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만에 병원에 갔다. 정밀초음파실에 들어가 익숙한 듯 누웠다. 선생님은 태아의 머리에서부터 손가락, 발가락 그리고 장기 하나하나와 심장 판막의 움직임까지 자세히 봐주신다. 그동안 태아는 손을 폈다 오므렸다 꼬물꼬물 움직인다. 하품도 한다.
초음파는 볼 때마다 신비롭고 재밌다. 거기에 선생님의 '이 부분도 정상이고요~'라는 말씀을 곁들이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그 말씀 하나만 믿고 다음 초음파 일정을 기다릴 수 있다. 입덧은 가라앉고 배가 똥배만큼 나온 거 외에 아무런 변화가 없어서, 내 배에 애기가 있는 게 맞을까?라는 의심까지 했다. 초음파실은 나의 불안함을 2주 정도 잠재워 준다.
선생님의 설명이 끝났고 배에 묻은 젤을 깨끗이 닦은 뒤 초음파실을 나왔다. 선생님이 '초음파 사진 가져가셔야죠~'라며 다급하게 붙잡는다. 모니터에는 애써 선별한 태아 사진 8장이 보였다.다행히 출력하기 직전이다.
'아니요~ 초음파 사진은 괜찮아요.'
선생님이 재차 묻는다. 보통은 다 출력해서 가져간다면서 말이다.
남편이 내 말을 돕는다
'어차피 버려서요~ 앱에서 확인하면 돼요.'
여전히 갸우뚱하는 선생님을 뒤로하고 우리는 감사인사 드리고진료실로 향했다.
지금 병원으로 전원하기 전, 난임병원을 다니는 동안에는 초음파 사진을 매번 받아 왔다. 미리 초음파 사진은 안 받겠다고 말할 순 있었겠지만, 왠지 난임병원에서 그런 여유(?)를 부리고 싶지 않았다. 내 주변에 앉아 있는 수많은 난임 부부가 오매불망 가슴 아프게 기다리는 아기를 기적적으로 가진 것인데, 그 와중에 쓰레기 안 만들겠다는 모습은 스스로 유별나고 호사스럽다고 생각했다.
난임병원에서 우리는 초음파 사진은 물론 태아 관련 서류도 맘놓고 펼쳐 보지 않았다. 임신의 기쁨과 웃음을 조심했다. 희망을 줄 수 있지 않겠냐고 할 수 있지만, 그 조바심과 힘듦을 알기에 그저 조용히 태아가 건강하게 난임병원을 졸업하기만을 기다렸다.
병원을 옮기고 얼마 뒤 짐정리를 하면서 지금까지 모아두었던 초음파 사진을 모두 버렸다.
사진 한 방 남기고.
옆에서 보던 남편 왈, '다른 사람들은 초음파 사진 모아서 다이어리 만들어 꾸미고 그러던데..'
"그거 끝까지 하는 사람 몇 없어."
내게 초음파 사진은 비닐 조각일 뿐이다. 어차피 앱에 사진보다 자세한 동영상이 있는데 짐을 늘릴 필요가 있을까. 내 뱃속의 태아에 집중하면 되지 비닐 조각에 의미 부여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초음파 사진과 관련 병원 서류를 정리하고 나니 홀가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