑하는가. 왜 이런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걸까.

예전에는 그림을 그리는 내가 자랑스러웠어. 꿈이 있다는 것, 남들보다 조금 나은 재능이 있으니까 노력하면 전문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거라는 믿음. 근데 절망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 그림을 그릴 때에만 살아 숨 쉬는 내가 경멸스러워졌어. 그냥 남들처럼 공부해서 회사 들어가면 이렇게 밑바닥을 보진 않을 텐데."


"매슬로우의 5대 욕구라고 있어. 이 5대 욕구는 생리적 욕구-안전의 욕구-애정의 욕구-존경의 욕구-자아실현의 욕구 순서대로 피라미드를 쌓고 있어. 하위의 욕구가 만족되어야만 상위로 올라갈 수 있는 구조야. 가장 윗 피라미드인 자아실현의 욕구가 충족될 때 비로소 인간의 잠재력이 최상으로 발휘되는 거지.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다 3단계쯤에서 머물러 있는 거 같아. 사랑만 받으면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여기니까 자아실현의 욕구까지는 도달하지 못해. 사회도 개인의 성장을 억압하는 분위기야. 자아실현은 꿈꾸지 말고, 네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것까지만 획득하라고. 인정받는 직장, 만족스러운 여가생활, 거기까지만. 적당히 살라고 말하는 거지."


"응. 차라리 그런 분위기에 순응해서 살았으면 좋겠어. 눈이 가리어져서 그런 것만으로 만족하는 단계의 삶이었으면 좋겠다고. 평범하게 사는 것도 뭐가 이리 어려운 거야."


"내가 너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결론부터 하자면, 세상의 메시지에 함몰되지 말란 거야. 네가 빛나는 이유는 꿈이 있기 때문이야. 남들과 똑같은 노선을 선택하지 않았고, 비 포장된 길을 캔버스와 붓 하나 들고 걸어가는 거잖아. 비록 서투르고 내일의 한 발자국을 떼는 것을 걱정한다 할지라도 너는 안정된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보다 멋있어. 반 고흐가 굶으면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인상파 사조는 미술사에 더디 기록됐겠지. 누구나 모험하며 살 순 없지만 태어나기를 개혁을 품고 태어난 사람은 그 숙명을 받아들여야 해. 청춘의 선구자 같은 삶을 제발 포기하지 말자. 그리고 네가 어제 그린 그 그림 진짜 멋있단 말이야."








당장 내일 먹고 살 걱정을 하다 보면 내가 어떨 때 살아있음을 느끼는지에 대한 고찰은 사치가 되어버리는 순간이 온다. 꿈과 현실을 타협하지 않는 자신이 철부지 같아 보인다. 그러나 주변 흐름에 맞추어 적당히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결코 나를 정의할 수 없다. 우리는 자아실현에 대한 숭고한 고민을 잃어서는 안된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이 땅에 존재하는지 아는 순간,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되는 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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