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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앙 Nov 10. 2023

그의 탈모로 포기한 zero plastic 욕실

 편 만나기 한참 전, 정말 괜찮은 분을 소개받았었다. 외모, 성격, 학벌, 직업..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30대 후반을 달려가던 내게 정말 좋은 인연(기회?)이었간만에 소개팅이었다. 하지만 소개팅 내내 나는 그의 머리를 보지 않으려 엄청 애썼다. 정확히는 그의 두피를 보지 않으려 애썼다. 그도 간만의 소개팅이었는지 이발도 하고 왁스도 잔뜩 발랐는데 왁스 때문에 짧은 머리카락이 뭉쳐져 두피가 훤히 다 보였다. 그냥 평소처럼 오시지.. 도저히 대화와 맛있는 음식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나는 다음 만남을 거절했고 스스로를 야단쳤다.


'으구 이 바보야~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냐.. 이렇게 괜찮은 분을 겨우 두피 좀 보인다고 놓치냐..'


 그 후로도 정신 못 차리고 몇 번을 별의별 이유로 놓다. 그러다 30대 후반이 아닌 40대를 향해 달려가던 때 남편을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 대화하던 중 문득 두피 소개팅이 생각나 살짝 봤다. 휴우.. 다행이다. 머리숱이 많은 건 아니지만 두피를 잘 가리고 있었다.


 지만.. 알고 보니 그도 탈모였다. 그것도 대대로 이어져 오는 유전. 심지어 대를 건너뛰지도 않는다. 소개팅 당시에는 약을 먹고 있어서 몰랐다. 게다가 정수리형 탈모였기 때문에 앞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속았다.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어 버렸.




 ZERO Plastic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은 욕실뿐이. 다른 공간은 어렵고 불가능에 가깝다. 냉장고가 플라스틱 재질이라 부엌은 안되고 침실의 폭신한 이불의 주재료는 폴리에스테르다. 베란다에 있는 세탁기도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 그에 비해 욕실은 가능했다. 누, 샴푸, 칫솔 등등 모두 플라스틱이 아닌 대체품이 항상 있다.


샴푸와 린스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가장 반가운 제품이 바로 고체 샴푸와 고체 린스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오프라인으로 살 수 있는 고체 샴푸 브랜드라곤 Lush밖에 없었다. Lush 비싸기도 하지만 동물보호다 친환경이다 해도 원재료를 따져보면 좋지 않은 화학물질도 꽤 포함되어 있다. 지금은 다양한 국내 브랜드 제품이 많대형마트에서 구매할 수 있. 갑다.


칫솔


 솔은 대표적인 플라스틱 모품이지만 대나무 칫솔로 대체 가능하다. 예전에는 humble brush라는 스웨덴 브랜드만 있었는데 지금은 괜찮은 국내 브랜드생겼다. 아쉬운 점은 아직 칫솔모는 플라스틱이라는 점이다. 옛날처럼 돼지털이나 말 털로 닦을 순 없으니 기다려야지 어쩌겠는가. 이 칫솔모 때문에 100%가 아닌 99% 제로 플라스틱이다.


치약


 직만들어 썼다. 벤토나이트 가루, 자일리톨 가루, 숯가루 그리고 코코넛오일을 적당히 배합해서 섞으면 괜찮은 치약이 된다. 자일리톨을 많이 넣으면 달콤하고 숯가루는 치석 제거에 도움이 된다. 가장 뿌듯해하는 아이템이지만 주변에 시도해 보라고 주면 대부분 반기지 않는다. 토나이트 가루로 인해 텁하고 거품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면도기


 All Stainless 면도기를 찾았다. 얇은 면도날만 구해서 갈면 되니 일회용 플라스틱 면도기는 더 이상 필요 없다. 분해하고 조립하는 과정이 재밌다. 생각보다 안전해서 상처 나지 않고 잘 깎인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면도날이 녹슬지 않도록 잘 관리하고 녹슬면 바로바로  갈아야 한다.



결혼 전 brunch 글 : zero plastic 99% 욕실




 욕실은 나의 자랑거리였다. 엄청 검색하고 연구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금은 더 이상 제로 플라스틱 공간이 아니다.


 남편은 탈모약이 여자에게 좋지 않다며 끊었다. 바로 두피가 보이려 한다. 탈모전용 샴푸를 샀다. 역시나 유리병에 든 샴푸는 없었다. 모조리 플라스틱 통이다.


 그런데 이 남자는 나라는 머리털은 안 나고 수염은 왜 그렇게 많이 나는 걸까. 짙고 굵고 촘촘하다. All Stainless 면도기 써보라고 줬지만 인에 피가 나버렸다. 이것도 어쩔 수 없이 기존에 쓰던 플라스틱 면도기를 쓰기로 했다. 그나마 면도 스프레이 대신 면도용 고체비누로 바꿨다. 이거라도 찾아내서 너무 좋았다. 다행히 거품 적당하고 부드럽다며 남편도  마음에 들어 했다. 


 치약 이젠 일반 치약을 쓴다. 처음엔 군말 없이 썼었다. 내가 제때 치약을 만들어 놓지 않자 일반 치약으로 자연스럽게 바꾸게 됐다. 나야 치약 없으면 베이킹소다로 때우면 되지만 그 짠 걸 치약으로 쓰라고 강요할 수 없었다.




 

 국 이렇게 됐다. 혼자 살 때 충분히 가능했던 것이 이제 부엌과 침실, 베란다와 마찬가지로 욕실도 불가능한 곳이 되어 버렸다. 지난 2년 동안 서로 맞춰 가며 시행착오도 함께 겪어 가며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실은 그에게도 큰 변화다. 그의 욕실은 다른 집의 욕실과 다르지 않다. 샴푸, 린스, 트리트먼트, 폼클렌징에 전동 칫솔, 물티슈, 각종 세안제와 욕실 청소도구 등 모조리 플라스틱 천지였다. 나랑 사는 바람에 남편도 가성비 좋은 제품과 편리함을 포기한 셈이다. 그래도 이렇게 글로 쓰다 보니 고집스럽게 지켜오던 내 생활방식을 려놨다는 생각에 문득 슬퍼진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께 남편은 쿠팡에서  플라스틱 덩어리를 샀다. 등유 넣는 기름통이라는데 100% pure plastic이다. 재활용 플라스틱도 아니고 커다랗게 made in USA 라 적혀 있다. 심지어 8만 원이다. 나는 환경주의자란 말이야라며 한참 잔소리했다. 남편은 아차 싶었는지 미안해한다. 미안해하는 남편 얼굴을 보자 남들 같으면 하지 않을 잔소린데 싶어 내 딴에는 백 마디를 열 마디로 줄였다.


 렇게 늘어 가는 플라스틱 덩어리들 사이에서 내 가치관은 점점 멀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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