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호
<월간두부 #12>
개밥 말고 내 밥
월간두부 7월호
“나 집에 가야 해요!”
서둘러 집에 가는 날 보고 사람들이 의아한 얼굴로 올려다본다. 애들도 아직 안 돌아왔는데 왜 그렇게 급히 가시냐, 옷자락을 붙든다. “두부 밥 주러 가야 하거든요.” 다들 웃음을 터뜨린다. 네 밥이나 잘 챙겨 먹으란다. “맞네 개밥 말고 내 밥!” 하고 외치며 다 같이 박장대소한다. 그녀들이나 나나 모두 누구의 입과 속을 채워야 하는 처지였다. 생각해 보니 내 밥은 신경 써서 챙기지 못했던 것 같다. 애들 밥을 만들고 남은 밥을 먹거나, 만들면서 맛보고 배가 부르면 그냥 거르기 일쑤다. 간 보다 배부른 경우도 많다. 그러다 허기지면 밤에 과자를 먹는다. 특히 대학원 학기가 시작되면 과제 하랴 밥하랴 장 보랴 운전하랴 한국보다 더 바쁘다. 이러려고 캐나다까지 왔나 자괴감이 든다며 부모끼리 만나면 하소연한다.
외식을 하거나 시켜 먹기 어려운 캐나다에서는 더욱 몸을 부지런히 놀린다. 피곤해도 꾸역꾸역 밥을 한다. 주로 김치 하나에 국 하나, 아니면 요리 하나를 놓고 밥을 먹는다. 아들 친구까지 챙긴다. 부모 없이 홀로 홈스테이하는 친구는 밥다운 밥을 못 먹는다. 점심으로 바나나, 씨리얼바를 챙겨온다. 이유 없이 그를 초대하여 밥을 먹인다. 지난주에 월남쌈을 함께 먹던 날, 알고 보니 그 아이의 생일이었다. 아이들 학교 친구들은 나만 보면 반갑게 인사한다. 모두 내 밥을 먹어본 아이들이다. 사람만 챙기랴, 전남 구례 출신 군식구 챙기는 걸 잊지 않는다. 소고기나 닭고기로 요리할 때 일부러 재료를 조금 남겨 익힌 후 잘게 썰어 냉장고에 두고 사료와 섞어 두부에게 준다. 이유식 지옥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잘 먹은 두부는 아들들처럼 부쩍 몸이 커졌다. 아이들 말로는 엄마가 너무 잘 먹여서 몸이 펌핑이 된 거란다. 어깨는 역삼각형이고, 허벅지는 말벅지고, 다리가 길며 얼굴은 늠름하니 강아지 보디빌더 대회가 있으면 나가도 될 외모다. 상금 있으면 바로 준비할 텐데....

얼마 전에 수고와 밥에 관한 책을 출간했다. 내 평생 한 일이라고는 밥한 일이라 쓸 얘기가 그것밖에 없었다. 왜 나는 밥을 해야 하는지, 밥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밥이 지겨운데 왜 또 밥이 좋은지 숱하게 기록했다. 10대, 20대, 30대까지 정말 외식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그때는 엄마 밥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맨날 똑같은 나물반찬, 물김치, 오징어무국, 된장찌개, 닭볶음탕 등등 그 맛이 그 맛 같았다. 이런 얘기는 내 책에 무수히 썼다. (깨알 신간 홍보 《수고하는 우리에게》)
내 밥을 챙겨주던 엄마를 떠나 독립을 하였고, 더 멀리 떠나 캐나다까지 오게 되었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 고기 종류가 많은 캐나다에서는 요리를 안 할 수가 없다. 아이 밥, 개밥 말고 내 밥에 신경을 써보기로 한다. 딸들이 싫어해도 가지밥을 한다. 당근라페를 넣어 샌드위치도 만들고, 아침엔 레몬과 올리브오일을 한 컵 마시고 사과를 한입 베어 문다. 과즙이 입가에 맺히고 눈이 떠진다. 두부에게 사과 한 조각을 주니 도망간다. “어떤 개는 오이도 잘 먹는다던데!” 결국 난 자녀들에게도 하지 말아야 할 비교를 두부에게 하고야 한다. 두부는 금쪽이마냥 퇴-하고 오이와 사과를 뱉어낸다. 그래도 꾸준히 먹인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개를 먹이라 하셨던가. 양을 먹이라 하셨던가. 개와 양과 사람과 이웃의 경계를 구분 짓지 않는다. 올해 100세의 나이로 상수하신 시할머니는 키우던 개가 새끼를 낳으면 미역국에 밥을 말아 먹이셨다지. 시할머니는 만두를 몇백 개씩 만드셨다지. 할머니의 먹이는 사역은 예수만큼 컸다.
아, 나는 내 밥을 잘 챙겨야겠다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결국 또 먹이는 이야기를 하고야 말았다. 두부는 어쩐지 나만 쫓아다닌다. 먹이는 자를 가장 애정하고 존경하는 두부의 고마움의 인사는 그날이 오면 들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