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결
사랑스러운 두 친구가 한국에서부터 여기 바다 넘어 내게 찾아와 주었다. 한 친구는 수줍게 책 한 권을 내밀었다.
"한국 책 읽고 싶어 할 것 같아서. 이거 읽는 내내 네 생각이 많이 났어."
여행 기간 중 생일을 맞이한 친구가 나를 보러 와 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되려 내 선물을 사 온 것이 내심 미안하기도 하고 또 배로 고마웠다. 다른 한 친구는 플랜트 행거를 사 왔는데 겉 포장에 마른 나뭇잎 두 개가 살포시 붙여져 있었다. 조금만 세게 건드려도 파삭 거리는 이 마른 잎이 혹여나 부서지진 않을까 조심조심 먼 길을 들고 왔을 친구를 생각하니 그 모습이 귀여워 피식 웃음이 났다.
책은 역시나 내 취향에 꼭 맞았고 읽는 구절마다 곱씹고 싶은, 사각거리는 연필로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수두룩했다. 플랜트 행거는 한국에서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 내가 가진 3개 중 가장 작은 사이즈 하나가 사라져 몇 번을 뒤지고 뒤졌으나 찾지 못했던 그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어쩜 내 친구들은 내가 원했던 것을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건네는 선물들이 참 신기하기도 하고, 또 늘 받기만 하는 내가 부끄러워질 만큼 반성하게 하는 이 친구들의 능력이 멋있어 보여 괜히 뿌듯하기도 했다.
친구들과 며칠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다녀왔고 우리는 함께 나의 집에 며칠 더 머물렀다. 그리고 남편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다양한 가치가 삶에 적절히 밸런스가 맞을 때 행복과 힘을 얻는 것 같아. 오늘 오랜만에 채워진 부분에 행복함을 느껴. 나도 이렇게 좋은데 너는 얼마나 좋을까? 네가 얼마 전 결이 같은 친구가 이곳에 없는 게 너무 힘들다고 했던 말, 이제야 이해가 됐어."
짧은 며칠이 지났고, 친구들은 다시 한국에 돌아갔으며, 마치 잠깐 꿈을 꾼 듯 나는 금세 현실의 삶에 익숙해졌다. 그래도 그들이 남기고 간 물건들과 몇 장의 사진들을 보며 그게 꿈이 아니었음을 되새겨 본다. 떨어져 있든, 무엇을 하든, 오래오래 마주할 수 없다 한들, 그래도 결이 같은 이들과 함께 소박하게 나이 들어갈 수 있음은 팍팍한 삶에 큰 위로가 된곤 한다.
삶의 위로가 되는 친구라는 존재, 그것도 내 취향의 친구들.
늘 표현이 서툰 나여서 있을 때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이 글을 대신해 전해본다.
서로의 '친구'가 된 것에 감사하고, 불완전한 우리가 모여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음에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음에 행복하고, 지금처럼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