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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고래 Oct 22. 2023

춘하대첩: 시커먼스vs영

우리 같이 노올자 #7

 춘하동 골목이 유일하게 조용한 날이다. 일요일 아침 진이와 나는 만화를 보느라 집밖을 나가지 않았다. 우리는 내복만 입고 이불속에서 ‘톰과 제리’를 보며 낄낄 웃었다.

 엄마는 새벽부터 분주했다. 결혼식 혼주머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가게에서는 딸이 최고네, 아들이 최고네, 하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아빠는 방 한 구석에서 홍이 기저귀를 갈고 있었다. 아빠에게는 아직 술 냄새가 났다. 어제 밤에도 엄마와 아빠는 싸웠다. 나는 불안해서 잠들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엄마가 집을 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술 마시는 아빠를 제일 싫어한다. 

‘난 술 취한 아빠도 좋은데.’ 

 아빠는 술에 취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기분이 좋아지면 통닭 한 마리를 사고, 용돈도 준다. 어제도 아빠 손에 있던 닭기름으로 투명해진 종이봉투는 냄새 조차 황홀했다. 매일 먹으려면 아빠가 매일 술을 마셔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하다. 

“녀석들, 이제 홍이 재워야 하는데. 밖에 나가서 놀아라. 아빠가 500원 줄 테니깐.”

우리는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번개처럼 옷을 갈아입고 나갔다.

“뭐 할까?”

“쫀드기 먹으러 가자.”

우리는 학교 앞 미래문방구로 갔다. 일요일에도 문을 연다. 쫀드기를 사서 연탄불에 구워먹고, 뽑기를 했지만 꽝이 나왔다.

“언니, 이제 뭐하지? 고무줄놀이 하자. 복희랑 설희 부를까?”

“걔네는 아마 교회 갔을 거야.”

진이는 시소를 타고, 나는 정글짐에 올라갔다. 동네 아이들은 하나 둘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만화가 다 끝났나보다. 정글짐에 올라가니 우리 동네가 훤히 보였다. 작은 우유갑 같은 집들이 붙어 있는 동네 넘어 공장들이 늘어서 있었고, 그 옆에 황제백화점이 곧 오픈 예정이었다. 현수막과 풍선이 보였다. 

‘오픈? 빅 세일? 다 영어네.’

나는 백화점을 뚫어져라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야 시커먼스 뭐하냐? 입까지 헤 벌리고.”

“아 깜짝이야!”

나는 휘청, 떨어질 뻔했다. 혁구가 축구공을 들고 정글짐 아래에 있었다.  

“남이야 뭘 하든. 말해도 동네 바보가 알아 듣기나 할까?”

“웃기시네. 너보다 똑똑하거든?”

“야 땡칠이가 웃겠다. 살이나 빼! 저번에 리어카목마 아저씨가 너만 내리라고 했잖아.”

“뭐라고? 아니거든 이제 그따위 놀이 기구 시시해서 내가 그냥 내린거거든!”

“웃기시네. 뚱뚱한 남자 아이 때문에 목마 망가질까봐 그 아저씨 이제 우리 동네도 안 오거든. 다 너 때문이야. 책임져.”

“뭐라는 거야. 어쩌라고. 그게 왜 내 탓이야?”

“너 때문에 우리의 소중한 놀이가 없어졌어. 이 돼지 뚱땡이 영구놈아.”

“뭐라고? 이게 진짜!”

 화가 난 혁구는 축구공을 던졌다. 축구공은 순식간에 휭 날아올랐다. 혁구는 몸은 거대해도 운동신경이 제법 있는 편이었다. 

“퍽!”

 공은 내 가슴팍에 정확히 날아와 꽂혔다. 순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몸이 기우뚱했다. 모든 장면이 천천히 바뀌었다. 하늘, 정글짐, 땅, 그리고 하늘. 핑핑 돌았다. 다행히 나는 흙바닥에 곧장 떨어지지 않고, 정글짐 중간에 한 번 걸쳐서 떨어져 충격이 덜한 것 같았다.

“언니!”

진이가 달려왔다. 

“으앙, 으앙, 언니야, 언니야.”

진이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진이는 혁구를 째려보았다. 혁구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는 아프기보다 화가 났다. 

“너 사람 죽이려고 작정했어? 미쳤어? 이게 진짜 죽을라고!”

나는 일어나서 왼손으로 혁구 멱살을 잡았다. 

“이 살인자야. 왜 공을 던져! 네 아빠한테 이를 거야!”

“야 살살 던졌는데 네가 왜 떨어져. 나 때문이야? 네가 운동을 못해서 그런 거잖아. 말도 잘 못 하는 게!”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던 혁구도 내가 다시 일어나니까 안심이다 싶었는지 다시 말싸움으로 밀어붙였다. 우리는 소처럼 힘을 겨루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반장이고 회장이고 우리는 이제 여기서 결판을 내야했다. 

“이 자식이!”

나는 혁구의 팔을 물어뜯었다. 

“아아아아악! 아파 아파. 이거 놔!!”

혁구는 소리 지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나는 그 자식을 놓아주지 않았다. 마치 동네 미친개처럼 계속 물고 늘어졌다. 처음 벌어지는 광경에 진이와 다른 애들도 놀라서 말리지도 못했다. 심지어 어떤 애는 응원을 했다. 

“누나 이겨라 누나 이겨라!”

 “이거 놔. 이거 놔. 야, 으아아아앙!!!”

 혁구의 팔은 파랗게 멍들며 검게 변해갔다. 혁구는 아기처럼 울기만 했다. 그때야 나는 정신이 번쩍 들고 무서워졌다. 그리고 혁구와 동생을 두고 도망갔다. 빠르게 내달리는 나를 진이도 따라 나섰지만 간격은 좁혀지지 않았다. 뛰다가 자꾸만 넘어지 진이는 언니를 애타게 불렀다. 와중에 나는 생각했다.

‘전쟁이 났다면 이런 상황이겠지?’

 진이는 울고, 애들은 소리지르고, 혁구는 운동장에서 홀로 남아 팔을 부여잡고 괴성을 지르고. 나는 어디로 도망가야 하나. 나의 피난처는 어디인가! 나도 아픈데!! 


“딸깍”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화장실 백열등을 켰지만 아직도 어두웠다. 오히려 밖이 환했다. 나는 들킬 새라 희미한 불빛아래 쪼그려 앉았다. 기다란 변기에는 물이 끊임없이 졸졸 흘렀다. 세 집이 함께 쓰는 공동화장실은 똥냄새와 담배냄새가 섞여 누구든 오래 버티기 힘든 피난처다. 하지만 나는 절대로 나갈 수는 없었다. 내 심장은 튀어나오기 직전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경이야, 경이야!”

“경이야 어딨니. 무서워하지 마. 괜찮아.”

“언니! 어디로 간 거야. 경이 언니!”

 동네가 발칵 뒤집어진 모양이었다. 밖에서는 아빠와 혁구 아빠의 대화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세 바늘을 꿰맸어. 붕대로 칭칭감고 아주 볼만합디다. 아니 그 얌전한 경이가 뭔 일이여?”

“그러게요. 경이가 이런 일로 말썽을 피운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참. 죄송합니다. 혁구 아버지. 언제 술 한 잔 사겠습니다.”

“……그려.”

동네 아줌마들이 우리 집 앞에 다 모여 든 모양이다.

“그나저나 경이는 어디 갔데요?”

“그러게요. 어디 무서워서 숨어 있는 건지 찾을 수가 없네요.”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나쁜 짓을 할 아이도 아니고요.”

동네 사람들은 웅성웅성 거렸지만 혁구 아빠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믿어? 하하하하 믿는다고? 누구를 믿어? 경이가 이렇게 개처럼 사람을 물어뜯었는데 뭘 믿어. 병원가서 검사해봐야 되는 거 아녀?”

“검사요? 아니, 듣자 듣자하니. 내가 참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네요. 애들 얘기 들어보니 혁구가 먼저 잘못했더구만. 먼저 놀리고 때렸다는데. 그럼 가만히 있어요? 가만히만 있으면 가마니로 보겠지. 내 딸이 아주 잘 했어. 잘 물었어!”

“허허 참. 그 딸에 그 아버지네. 아주 집안 꼴 잘 돌아가네. 아주 상종을 말아야지. 퉷!”

“혁구 아버지!!”

엄마의 목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진짜 내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네요! 우리 경이만 잘못했나요? 혁구가 만날 시커먼스라고 놀리고, 머리카락 잡아 당이고. 얼마 전에도 학급회의 시간에 망신을 줬다는데. 진짜 혁구 집안 교육이나 똑바로 시켜요. 병원비는 우리가 다 낼 테니 걱정마시고요!”

 평소 얌전한 엄마는 오늘따라 입에 따발총을 단 것처럼 쉬지 않고 공격했다. 혁구 아빠는 잠시 당황하며 팔짱을 풀다가 다시 삿대질을 했다.

“아, 아니 경이 엄마 왜이리 소리를 질러요! 어! 지금 사과 받아야 할 사람 누군데. 이제 보니, 어, 어! 경이가 순 지 애미 닮았구먼!”

“뭐라고요? 어디서 손가락질이에요? 혁구가 엄마가 없어서 그런 거 아니구요?”

“어허. 이 아줌마가 말이면 다야?”

혁구 아빠는 웃옷을 벗으며 땅에 내리쳤고, 엄마도 질세라 들고 있는 가위와 빗을 들이댔으며, 동네 사람들은 아빠와 엄마와 혁구 아빠를 말리느라 시끌시끌했다.

 ‘다들 난리네. 어떡해. 다 나 때문이야. 내가 조금 더 참았어야 했는데. 흑.’

 눈물 콧물 땀이 범벅이 되었다. 이번에는 정말 엄마한테 제대로 혼날 것만 같았다.

“경이를 찾아라! 현상금 십 만원!”

동네 친구들은 탐정놀이라도 하듯 신이 나서 나를 찾으러 다니는 모양이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벌써 밖은 어둑해지고 있었다. 소란스러운 밖과 달리 화장실은 고요했다. 무섭지도 않았다. 아무도 내가 이 냄새나는 화장실에 숨어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정도 울음이 잦아들고 나는 지루하고 잠이 왔다. 그렇다고 화장실에서 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책이나 가져올 걸…’

 나는 평소에도 화장실에 갈 때 책을 들고 다녔다. 숲속 마녀 이야기, 헨젤과 그레텔, 라푼젤, 장화 신은 고양이는 휴지 달라는 귀신도 잊게 해줬다. 가끔 책 읽느라 똥을 다 싸고도 오랫동안 화장실에 있어 엄마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화장실을 못 쓰게 되니 말이다. 

 이제 밖은 조용해졌다. 

‘정말 엄마 아빠가 경찰에 신고하면 어떡하지?’

나는 화장실 문을 빼꼼 열어보았다. 줄무늬 고양이 한 마리만 담벼락에서 야옹 하고 울었다. 빨리 집에 가서 밥이나 먹으라고 채근하는 것 같았다. 아까 공에 맞아 떨어졌던 팔도 욱신욱신 아파왔다.

“꼬르륵”

 내 배는 아침보다 홀쭉해졌다. 갈비뼈가 다 보인다. 부엌에서는 삼겹살 굽는 냄새가 났다. 나는 머릿속으로 혁구에게 사과 편지를 쓰고, 앞으로는 친구를 다치게 하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반성문을 열심히 쓰는 중이다. 그때 화장실 문이 열렸다.

“엄마 언니 여기 있어!”

두루마리 휴지를 겨드랑이에 끼고 진이가 외쳤다. 진이 너머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상이 보였다. 오늘 밥은 매우 짤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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