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호. 웃는 자가 승리하는 법
두부가 온 지 6개월이 되었다. 뭐든 관찰하기 좋아하는 나는 자연스레 두부를 관찰하고 마치 연구 하듯이 기록하고 또 분석하여 남편에게 설명한다. 동물에 대한 나의 이중성에 남편은 늘 헷갈려한다. 좋아하는 거야, 싫어하는 거야. 그게 뭐가 중요해. 좋지만 싫은 거지.
하여튼 갯과의 포유류인 ‘개’는 참 신기하다. 인간과 이토록 친밀하게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동물이 있을까 싶다. 두부는 나비, 새, 고양이를 신기해하고, (열렬히 쫓기도 하고) 같은 종의 강아지들을 보면 환장할 정도로 좋아하지만 직립 보행하는 인간을 제일 좋아한다. 아니 추종한다. 다른 동물을 집에 두고 시간을 보낸 적이 없기 때문에 확언할 수 없지만 개는 단연 인간과 가장 친밀한 반려동물이 아닐까 싶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좋아하는 두부는 나와 많이 닮았다. 좋아하는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아 늘 분주하다. 하지만 분명하게 닮지 않은 하나는 편견 없이 모두를 평등하게 좋아하는 성품이다. 나는 사람들을 자주 평가하고 때로 의심하고 종종 좋아하는 척도 하기 때문에 두부의 폭넓은 사랑의 스펙트럼 안에는 감히 견주지 못한다. 뭐 사실 모두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 코딱지만큼도 없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지도 않고. 하여튼 사랑의 크기는 다르지만 호기심도 많고 겁도 많은 우리는 산책하다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며칠 전에는 재밌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달에 두 번. 화려한 불빛과 트럭, 거대한 곡물 튀김들이 즐비한 거리가 나타난다. 두부의 관심을 끌만한 곳이고 쌀튀밥이나 강냉이를 좋아하는 우리 가족들에게도 매우 매력적인 방앗간이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별로 급할 것도 서두를 것도 없는 저녁이었다. 강냉이 할아버지는 언제나 기분이 좋아 보였는데 신기했다. 돈 많이 벌고 싶어하는 비즈니스 마인드는 1도 없어 보였다. 나와 남편은 만 원어치의 뻥튀기와 강냉이를 사고, 두부는 할아버지와 인사를 하고 공짜 뻥튀기를 얻어먹었다. 할아버지는 개가 참 예쁘다고 하셨다.
“같이 계시던 할머니는 어디 가셨어요?” 할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다고 했다. 할머니를 걱정하니 괜찮다고 하시며 나와 남편이 사이가 좋아 보인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고3에 만나 결혼했고, 수없이 치고받고 싸우며 살았다고 했다. 웃으며 취기에 (한 잔 걸치신 걸로 추정. 아마 밤을 새우고 술이 깨면 집에 갈 생각이셨던 것 같았다.) 횡설수설하여 정확하게 알아듣지 못했지만 하여간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울 정도로 결혼의 절반은 다툼이었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셨다. 뭐, 할머니의 입장을 들어본 바는 아니라 우리는 살짝 장단만 맞추었다.
거대한 강냉이와 뻥튀기 무덤들 사이에 전자 기타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젊었을 적 미군부대를 따라다니며 기타를 치고 노래를 했다고. 일흔이 넘었지만 기타를 놓지 못하고 뻥튀기 무덤에 싣고 다니는 할아버지의 마음은 열정일지 미련일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뻥튀기 얼마예요?” 물으면, “오천만 원이요~” 하고 껄껄 웃는 할아버지의 지나온 지난한 삶을 잠시 상상해 보며 이래도 저래도 결국 웃는 자가 승리가 아닐까 싶었다. 비록 할머니 속은 뭉개져 화병이 생겼을지라도. 언젠가 할아버지의 연주를 들어보고 싶다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두부는 결국 뻥튀기 과잉섭취로 다음날 사료까지 다 토하고 말았다. 풀밭에 뒹구는 바람에 진드기가 붙어 병원도 다녀오고, 재채기도 자주 해서 알레르기 주사도 맞았다. 그럼에도 우리만 보면 입꼬리가 올라가고,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자신의 주어진 삶을 힘껏 즐거워하였다. 낮잠도 잘 자고, 작은 강아지 친구들에게는 죽은 듯 곁을 내어주며 잘 지내고 있다. 미끈하고 세련된 바닥이나 처음 맛보는 수박은 예측할 수 없어 무서워하지만 무탈하고 또 소박하게 계절을 맞이하고 있다. 결국은 그렇다. 두부나 강냉이 할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거 아닐까 하는. 저우쭝웨이가 <달팽이, 세상을 더듬다>에서 말했던 것처럼 ‘산다는 것’ 그 자체가 큰 재산이고 전부이지 않을까 하는. 쓰고 보니 참으로 하찮고 싱거운 5월의 관찰이자 사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