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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타 Feb 07. 2023

일은 '되'로 하고 돈은 '말'로 받고 싶다

우린 이걸 양얼취라 부르기로 했어요

살다 보면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싶은 들이 생기는데 높은 확률로 그 순간은 부정적이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상황이 기쁠 순 없을까 하던 찰나, 몇 년 전 인터넷을 휩쓸었던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가 아주 적확한 사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음이: 남자 친구(키가 작음/드론 자격증 취득 예정이나 아직 책을 펴지도 않음)


모순적이게도 우리 사회는 힘들게 일하는 사람이 적게 번다. '사'자 들어가는 직업군이나 그들 스스로 "우리는 개꿀이야~"라고 말하는 연예인들은 힘들게 일해도 많이 벌지 않냐고 하겠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돈도, 인정도, 명예도 따르지 않는 일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아주 가까운 친구조차도 모르는 이야기다.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었으니까. 오래전, 혼자서 나를 키우던 엄마는 먹고살기 위해 청소를 했다. 청소를 하기에는 지나치게 젊은 나이였고,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새벽에 나가는 대신 빨리 끝나니 집안일도 할 수 있고 내 시간이 생긴다는 이유로 청소를 선택했다. 엄마가 그곳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나는 아직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엄마,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엄마, 가게를 운영하는 엄마를 둔 친구들과 나의 다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네가 있는 곳에서 당장 내일 사라지면 가장 힘들 것 같은 사람*에게 가장 잘해야 한다."라고 말했던 엄마이기에 미화 여사님들께 만큼은 곰살맞게 굴던 나였지만 소위 싸가지 밥 말아먹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봐왔기 때문에 걱정이 앞섰다.

*엄마의 말은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친구들, 회사에서는 상사와 동료들에게 잘하라는 말 같은데, 청결에 예민했던 나는 깨끗한 공간을 만들어 주시는 분들께 가장 싹싹하게 굴었다.


다행히 엄마는 회사 직원들, 함께 일하는 동료 모두와 잘 지냈다. 앞서 말했듯이 동료들에 비해 한참 어린 나이였기에 이 일 그만하고 다른 직장 알아보라는 염려의 말과 함께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들었다.



오늘의 일기는 철저하게 제목만 보고 골랐다


다시 생각해도 엄마는 참 멋졌다. 엄마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 주변 사람들이 직업에 귀천이 왜 없느냐며 '제대로 된' 일을 하라고 할 때에도 일이 다 같은 일이지 제대로 된 일은 뭐냐며 쿨내 나게 웃어넘겼다. 이후 엄마는 80까지 일해야 한다는 효년 같은 딸내미로 인해 누구 말마따나 '제대로 된'현재의 직업으로 커리어를 변환하여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일하고 있다.


문제는 나였다.

첫 회사 재직 당시 화장실 청소도구함 안 쪽에 앉아 계신 미화 여사님께 왜 불편하게 거기 앉아 계시냐고 물었고, 여사님께서는 마땅히 쉴 곳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씀하셨다. 저랑 같이 카페라도 다녀오시겠냐는 물음에 이렇게 입고 가면 사람들이 안 좋아한다며 손사래를 치시는 바람에 발걸음을 돌려 자리로 향했다. 일이 쌓여 있었는데 손에 잡히지 않았다. 분노가 차올라서 참을 수가 없었다. 남의 일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동료들에게 이게 말이 되는 일이냐며 이야기를 늘어놓던 와중 권위의식으로 똘똘 뭉쳐있던 한 팀장님께서 "아니 누가 보면 현타씨 부모님인 줄 알겠어~ㅋㅋㅋ 뭘 그렇게 흥분을 하고 그래?"라는 말을 던지셨다.


내가 해외에서 살다 왔다는 이유만으로 잘 사는 집 딸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비아냥 대던 사람이었고, 워낙에 아랫것들을 하찮게 보시던 분이라 단 한순간도 좋아한 적이 없었기에 지나가는 뒤통수에 대고 소리치고 싶었다.


"네가 나 대신 떠벌리고 다니던 내 유학, 그거 우리 엄마가 청소해서 번 돈으로 다녀온 건데 문제 있어?"


인과응보를 믿지 않는 나지만 그 팀장님은 얼마 못 가 본사에서 지방으로, 지방에서 집으로 발령이 나셨고 그날 나는 턱 빠지게 웃으며 퇴근을 했다. 다시 생각해도 기분이 좋다.


지금 회사도 소위 대감집이다 보니 매우 많은 미화 여사님들이 계신다. 간식이 생기면 동료에게는 안 줘도 미화 여사님들께는 쪼르르 달려가 나눠 먹곤 한다. 그리고 이제는 짬이 되다 보니 가끔은 직원들이 쉬는 공간 한편에 여사님들을 모시고 가서 앉아서 쉬시라고도 한다. 늘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 주시는 여사님들에 대한 감사함 반, 그 시절 엄마의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 반이 만들어 낸 반반컬렉션이다.


만약 누군가를 직업이라는 잣대로 평가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전하고 싶다. 당신의 평가질이 무색할 만큼 그 사람은 잘 살 것이고, 앞으로 더 잘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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