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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타 Nov 29. 2022

업무는~♪ 하나인데~♬ 사공은 1,587,924명

임원이 부를 때는 "네네네", 후배가 말할 때는"노노노"

나는 (체감상) 1만 명의 상사에게 지시를 받으며, 3만 명의 동료들과 일을 한다. 어차피 노예라면 대감집 노예가 낫다는 말에는 십분 공감하지만, 대감집 노예들은 지름길로 걷지 못한다. 돌 밭이라 걷다 보면 발의 피로도는 상당해도 10분이면 도착할 길을 대감집 노예들은 2시간을 빙 둘러 걷고 또 걷는다.


주어진 업무가 대감님까지 올라가는 업무라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대감님 연말 파티 기획의 건>을 맡게 된 쇤네 박현타는 대감님의 성향과 참석자들의 정보 및 대내외 트렌드를 고려하여 연회장과 음식, 세부 프로그램들을 기획한다. 준비된 안을 최측근 나리께 보고 드리면 몇 가지 수정사항을 보완한 후 영감님을 마주할 기회를 얻는다. 바로 이때부터 고난과 역경의 세레나데가 시작된다.


영감님은 청색포를 나눠 입는 주변 높으신 양반들과 함께 쇤네의 초안을 날카롭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단어 하나하나 의미를 찾기 시작한다.


"왜 파티라고 쓴 거지? 축제나 송년회는 어떠한가?"

"드레스코드가 재미가 있나? 이걸 좋아할 것 같은가?"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너무 노는 것으로 비칠까 봐 우려스럽네만."



저기요 영감님.

파티나 축제나 송년회나 그 단어 바꾸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으며, 드레스코드요? 재밌겠다 싶으니 넣은 거고, 좋아할지 아닐지는 안 해봤는데 제가 어떻게 압니까? 그리고 상대적 박탈감은 이미 우리의 녹봉 처우에서부터 느끼고 있는데 뭘 새삼스럽게 그러십니까. 마찬가지로 지금 우려하셔야 할 것은 노는 것으로 비칠까 봐가 아니라 이렇게 팔만 대군이 달려들어 훈수를 두다 보면 연말 잡탕 파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은 게 쇤네의 짧은 생각입니다요.


라고 하고 싶지만 대감집 노예는 이 모든 감정과 생각을 환멸의 눈빛에 담아 허공 속에 날려 보낸 후 대답한다.

"넵"


90년대생이 어쩌고, 밀레니얼이 어쩌고 하던 것이 MZ에서 Z까지 간 작금의 상황에서 우리는 이러한 작명이 아니라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놈의 MZ세대 일원으로서 세대 가르기 만큼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행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고대 벽화에도 요즘 애들 어쩌고 하는 내용이 쓰여있듯이, 시대의 흐름은 꽤나 반복적이며 당연하게 변화한다. 중요한 것은 다름을 인정하고 그를 통해 보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결과물을 도출해낼 줄 아는 태도다.


많은 리더들이 '뭐라도 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후배가 해온 초안에 대해 뭐라도 피드백을 주어야 할 것 같은 마음에서 기인한 고질병이다. 이 정도면 괜찮다 싶고 대세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사안이지만 뭐라도 고쳐줘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수정사항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자존심 때문이라면 그냥 그렇게 사시라고 말하고 싶고, 책임감에서 비롯된 강박이라면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조금 더 믿어보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오늘도 열일하는 전국의 모든 쇤네들에게 무한한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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