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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녀의 기쁨

by 윤지영



투닥투닥. 늦저녁, 대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엄마가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건넨다.


“딸. 왔어?”


“응.”


“딸. 아까 민정이한테 전화해서, 언니가 신발 사줄 거라고 했더니 ‘언니가 엄마 신발을 왜 사줘? 엄마가 사달라고 한 거지?’ 이러잖아. 그래서 내가 아니라고 했더니 끝까지 안 믿는 거 있지.”


낮에 온라인 쇼핑을 하고 있었다. 고운 소라색 스웨이드 샌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나도 슬슬 운동화에서 이런 신발로 갈아탈 때가 왔지, 하며 그 신발을 반쯤 멍 때리고 보고 있었다. 점심밥이 준 포만감 때문에 약간 졸렸다. 그런데 문득, 그냥 문득, 이 신발을 엄마가 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하고 문자를 보내니 얼마 안 있어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신발 하나를 봤는데 엄마랑 잘 어울릴 거 같으니 사진 보낸 거 보고 답장해달라고 용건만 간단히 말하고 끊었다.


[사줘요]


신발 사진을 받아본 엄마한테 답이 왔다. 저 세 글자에서 엄마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사이즈 몇이야]

[240요]


위의 문장이 나고, 아래의 존칭이 엄마가 쓴 말이다. 나는 불효녀가 아니다. 살갑게 구는 걸 못하는 편이긴 하다. 하지만 내가 엄마한테 퉁명스럽게 얘기한 건 쑥스러워서 그런 거고, 엄마가 나에게 존댓말을 한 건 기분이 좋아서 그렇다. 낮에 주고받았던 문자 때문에 엄마는 내가 집에 오자마자 저 말을 꺼낸 것이다. 나는 ‘그랬어?’ 하고 시큰둥하게 받아치며 방으로 들어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어떻게 엄마 사줄 생각을 했어?”


그냥 하늘색 샌들을 보니 엄마가 생각났어. 여성스럽고. 엄마가 신으면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라는 말 대신에 바닥에 대충 널브러져 미처 확인 못한 메시지에 답장을 하고.


“배송은 언제 와? 이번 주에 와? 점심시간에 오겠지?”


글쎄. 택배회사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라는 말 대신 다리를 벽에 기대고 뭉친 종아리를 툴툴 털었다.


“여태까지 택배 온 거 보니까 거의 점심시간에 왔어.”


내 옷, 내 에센스, 내 책. 그렇게 많은 택배가 우리 집에 배달되었다. 엄마의 박스는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지영아. 엄마는 오늘 너한테 문자 왔을 때 뭔 일 일어난 줄 알고 깜짝 놀랐어. 그래서 바로 전화한 거야 너한테.”


“내가 전화하면 무슨 일 있는 건가 뭐.”


“아니, 우리 딸이 평상시에는 문자 보낼 일이 없으니까.”


그렇게 엄마는 내가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자려고 누울 때까지 띄엄띄엄 말을 걸었다. 내가 별 대꾸를 안 했으니 절반은 엄마의 혼잣말일지도 모른다. 반독백이 공기 중에 퍼지고 나머지 반은 나에게 하는 그런 말. 딸이 자신의 옷과 신발은 일주일이 멀다 하고 집으로 배달시키는데, 엄마의 신발은 이번이 처음인데도 얼마나 기쁘면. 공중에 퍼진 엄마의 말은 내 마음으로 꼭꼭 들어와 시큰하게 자리를 잡는다. 엄마의 기쁨은 내가 집에서 아침과 저녁을 먹는 것, 간단한 문자로 엄마의 폴더폰을 울리게 하는 것, 작고 예쁜 여름 샌들일 뿐이다.

알았으니 잘 해야지, 앞으로 더 잘해야지, 하는 다짐도 엄마의 말처럼 내 몸에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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