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EGU Mar 12. 2016

1박 2일 속초,강릉 먹거리 여행

겨울은 역시 먹는 게 짱이지.

나는 겨울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추위에 약하고 추위를 많이 타며 무엇보다 추운 게 너무 싫다!

추우면 당연히 집 밖에 나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추울 때는 전기장판 위 이불 안에서 귤이나 까먹으며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게으름을 부리고 싶다. 겨울은 내게 게으름의 계절이다.


그런 내가, 국내 여행지 중 유일하게 겨울에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속초와 강릉이다.

하얗게 부서지는 거대한 코발트블루빛 겨울 바다를 보며 마시는 커피는 말할 것도 없고 추위를 참으며 불어먹는 대포항의 새우튀김이나 속초, 강릉 시장의 감자전이 나를 이불속에서 나오게 한다. 


올 겨울도 이런 위장의 재미를 놓칠 수 없어 겨울의 끝 무렵 주말에 속초와 강릉을 다녀왔다.


1. 마음까지 뭉글뭉글해지는 순두부 <김영애 순두부>


 거하게 술을 마신 뒤 다음날에는 역시 해장국이라지만 나는 순두부가 생각난다. 이름까지 순한 순두부를 먹고 있노라면 위장은 물론이거니와 술자리에서 상처받은 마음까지 뭉글해진다. 

 좀처럼 서울에서는 혀로만 으깨 먹는 고소한 순두부의 맛을 찾기가 힘든데, 한참을 운전하고 이제 막 여행이 힘들어질 때쯤 작년 겨울에 들렀던 속초 초입 길의 <김영애 순두부>가 생각났다. 역시 강원도에 놀러 왔으면 순두부지! 하면서 여행 첫 점심을 순두부로 정했다. 

메뉴는 순두부-8,000원이 전부이다.

문 밖부터 고소한 콩 내음이 가득하다. 자리를 잡고 앉아 사람 명 수를 말하면 된다. 메뉴는 '국산콩 순두부' 하나이기 때문이다. 곧, 순두부만큼이나 하얀 그릇에 소박한 점심을 내온다. 


밥과 순두부, 양념장, 오이 반찬, 미역줄기, 꽈리고추, 김치, 도라지 무침 그리고 이 집의 숨겨진 보석 콩비지 찌개가 밥상 위에 차려졌다. 


양념장을 넣어 후루룩 먹으면 고소함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맛있겠다, 말을 나눌 틈도 없이 순두부 한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마치 강원도 산줄기에 가득한 눈처럼 스르륵 사라진다. 보드랍고 뜨듯한 입안의 감촉을 대신해서 진한 콩 내음이 잔뜩 퍼진다. 두어 번 입 안에 순두부를 넣고 나서야 대화를 나눈다.

"강원도 오길 잘했다."


 이제 양념장을 약간 풀어 넣고 후루룩 순두부를 마셔본다. 고소한 참기름 맛이 진하게 느껴지는 오이 무침도 먹어본다. 아삭 거리는 식감이 자칫 느끼할 수 있는 순두부의 끝 맛을 딱 잡아준다. 고슬고슬 잘 익은 흰 밥도 한 숟가락 먹어본다. 절로 넘어간다.


 서울 살이 속 평일은 늘 자극적인 음식만 먹기 마련이다. 때문에 깊은 콩의 고소함 외에는 별다른 강한 맛이 느껴지지 않는 강원도의 순두부는 위장에 여행의 시작을 알리기 적합했다. 아, 도시와 멀어졌구나. 그제야 깨닫는 것이다.


물론 순두부도 일품이지만 이 집의 숨겨진 보석은 가운데 위치한 '비지찌개'라고 생각한다. 

나는 유년기를 강원도에서 보냈다. 순두부 마을이 곳곳에 위치한 이 곳에서 내 생에 첫 비지찌개를 맛보았단 말이다. 그리고 서울에 와서 김X천국과 분식집 등에서 맛본 비지찌개는 충격적이었다. 내가 아는 맛이 아니었다. 

내 혀가 기억하는 맛은 <김영애 순두부>의 비지찌개이다. 콩이 낼 수 있는 고소함의 끝. 멸치 육수로만 맛을 냈다는 데, 심각한 밥도둑이다. 늘 이 곳에 오면 밥이 부족하다. 짭짤한 이 비지찌개가 진정 밥도둑이기 때문이다.

아, 또 먹고 싶다.


2. 대포항의 새우튀김


 강원도 분이신 외할머니께서는 매번 강원도에 올 때마다 새우튀김을 먹는 나에게 ' 왜 그런 걸 먹니... 좋은 걸 나 두고.' 라며 인상을 찡그리신다. 그러나 조용한 대포항의 새우튀김은 정말 포기할 수가 없는데, 늘어선 튀김 집의 할머니가 다시금 튀겨주는 뜨거운 튀김의 맛과 대포항의 쓸쓸한 바다는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왕 새우와 알배기 새우, 게, 도루묵이 골고루 들어있다.

그 날도 어김없이 대포항에 들러 튀김을 한 봉지 샀다. 왕새우 5마리에 만원이라던 튀김 할머니는 왕새우에 알 배기 새우, 게 튀김 두어 개, 도루묵까지 얹어 주신다. "아유, 이렇게 많이 못 먹어요...(닭강정 먹어야 되거든요..)"라고 말렸지만 소용없다. 이미 바글바글 끓고 있는 기름 웅덩이에 튀김이 빠진 오래였으니까. 

일렬로 줄 선 튀김 가게들은 모두 키친 타올을 두어 장 깔고 노란색 비닐봉지에 튀김을 담아 준다. 갓 튀긴 새우튀김은 정말 참기 힘들다. 분명 숙소에 돌아가서 맥주와 함께 먹자고 했는데 이미 두 마리를 게 눈 감추듯 먹고 말았다.


조용하고 한적한 대포항. 대포항에서 회를 사는 편이 싸다고 하는 데 안 사봐서 잘 모르겠다.
파도가 엄청났던 영금정

덧붙여서, 아 시원하고 탁 트인 바다가 보고 싶다면 영금정에 가야 한다. 정자 위까지 잡아먹을 듯 솟구치는 하얀 파도가 장관이기 때문이다. 

시원하게 몰아치는 파도가 스트레스를 아침에 공들여 만 내 앞머리와 함께 화끈하게 날려 버렸다.


3. 속초 시장의 감자전과 닭강정


 여행지에 왔으면 으레 먹어줘야만 하는 먹거리 리스트들이 있다. 나는 여행 가서 그 먹거리 리스트를 대부분 지키는 편이다. 모두가 먹는 거니까 이유가 있겠지- 하는 속 편한 논리 때문이다. 

 속초는 아무래도 '닭강정'이다. 명성에 걸맞게 속초 시장에 진입하기 전부터 하얀 닭강정 박스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단호박 식혜와 부꾸미를 한참 지나치면 닭강정 무리들을 발견할 수 있다. 좁은 시장 골목에 옹기종기 닭강정을 사고자 관광객들이 몰려있다. 


그 유명한 만석 닭강정의 고운 빛깔.


유명한 곳은 만석과 중앙 닭강정이랬다. 중앙은 뼈가 없는 닭강정이라 해서 끌렸지만 원조는 만석이라기에 그래도 원조지! 하며 만석을 골랐다. 

닭강정은 식은 다음 먹어야 맛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튀김과 달콤한 냄새의 콜라보를 이루는 닭강정 골목의 가게는 커다란 대형 선풍기가 방금 나온 닭강정을 식히고 있다.

 

숙소 와서 개봉한 닭강정의 맛은... 올 꽤? 였다. 배가 부른 상태였음에도 계속 손이 갔다. 적당히 매콤했고 적당히 달달했다. 끝 맛은 인위적은 단 맛이 아니라 과일의 단 맛이 났다. 속초에 놀러 갔고 '나는 나만의 길을 간다.'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면 추천해주고 싶다. 한 번쯤이라면.


자, 이제 나름 내 마음의 고향은 강원도야! 하는 사람으로 속초 시장의 먹거리를 꼽으라면 단언컨대, 감자전을 말하겠다.


큼직한 감자전. 4,000원

속초 시장 골목을 누비다 보면 좌판에 옹기종기 앉아 동동주 잔을 부딪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추운 겨울에도 뜨거운 불판 앞에 앉아 동동주 잔을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얼굴은 발갛게 달아오르고 몸은 후끈해진다. 


자리에 앉아 감자전 하나요, 아주머니에게 부탁한 뒤 한쪽 끝에 마련된 동동주 옹기에서 바가지를 꺼내 잔에 가득 채워 넣는다. 한 잔에 천 원인데 흘리면 이천 원이야- 아주머니가 감자를 갈며 농담을 던지신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들이 까르르 웃는다. 


"자, 이제 먹어요!"

아주머니께서 고함치듯 말씀하시면 불판 위의 감자전을 그냥 찢어먹는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뜨겁게 먹을 수 있다. 감자전은 식으면 맛이 없다. 식은 감자전은 그냥 뭉친 덩어리이다. 반드시 불판에 옹기종기 모여 동동주를 마시며 먹어야 제 맛이다. 


유년기에는 강릉 중앙 시장 골목 근처에 살았다. 골목을 누비면서 이것저것 얻어먹고 다녔다. 마루에서 배를 까놓고 선풍기 바람에 선 잠이라도 들면 할머니께서 시장 친구가 부친 감자전을 가져오셨다. 쫀득쫀득 거리는 식감에 살짝 탄 부분은 바삭했다. 여름에도 땀을 삐질거리며 김이 올라오는 비닐봉지 속 감자전을 호호 불어가며 살얼음이 떠있는 식혜와 먹었다. 

그런데, 강릉 중앙 시장의 이 감자전, 메밀부침개 골목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치 오래된 고향집이 무너진 것처럼 슬펐는데 이번 강원도 여행에서 다행히 다른 시장의 감자전을 맛볼 수 있었다. 구수한 강원도 사투리가 오가며 붉어진 얼굴들로 깔깔거린다. 내가 사랑하는 강원도의 맛이다.


4. 새콤하고 상쾌한 물회 그대로의 맛, 청초수물회


 가끔 여름의 공기가 답답할 때면, 물회가 생각난다. 특히 꼬들 거리고 고소한 식감일 일품인 오징어 물회가. 여름에 강릉시장 지하의 수산시장에서 먹은 오징어 물회도 맛있었고, 소돌 해변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거의 마셔버린 살얼음 가득한 물회도 맛있었다. 내가 물회를 먹은 기억은 죄다 여름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장까지 추운 겨울에는 물회 생각이 날 리가 없다. 그러나 강원도 여행 글을 읽어보다가 청초수물회의 물회 한 그릇에 대한 사진을 본 뒤 영하의 날씨에도 기어코 청초수물회를 찾아갔다.


 

해삼,전복물회와 성게알 비빔밥

 

예쁘고 좋은 건 한번 더.

듬직하고 위풍당당하게 담겨온 해물, 전복 물회와 성게알 비빔밥은 푸짐했다. 꼬들 거리는 전복과 해삼의 맛이 좋았으며 어떠한 국자에도 딸려 들어오는 회들이 좋았다.  닭강정 때문에 회를 포기했는데, 이 물회가 대신 회의 허전함을 채워주었다. (나는 바닷가 마을에 오면 회를 먹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린다.)  

성게알 비빔밥은 그저 그랬는데, 성게알 철도 아닌 데다가 참기름 맛이 성게알을 다 잡아먹었다. 

그러나 물회는 정직한 물회 그대로의 맛이었으며, 양도 많아서 다음에도 한번 들러볼 만한 곳이다.


5. 깔끔하고 정갈한 한정식의 맛, 서지초가뜰


 종가댁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서지초가뜰'. 블로그 글에서 이 서지초가뜰을 본 순간, 강원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 리스트에 올랐다. 나는 정갈하고 깔끔한 맛의 한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늘 그 지역의 한정식 맛집을 찾아다니곤 한다. 

한참 비포장의 구불구불한 산 길을 따라 가면, 산을 담장으로 한 기와집이 보이는데, 바로 그곳이 서지초가뜰이다. 

질상


삐걱대는 초가집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따뜻한 열기가 올라오는 온돌 바닥에 앉아 조용히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기다란 상을 가득 채우는 서지초가뜰의 밥상은 이것저것 집어먹기 너무나도 바빴다. 찬들은 모두 정갈하고 소박한 맛이어서 위장을 부드럽게 채워주었다. 특히 직접 만든 된장에 싸 먹는 쌈밥이 맛있었다. 깊게 우려낸 닭도, 소박한 나물들도 그리고 씨종지떡도 모두 모두 맛이 좋았다.


못밥은 모내기 때 일하던 일꾼들과 식구들이 먹던 밥이라는데, 우리는 이 못밥에 육고기가 포함된다는 질상을 주문했다. (고기 사랑해.) 

잔뜩 배부르게 먹고 나와, 한가롭게 걸으면서 한옥과 그 주변의 대나무를 감상했다. 기와에 주렁주렁 달린 고드름이 똑똑 쏟아내는 방울들을 한참이고 들여다보았다. 서울로 떠나기 아쉬워서였다.


서지초가뜰에서 산책을 마치고 나와 테라로사에 들려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여 서울로 향했다.

군고구마 맛이 나던 커피를 홀짝이며 노을 지는 일요일에 서울로 향하는 차 안은 조용했다. 만족스러운 여행 뒤에는 대화가 없다. 나는 차 안에서 눈 덮인 산을 바라보며 맛을 곱씹었다.



-

속초, 강릉 1박 2일 여행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