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 알고리즘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추천을 받고 있어요. 그것도 아주 다양한 범위에서 말이죠. 음악, 영화, 쇼핑, 뉴스까지 알고리즘이 ‘우리에게 딱 맞는 것’을 대신 골라주는 상황이 처음엔 편리했어요. 나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선택의 시간을 줄여주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거, 정말 내가 고른 걸까?” 편리함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선택의 주체’라는 감각을 잃어가고 있을지도 몰라요. 세 번째 주제에서는 알고리즘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게 되고, 고유의 취향을 지켜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지난 대화 : 정답을 알려주시는 시대, 질문을 잃어버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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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 추천이 우리의 선택의 폭을 넓혀줄까요? 아니면 좁히게 될까요?
추천이 딱 맞을 때보다 빗나갔을 때, 오히려 나를 더 잘 알게 된 순간은 없었나요?
추천이 쏟아질수록, ‘내가 스스로 고른 것’이라는 감각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나요?
알고리즘의 편향성이 우리의 사고방식이나 세계관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취향을 지키거나 넓히기 위해, 당신만의 작은 ‘저항 습관’은 있나요?
(감자윤)
저는 알고리즘 덕분에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것들이 있어요. 예전에 유튜브 뮤직에서 자동으로 ‘일본 J-pop’이 재생된 적이 있었거든요. 그전까지만 해도 일본 음악엔 관심이 없어서 일부러 찾아 들을 일도 없었는데, 막상 들어보니 제 취향에 딱 맞더라고요. 그 이후로 일본 노래를 자주 즐겨 듣게 되었어요.
요즘은 쇼핑이나 유튜브, SNS 같은 일상 속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자주 해요. 알고리즘이 제 취향을 꽤 정확하게 맞추다 보니, 그 안에서 새로운 걸 발견하게 되기도 하죠. 물론, 알고리즘이 의도한 방식대로 제가 끌려다니는 걸지도 모르지만, 저는 여전히 그 덕분에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고 느껴요.
(밤열두시)
저도 그래요. 예전에 넷플릭스가 추천해 준 스페인 드라마 종이의 집을 본 적이 있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어서 이후엔 유럽 드라마에 관심이 생겼어요. 확실히 스스로는 잘 찾지 않았을 길을 열어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동시에, 가끔은 ‘갇힌 느낌’이 들기도 해요. 한동안 스릴러 장르만 봤더니, 추천도 전부 스릴러뿐이더라고요. 다른 장르가 보고 싶어도 홈 화면에는 늘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들만 줄지어 있어서, 겉보기엔 선택지가 많지만 실제로는 한 울타리 안에 있는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알고리즘이 우리의 선택을 넓혀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좁히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길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 번 방향이 정해지면 그 울타리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지는 거죠.
(감자윤)
맞아요. OTT에서 특히 자주 느껴요. 추천이 수백 편인 것처럼 화려하게 펼쳐져 있어도, 막상 하나하나 열어보면 대부분 비슷한 톤의 작품이에요. 예를 들어 액션 영화를 한두 편 봤을 뿐인데, 그 뒤로는 비슷한 줄거리나 캐릭터가 반복되죠. 겉으로는 다양해 보여도 결국 한 울타리 안에서만 맴도는 느낌이에요.
이건 단순히 콘텐츠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반에도 나타나는 현상 같아요. 정치나 사회 이슈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콘텐츠만 보게 되니까, 의견이 점점 극단으로 나뉘는 거예요. 처음의 작은 취향이 확신으로, 확신이 신념으로 굳어지면서 다른 관점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지는 시대가 된 것 같아요. 결국 기술이 발전할수록 선택지는 많아지지만,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세계는 오히려 점점 좁아지고 있는 건 아닐까요?
(밤열두시)
그 말에 정말 공감돼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어요. 며칠간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콘텐츠만 보다가 피드를 열어보니 온통 비슷한 주제와 분위기뿐이더라고요. 사회 양극화가 뉴스 속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사실 내 안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거예요. 음악도, 영화도, 감정선도 다 비슷해지니까 ‘이건 내 취향이니까 당연히 좋아해야지’ 하며 자동으로 소비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익숙함 속 다양성이 사라질 때, 문득 낯선 추천이 반갑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이건 싫은데 왜 자꾸 생각나지?” 그런 순간이 오히려 나를 더 잘 알게 해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요. “추천이 딱 맞을 때보다 빗나갔을 때, 오히려 나를 더 잘 알게 된 순간은 없었을까?” 어쩌면 알고리즘이 예측하지 못한 그 ‘빗나감’ 속에 진짜 나의 취향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감자윤)
저는 보통 온라인 쇼핑을 자주 하는데, 무채색 계열의 심플한 스타일만 고집해요. 그러다 보니 알고리즘도 비슷한 옷만 추천하고, 저도 거기에 익숙했죠. 그런데 어느 날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원분이 비비드 한 녹색 카디건을 추천하셨어요. 평소 스타일과 달라 망설였는데, 권유에 못 이겨 입어보니 분위기가 확 달라지더라고요.
그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오늘도 온라인에서만 쇼핑했다면, 나는 이 옷을 절대 고르지 않았겠구나.’ 결국 알고리즘은 내 행동을 기준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그 반경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걸요. 효율적이지만, 나를 새롭게 확장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거죠.
(밤열두시)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저도 비슷한 경험이 떠오르네요. 저는 향수를 고를 때 늘 시트러스 계열만 샀어요. 깔끔하고 무난하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직원이 “이건 평소 취향이랑 다를 수도 있지만 꼭 한 번 시향 해보세요.”라며 우디 계열 향수를 권했어요. 처음엔 진해서 어지러웠는데, 시간이 지나며 은은하게 남는 잔향이 마음에 남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어요. ‘내가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건, 사실 시도해 본 적이 없던 것일 수도 있겠다.’ PM 일을 하다 보면 알고리즘이 얼마나 효율적인지 잘 알지만, 동시에 그 효율이 우리의 ‘새로운 가능성’을 지워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알고리즘은 늘 과거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움직이니까요. ‘미래의 취향’은 언제나 그 바깥, 예측할 수 없는 곳에 숨어 있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 ‘빗나감’을 만들어보려 해요. 음악 앱에서 평소 듣지 않던 장르를 들어본다든지, SNS에서 관심 없는 주제의 글을 클릭해 본다든지요. 낯설지만 그 안에서 의외로 나와 맞는 무언가를 발견할 때가 있거든요. 결국 ‘나를 더 잘 안다’는 건, 알고리즘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그 틀 밖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용기를 내는 일인 것 같아요.
(감자윤)
저도 의식적으로 그런 시도를 해보려 해요. 추천된 콘텐츠를 잠시 넘기고, 낯선 제목이나 스타일을 골라보는 식으로요. 하지만 이런 의식적인 시도는 금세 한계가 오더라고요. 그래서 추천 기능을 끄거나, 시청 기록이 남지 않도록 설정해보기도 해요. 밤열두시님이 말한 ‘한 걸음 나가는 용기’라는 표현이 참 와닿아요.
결국 알고리즘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그 한 걸음을 내딛는 건 여전히 인간의 몫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시도를 하다 보면 또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 선택의 주체가 정말 나일까?’ 추천이 쏟아질수록, ‘내가 스스로 고른 것’이라는 감각은 점점 어떻게 달라지고 있을까요?
(밤열두시)
저도 그런 생각을 자주 해요. 분명 내가 고른 것 같은데, 나중에 보면 이미 여러 번 봤던 제품이거나 익숙한 이미지일 때가 많아요. 처음엔 내 취향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반복된 노출의 결과였던 거죠. 그래서 요즘은 ‘내가 왜 이걸 고르고 있는가’를 한 번 더 생각해요. 진짜 마음에 들어서인지, 익숙해서 그런 건지 구분하려고요.
그 차이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내 선택이 조금 더 선명해지는 느낌이에요. 완전히 독립된 선택은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안에서도 ‘내가 왜 이걸 좋아하게 됐는지’를 알고 있는 건 여전히 내 몫이죠. 알고리즘이 제시한 선택지 속에서도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면, 그건 여전히 ‘나의 취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감자윤)
저도 그 생각에 동의해요. ‘왜 이걸 골랐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있다면, 그건 내 취향이다’라는 말이요. 요즘의 선택은 ‘고르기’보다 ‘평가하기’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예전엔 수많은 옵션 중에서 직접 찾아보고 비교하며 선택했지만, 지금은 알고리즘이 이미 후보를 좁혀놓죠. 우리는 그 안에서 ‘좋아요’를 누르거나 끝까지 보지 않는 식으로 반응을 남겨요. 그게 하나의 평가 행위가 된 거예요.
결국 이런 반응이 다시 데이터로 쌓여 다음 추천에 반영되니까, 알고리즘 안에서도 내 취향은 계속 업데이트되는 셈이죠. 완전히 내 손으로 고른 건 아니더라도, 그 안에 내 판단이 남아 있다면 그건 여전히 ‘나의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밤열두시)
그 말 듣고 보니, 요즘 우리가 ‘선택하는 방식’ 자체가 정말 달라졌다는 걸 느껴요. 이전엔 직접 찾아보고 비교하면서 ‘무엇을 고를까’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추천된 것들 중에서 ‘괜찮은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쪽으로 옮겨졌잖아요. 말 그대로 ‘선택자’에서 ‘평가자’로 이동한 셈이죠. 하지만 그 안에서도 여전히 나만의 반응이 있어요. 같은 영화를 추천받아도 어떤 사람은 바로 재생하고, 어떤 사람은 그냥 넘기잖아요.
결국 그 미묘한 차이 속에서 진짜 ‘나의 취향’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요즘 ‘무엇을 골랐는가’보다 ‘무엇에 반응했는가’를 더 주의 깊게 봐요. 좋아하는 이유뿐 아니라, 왜 싫었는지까지요. 알고리즘이 길을 만들어주더라도, 그 길 위에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는 순간만큼은 분명히 내가 주체라고 느껴요. 그 작은 판단의 순간들이 쌓여, 결국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 싶어요.
(감자윤)
반면 저는, 알고리즘의 영향력이 개인에게 미치는 힘을 결코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내가 주체적으로 이유를 찾고 평가하며 선택한다 해도, 그 안에는 이미 알고리즘이 설계한 맥락이 스며있을 수 있잖아요. 어쩌면 ‘이건 내 선택이야’라는 생각마저, 알고리즘이 유도한 일종의 착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알고리즘도 우리에게 ‘우연한 발견’을 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다양한 상품을 추천한다’는 사업 목적이 있다면, 내 과거 기록을 기반으로 다른 카테고리의 상품을 섞어 제안할 수 있겠죠. 그 과정에서 내가 평소 생각하지 않았던 카테고리의 상품을 마주하고, ‘내가 새롭게 탐색했다’고 착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사실은, 그마저도 철저히 계산된 알고리즘의 의도일 수 있죠. 그래서 저는 ‘알고리즘에서 벗어나야 한다’보다 ‘알고리즘의 영향력을 이해해야 한다’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밤열두시)
그 말 들으니까 확실히, 우리가 ‘알고리즘에 저항한다’는 생각 자체도 어쩌면 그 안에 포함된 행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내가 어떤 영상을 보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도, 어떤 게시글을 클릭하지 않겠다고 마음먹는 것도 이미 알고리즘이 설계한 ‘선택의 맥락’ 안에서 이루어지잖아요.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결정을 내린다고 말하긴 어렵죠.
그래서 저도 요즘은 ‘벗어나야 한다’보다는 ‘이해하고 다루는 법’을 배우는 쪽에 가까워졌어요. 내가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알고 나면, 그 영향 안에서도 조금은 주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결국 중요한 건 알고리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나의 기준을 잃지 않는 일인 것 같아요.
(감자윤)
알고리즘의 편향성은 사회 전반에 ‘보수적인 태도’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단지 내가 무엇을 고르는 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는가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죠. 같은 사안을 봐도 내게 익숙한 관점에서만 해석하게 되고, 낯선 시각은 ‘틀렸다’고 느끼게 돼요. 그래서 저는 요즘 새로운 정보를 볼 때 ‘내가 이걸 고르고 있다’보다 ‘이걸 어떻게 해석하고 있지?’에 집중하려고 해요. 편향이 무서운 건 잘못된 정보를 주기 때문이 아니라, 다름을 불편하게 만드는 힘이 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밤열두시)
그 말 들으니, 저도 요즘 ‘다름’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걸 느껴요. 예전엔 낯선 의견을 보면 “왜 다르지?” 하는 호기심이 먼저였는데, 이제는 본능적으로 “이건 좀 아닌데”라는 판단이 더 빨리 떠오르더라고요. 피드를 넘길수록 익숙한 어조와 비슷한 생각이 쌓이니까, 다른 목소리가 때로는 소음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게 더 무서운 일 같아요. 내가 틀릴까 두려운 게 아니라, 다름에 반응할 여유가 사라졌다는 사실요. 생각보다 감정이 먼저 반응하고, 그 감정이 내 판단을 덮어버리는 순간이 늘었거든요.
그럴 때면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닫혔을까?’라는 질문이 올라와요. 그래서 요즘은 다름을 ‘설득하려’ 하기보다, 그 다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려고 해요. 모든 걸 공감하지 않아도 괜찮고, 납득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스스로 허락하는 거죠. 이상하게도 그 인정의 순간이 오히려 내 생각을 다시 열어주는 출발점이 되더라고요.
(감자윤)
생각해 보면 요즘은 ‘비슷한 사람들끼리 연결’되는 서비스가 많아요. 자연스럽게 우리의 사고도 그쪽으로 흘러가고 있죠. 비슷한 취향이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했을 때 시너지가 난다는 믿음이 강해졌어요. 하지만 과거엔 조금 달랐죠. ‘집단지성’이란 단어가 유행하던 때에는 서로 다른 시각이 부딪히며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했거든요.
그때는 다양성을 존중할 때 큰 가치가 생긴다고 믿었죠. 지금은 다양성을 말하지만, 정작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교류하고 더 작은 단위로 분화되는 시대가 된 것 같아요. ‘나와 다르면 불편하다’는 감정이 커지고, 그 불편함이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단정으로 이어질 때도 있고요.
(밤열두시)
그 말 들으니까, 요즘 들어 ‘나와 비슷한 사람들만 남는 세상’이 꼭 편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슷한 생각, 비슷한 유머, 비슷한 문장들 속에서 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느 순간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말이 통하지 않는 나’를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예전엔 누군가의 낯선 시각을 마주할 때 “아, 세상엔 이런 생각도 있구나” 하며 새로워했는데, 요즘은 그 낯섦이 불편하고, 심지어 위협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게 제일 무서운 변화 같아요.
내가 닮아가는 세상을 편안해하면서도, 그 안에서 점점 고립되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요즘은 ‘다름을 수용해야지’라는 다짐보다 ‘다름을 마주할 때 느끼는 나의 불편함’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해요. 그 감정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나도 그 편향의 일부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나를 다시 세상과 연결하는 첫걸음 아닐까요.
(감자윤)
맞아요. 나라는 존재를 과도하게 확대 해석하지 않고,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가 지금 AI 시대에 가장 필요한 자세 아닐까 생각해요. ‘인정한다’는 건 단순히 오류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그 틀림 앞에서 느껴지는 부끄러움이나 두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일일지도 몰라요. 그 감정을 온전히 느끼기 때문에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고, 배움의 방향으로 자신을 열며 더 큰 세계로 연결될 수 있는 거겠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오히려 ‘감정을 마주 보는 일’에 점점 서툴러지고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AI로 인해 ‘실패’라는 경험 자체를 점점 더 두려워하게 되는 모습처럼요. 알고리즘 속에서 벗어나려는 작은 시도를 하더라도 결국 안전한 선택을 택하며 실패의 가능성을 줄이는 쪽으로 흘러가는 나 자신을 볼 때가 있어요. 그렇게 우리는 모르는 세계로 나아가기보다, 익숙한 알고리즘의 울타리 안에서 안도감을 찾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밤열두시)
매일 수십 개의 추천을 받고, 피드를 넘기고, 반응하면서 내 생각이나 감정이 조금씩 바뀌는 걸 느껴요. 그걸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아, 내가 이렇게 반응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순간이 있죠. 그때 잠깐 멈추면, 흐름에 휩쓸리는 대신 조금 더 선명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흐름 안에서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잊지 않는 것, 그게 요즘 가장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감자윤)
저는 유튜브 계정을 두 개 쓰고 있어요. 그중 하나는 ‘시청 기록 저장’을 꺼둔 계정이에요. 시청 내역이 쌓이지 않으면 비슷한 콘텐츠 위주의 추천이 줄어든다고 들었거든요. 가끔 원래 쓰던 계정으로 영상을 보다 보면 너무 비슷한 주제나 패턴의 콘텐츠들만 떠서 답답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기록 저장이 꺼진 계정으로 옮겨서 새로운 주제와 시선을 리프레시하듯 마주해요. 또 요즘은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는 것도 굳이 오프라인으로 바꿔보려고 해요. 특정 브랜드나 상품이 정해진 게 아니라면, 온라인 탐색 대신 직접 매장에 가서 여러 브랜드의 제품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죠.
이렇게 오감으로 느끼다 보면 ‘새로운 것’에 대한 심리적 거리도 낮아져요. 자연스럽게 더 과감하게 도전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뜻밖의 취향을 발견할 때가 많아요. 무엇보다 오프라인 행동은 데이터로 남지 않으니까, 알고리즘의 영향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는 점도 좋아요.
(밤열두시)
저도 비슷한 맥락의 방법을 쓰고 있어요. 크게 세 가지 정도가 있는데요.
하나는 RSS 리더를 활용하는 거예요. 저는 피들리(Feedly)를 오래 써왔는데, 직접 발견하고 선택한 채널만 등록해 두었어요. 그래서 매일 아침, 내가 고른 정보로 하루를 시작하는 느낌이 들어요.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흐름이 아니라, 내가 구축한 ‘읽는 루틴’을 통해서요.
두 번째는 뉴스레터 구독과 해지의 반복이에요. 저도 뉴스레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관심사나 구성을 참고하기 위해 다른 뉴스레터를 꾸준히 구독하고, 때로는 정리하듯 구독을 해지해요. 각 에디터들이 자신만의 시선으로 쓴 글을 보면서 내 관점을 점검하고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무엇보다 직접 ‘구독하기’를 누른 콘텐츠라 더 주의 깊게 읽게 돼요.
세 번째는 정기적인 서점 방문이에요. 예전만큼 자주 가진 않지만, 여전히 오프라인 서점은 제 취향을 환기시켜 주는 공간이에요. 큐레이션 코너를 천천히 둘러보기도 하고, 그날의 기분에 따라 충동적으로 책을 집어 들기도 하죠. 개인적으로 온라인에서 ‘비슷한 책’을 추천받는 것보다, 서점에서 ‘전혀 다른 책’을 우연히 만나는 순간이 훨씬 오래 기억돼요. 그건 알고리즘이 줄 수 없는 기쁨이에요.
(감자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결국 핵심은 ‘직접 고르는 루틴’을 얼마나 자주 만들 수 있느냐인 것 같아요. 요즘은 대부분의 콘텐츠나 상품이 알아서 ‘내게 맞는 것’으로 정리되어 오니까, 스스로 고르지 않아도 되는 구조잖아요. 그래서 저는 일부러 ‘작은 불편함’을 만들어두려 해요. 예를 들어 유튜브 뮤직에는 ‘처음 듣는 노래’라는 필터가 있어요. 추천 알고리즘이 제 취향을 꽤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그 필터를 켜서 완전히 낯선 곡을 들어요. 익숙한 노래 대신 새로운 멜로디가 흘러나올 때, 그 낯섦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또 하나는 ‘기록’이에요. 좋았던 것, 싫었던 것을 단순히 생각으로만 두지 않고 짧게라도 적어두려 해요. 기록을 하다 보면 ‘취향의 경계’가 점점 보이거든요. 가끔은 내가 정말 좋아한 게 아니라, 단지 익숙해서 반복 소비하던 ‘습관적 반응’이었다는 걸 발견하기도 해요.
우리는 매일 알고리즘이 만들어놓은 길 위에 놓여요. 그 길은 효율적이고 편리하지만, 너무 매끄러워서 가끔은 방향을 되려 잃거나 우리를 의미하게 만들기도 하고요.
그래서 지금 필요한 건 거대한 저항이 아니라, 아주 작은 - 빗나감에 대한 용기라고 생각해요. 낯선 영화를 클릭하고, 익숙하지 않은 향을 시향 하고, 온라인 대신 오프라인 매장의 한편을 둘러보는 일. 그 사소한 선택들이 모여, 조금씩 ‘나’를 다시 선명하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요.
물론 알고리즘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이제 불가능하다 생각해요. 하지만 그 안에서 적어도, 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고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나다운 취향’을 지키는 첫걸음 아닐까 싶어요!
Q1. 알고리즘이 너무 정확하게 맞춰줄 때,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요?
Q2. 낯선 것을 시도할 용기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Q3. 알고리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을까요?
“세상은 점점 빨라지는데,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는 것 같아요.”
AI와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어제 익혔던 툴이 오늘은 구식이 되어버리는 시대예요. 누군가는 벌써 ‘AI로 10배 빠른 생산성’을 이야기하고, 또 누군가는 ‘업무 자동화’를 끝내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죠. 그 사이에서 우리는 종종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을 느껴요.
이 글에서는 ‘기술의 속도’라는 파도 앞에서 우리의 제한된 시간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를 이야기해보려 해요. 단순한 생산성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 따라잡을 것인가, 어디서 멈출 것인가”에 대한 스스로의 기준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활용해 볼 예정입니다.
이 시리즈는 2명의 에디터가 하나의 매거진에서 교차 발행하고 있어요. 매거진을 구독하시면 보다 빠르게 새로운 글을 받아보실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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