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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May 06. 2021

그때, 그 찰나의 순간 '나와의 만남'

나와 내가 만난, 그 뭉클한 순간의 기록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발음은 어색한데, 노래를 끝까지 부르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오빠를 따라 노래하는 동생의 모습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한 명이 마이크를 계속 잡지 못하도록 한 번씩 순서를 바꿔주던 아버지의 목소리도 함께 들렸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카세트테이프는 30년이 다 되어가는 기록으로 동생과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유치원을 다니고 있을 나이, 이제는 작게 먼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그때가 순식간에 눈 앞으로 다가온 것 같았다. 신기하고 반가운 마음에 재생 버튼을 눌러 한 번, 뒤로 감기 버튼을 누른 후 또 한 번, 그렇게 몇 번을 재생하며 동생과 나의 노래를 들었다. 





가장 최근에 떠난 가족여행, 제주 2020년 11월






떠올릴 수 있는 나와 우리가 더 많아졌구나, 라는 생각으로 스마트폰에 다시 녹음을 하려는 순간 아버지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기억하지 못했던 나를 만난 반가움에, 몇 번을 재생하면서도 집중하지 못했던 소리였다. 서로 노래를 부르겠다는 두 녀석을 달래기도 하고, 곧 노래를 부르려는 내게 어떤 노래를 부를 건지 묻기도 하며, 옆에 있는 동생에게(아마도 입술이 삐죽 나왔을) 오빠가 부를 때 따라 불러도 된다고 웃으며 말하던 목소리. 


결혼 전, 우리가 하루가 달리 커가고 성장하는 모습을 매일 같이 지켜본 건 좋지만 '아들과 딸'의 매일이 사라지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는 부모님의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이, 멈춰버린 카세트테이프 옆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저 노래를 부르고 싶었던 두 녀석의 그 날을 소중히 기록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리고 언제가 그 테이프를 재생해 홀로 들었을 모습이 그려졌다. 





가장 최근에 떠난 가족여행, 제주 2020년 11월






그리고 얼마 뒤, 곧 이사를 하게 될 본가에 책을 정리하러 갔다. 꽤 많은 책을 읽었구나, 라는 생각으로 한 권씩 살펴보던 중 '정기구독 서비스'에 대해 정리된 신문 한 면이 눈에 띄었다. 2013년 가을에 발행된 것으로 창업한 서비스가 언급되어 있었다.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 아버지가 전해준 것이었다. 취업이 아닌 창업을 선택한 것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누구보다 응원하던 그때의 마음을 오랜만에 다시 확인한 순간이기도 했다. 


책에는 창업 과정에 도움이 될 내 생각과 참고 내용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이미 노트북으로 옮겨 놓은 내용이라 이후로 펼쳐보지 않았던 것으로, 그런 책들이 많이 있었다. 이런 생각을 했었네, 이 책은 읽다가 말았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책을 읽었던 순간의 일들이 함께 펼쳐졌다. 그런 경험은 보통 사진을 보며 많이 했었는데, 오래된 내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대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오히려 더 진하게 다가왔다.






가장 최근에 떠난 가족여행, 제주 2020년 11월






잠깐 사이에 가늠할 수 없는 감정이 연달아 몰려왔다. 적어놓은 내용에 웃기도 하고, 가족의 흔적이 짙게 남은 공간에 머물며 뭉클해지기도 하고, 한껏 그리워지기도 했다. 매일의 오늘에 매일의 지난날을 보는 건 어렵지만, 한 번씩 지난날의 나를 만나는 것도 제법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살면서, 지난날의 나를 만나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날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홀로 있었던 나를 만나는 때도 많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었던 나를 만날 기회가 된다는 사실도. 






내게 그 누군가는 가족이 많았고,
그게 나와의 만남을 더 기대하게 되는
연결고리가 된다는 것을 알았던 날






오래전 나를 만난다는 건, 평범하지 않은 날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함께 확인하기 위한 일이기에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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