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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원래 그래

by 윤지영


“도대체 왜 이렇게 힘든 거예요?”


그 애가 말했다. 나보다 두 살이 어렸다. 무작정 나를 찾아와 사는 게 왜 이리 힘드냐고 물었다. 자신은 남에게 해 끼칠 일은 하지도 않으며 양심껏 살아가려고 하는데, 왜 삶은 그만큼의 보상이 없느냐고 내뱉었다. 정규 대학 코스까지 꼼꼼히 밟고 공모전 수상경력도 여럿 있는데 정작 현실은 성실의 대가 치고는 너무 가혹하다고 했다. 왜 우리 부모님은 건강이 나빠지고, 왜 동생은 마음의 병이 들고, 자신의 취업은 왜 안 되는 거냐고. 졸업해도 갚아야 할 학자금이 이천만 원을 넘어섰단다. 감정이 복받치는지 눈물이 그 애의 볼을 타고 흘렀다. 휴지로 꾹꾹 눈가를 닦은 다음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 애한테 일어난 일들이 내가 저지른 건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먼저 살아온 사람의 위로라던지, 지금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질타라던지, 등등 뭐라도 듣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 내가 거기서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도리어 십분 이해했다. 그 울분을. 나 또한 굽이친 파도에 함께 휩쓸려있기 때문에.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다. 나는 조만간 회사에서 정리 해고를 당할 판이다. 내게 순간순간 올라왔던 원망의 밤이 지금은 그 애에게 걸려있었다.


그러나 삶의 문제는 옳고 그름으로 따져서는 될 일이 아니다. 내가 경험한 세상은 공평하지 않았다. 선과 악이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가까스로 선이 승리하고 악은 죄를 받는 권선징악의 이상적 스토리가, 현실에서는 붕괴되기 일쑤였다. 대신 우리는 청춘의 배반을, 갈수록 좁아지는 길만을 볼뿐이었다.


내가 말했다.


“지금 많이 힘들지? 네가 그동안 노력한 거 나도 아는데, 그래서 뭐라 더 해줄 말이 없다. 하지만 난 네게 거짓 희망은 주고 싶지가 않아. 그건 내가 너를 아끼는 방식이 아니야. 수민아. 누구누구의 성공스토리,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일주를 떠난 작가, 그런 건 지극히 소수고 나머지는 회사를 그만둬도 한 달 남짓 쉬다가 다시 이직 자리를 알아보더라고. 용기를 내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하겠지만,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경우도 있고 현실을 완전히 내팽개치는 용기가 모두에게 있는 건 아니니까. 다들 다시 쳇바퀴 같은 삶으로 돌아가서 뛰더라고. 뭐 그런 거 다 떠나서 수민아. 삶이 원래 힘든 거라서, 그걸 인정하고 가는 게 세월을 아끼는 거야.”


그러다 보면 지금의 이 시간들이 꼭 도움이 될 거라고, 굴곡이 없으면 어떤 것도 아름답지 않아서, 너의 인생은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서 기지개를 켜고 있는 거라고, 기지개를 켜면 굳어졌던 뼈가 다시 자리를 잡고, 잠자던 근육들이 운동을 하면서 삶의 동력을 만드는 것처럼, 너도 그 과정 중에 있는 거라고,


그런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감상적인 비유가 무슨 도움이 된다고. 오히려 나의 조언은 저 멀리서 달려와 숨이 차 헉헉거리는 그 애를 다시 레일 위로 끌고 가는 격일 수 있다. 다만, 삶이 원래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말이 사막 같은 호흡에 시원한 생수가 되어주기를 바랄 뿐.


그 애의 앙 다문 입에서 더 이상 아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 애가 눈물을 닦다가 볼 가에 붙어버린 휴지조각을 떼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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