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호
<월간두부 #8. 누구에게나 반려견이 필요할 때가 온다>
_2024년 6월호
진솔한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이 주제의 글이 점점 어려워져 지금까지 제대로 쓰지 못했다. 매월 반려견 ‘두부’에 대한 글을 쓰기로 작정하였고, 벌써 6월 29일이 되었다. (이 글을 피드에 올릴 때는 유월 마지막 날 11시 50분 즘이 되겠지. 늘 그렇듯 닥쳐서야 마무리를 짓는다.) 글의 주제 정도는 있지만 <월간두부>는 결론을 정해놓고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특히 이달 글은 자주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강아지라는 생명체에 대한 나의 생각과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기 때문일까. 반려견에 대한 천착과 연구가 미흡했기 때문일까. 마냥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아닌 살짝 부담스러운 상태로 글을 쓰려니 진도가 안 나가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남편의 출장이 잦아지면서 오롯이 두부를 내가 떠안게 되었다. 두부는 하루라도 산책을 나가지 못하면 벽을 긁거나 종일 한숨을 쉬고 슬픈 눈을 한다. 날이 더워지면서 새벽 6시에 산책을 나갔다. 오후나 저녁에는 아이들을 닦달하여 무조건 나가게 하였다. 아이들은 고작 아파트 근처를 배회하고 돌아올 뿐이었다. 가끔 공놀이를 해주거나 옆에 누워 노닥거리는 게 전부다. 결국 먹이고 치우는 일은 전부 내 몫이 된다. 가끔 나는 베란다에서 포효를 하며 소리를 지른다. “으아아아아악!” 그러면 좀 나아진다.
남편은 엊그제 출장에서 돌아왔다. 낮밤이 바뀐 것 같아 이틀 잠을 푹 자게 두었다. 오전에 나가지 못한 두부는 베란다를 오줌 홍수로 만들었다. 정신을 좀 차린 남편에게 베란다를 치워달라고 했고, 남편은 화단 아래 오줌들은 못보고 보이는 곳만 치웠다. 화장실에서 무언가를 씻고 있던 남편에게 “화단 아래에도 오줌이 있었어.”라고 했더니 “나한테 말하지 말고 네가 치워.”라고 짜증을 냈다. 난 그때부터 쌓였던 울분이 터져 제어가 되지 않았다.
“반복되지 않도록 내가 알려주는 거잖아. 그게 당신이 할 소리야??” 우리는 서로 물어뜯고 싸웠고, (실제 물진 않았어요) 아이들은 두부와 각 방으로 도망갔다. 늘 그렇듯 각자 냉전의 시간을 갖고 저녁에는 치킨을 사 오고 화해를 하였다. 휴.
새벽에 나가지 못하는 날은 9시 산책모임에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되는데 참으로 강아지들을 좋아하고 아니 사랑해서 죽고 못 사는 낯선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여성분은 꿀○이를 키우고 갱년기 우울증이 사라지셨다고 했다. 두부를 좋아해 주는 모임의 주도자인 여성분은 찰○를 키우고 수면제를 6개월 동안 먹지 않았다며 간증을 하신다. 구원의 간증 못지않은 몸과 마음의 변화, 삶의 즐거움이 그들에겐 있었다. 가장 적절한 때에 반려견이 선물처럼 찾아와 준 것이다. 모든 것에 때가 있고,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는 성경의 전도서처럼 정말 그녀들에게는 아름다운 때가 되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만사가 다 때가 있다는데, 남편이 데려온 강아지 생명체로 인해 나는 극한 노동의 때를 다시 맞이하게 되었다. 남편에게나 주님에게나 네 아이 육아로는 수련이 부족해 보였던 모양이다. (왜 내게 이런 시련을... 나도 ‘왜 내게 이런 선물을..!’이라고 간증하고 싶다고.)
남편과 화해하며 우산 하나를 같이 나눠 쓰고 치킨 집에서 치킨이 잘 튀겨지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뉴스를 보았다. 뉴스에는 수십 마리의 두부 얼굴이 나왔다. 한 달에 버려지는 개가 6천 마리에서 7천 마리 정도 된다고 한다. 이 글이 유기견 입양 독려 홍보글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당신에게도 어떤 때가 찾아올 거란 예감이 든다면 사지 말고 입양하시길 적극 권한다. 누구에게나 반려견이 필요할 때가 온다. 나에게도 뭐 언젠가는 올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