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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앙 Sep 03. 2024

내가 컵라면이 땡기다니!!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을 가지고 내 생활에 변화를 준 지  어언 8~9년 정도 된 거 같다. 한창 극단적으로 제로웨이스트를 유지할 때는 새우깡 한 봉지, 치킨 한 마리 먹을 때마다 몇 번을 고민하고 수 차례 건너뛰고 나서야 가끔 사 먹곤 했었다.


 그런 내게 컵라면을 사 먹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봉지라면도 몇 번을 참았다가 정말 먹고 싶을 때만 딱 한 봉지만 사서 끓여 먹었. 봉지라면보다 더 많은 쓰레기가 나오는 컵라면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쓰레기도 쓰레기지만, 코팅된 용기에 끓는 물을 붓는 것은 내겐 환경호르몬 제조 과정일 뿐이다. 튀긴 면발에 MSG 스프도 모자라 환경 호르몬이라니!


 마지막으로 컵라면 먹은 지... 언제였더라.. 기억나지 않는다. 지난 10년 동안 한 두 번은 어쩔 수 없이 먹긴 했겠지?


 결혼 후에도 봉지라면까지만 허용했다. 컵라면은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 남편은 감히 내 앞에서 컵라면 코너 근처도 서성이지도 못했다.

"컵라면 많이 먹구 나중에 애 생겼을 때 걔가 성조숙증이면 그건 당신 책임이라고 탓할 거야~ 그니까 절대 안 돼!"

이런 식으로 말도 안 되는 협박을 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내가 지금 컵라면이 땡긴다.

 입덧을 잠재우려면 뭔가 먹어야 하는 먹덧이라 항상 신선한 과일을 가방에 지니고 다녔다. 그런데 무농약, 친환경의 복숭아, 귤, 살구가 아닌 플라스틱 용기에 끓는 물을 넣어 익힌 육개장, 도시락, 신라면이 먹고 싶다.


 참았다. 눈길은 가지만 사지 않았고 그 앞을 서성였지만 뒤돌아서길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호캉스를 갔다. 밤늦게 배가 고팠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룸서비스는 마감이었고, 잘 준비한 상태라 밖에 나가 귀찮았다. 마침 24시간 로봇 배달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메뉴에 먹을 거라곤 컵라면에 없었다. 게다가 육개이다.


 "어쩔 수 없네.. 컵라면 시켜 먹자"


남편이 깜짝 놀란다.

"너가? 컵라면을? 진짜? 괜찮겠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실은 며칠 전부터 컵라면 너무 먹고 싶었는데 겨우 참고 있었어. 슬퍼.. 하지만 먹고 싶어. 그리고 지금이 온 우주가 들어준 기회라고 생각해."


 남편은 나를 토닥이는 척하더니 옳다쿠나라며 바로 주문했다. 로봇은 3분 만에 가져다줬고 남편은 5분 만에 내 앞에 대령했다. 10년 가까이 유지해 온 나의 소신을 내어주는데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과연 환상적인 맛이었다. 컵라면의 면발은 봉지라면의 그것과 다르다. 더 바짝 튀겨 쉽게 퍼지지 않으면서 더 얇게 튀겨 스프가 잘 배어 있다. 일회용 용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화학물질은 국물을 더 감칠맛 나게 해주는 듯했다.


 "힝~ 맛나.. ㅠ "


 먹는 내내 맛있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죄책감과 함께 마지막 면발 하나하나 음미하며 먹었다. 이제 다시는 컵라면을 안 먹어야지 다짐하면서.


 바로 다음 날, 남편이 편의점에서 사 왔다며 해맑은 얼굴로 내게 자랑한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좋더라며 신라면, 도시락, 육개장 하나씩 든 봉지를 들고 말이다. 정말 세상 도움이 안 되는 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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