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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승은 Dec 25. 2022

그중에 그대를 만나

포켓몬빵

이날 이때까지 아파트만 사고팔아봤지 토지에 대해서는 무지렁이인 우리. 부동산 사장님 따라다니면서 설명을 듣는데 듣고 들어도 뭐가 뭔지 계속 리셋되는 용어들. 계획 관리 지역, 농림지역, 준공업지역, 일반 공업지역... 등등. 들어도 들어도 새로운 단어들, 우리 학생들도 이런 느낌일까. 말만 우리말이지 하나도 모르는 내용이었다. 단순히 소나무 심을 땅을 찾다가 이리 깊숙이 들어올 줄이야. 한번 임장을 다녀오면 학교 가서 수업하고 온 아이들처럼 피곤해서 먹고 잤다.  


성환 지역은 이미 개발 호재로 이리저리 소문이 나서 매물이 쏙 들어간 상태라고 했다. 나와있는 매물은 평수가 다 커서 금액들이 50억 막 이랬다. 50억이라... 내가 웃겨서 웃는 게 아닐세. 이렇게 땅부자들이 많구나. 부동산이라는 게 알면 알수록 멘탈을 잡아야지 그러지 않으면 상대적인 박탈감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그렇게 저렇게 부동산 사장님과 몇 차례 돌아다니다가 종축장이 길 건너 보이는 밭을 하나 보게 되었는데 크기도 괜찮고 맘에 들었다. 차씨 문중의 땅인데 이 땅을 나눠서 한쪽을 매물로 내놓은 거다. 와. 바로 이거구나. 처음 사보는 땅이지만 순식간에 머릿속으로 이렇게 농막을 놓고 이렇게 수도를 끌어다가 그놈의 소나무를 심고 친구들을 불러서 고기를 굽는 그림이 그려졌다. 왜 아들이 마인크래프트를 하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기분도 좋아지고 흥이 났다. 남편은  그 땅을 보자마자 이미 우리 땅이라고 김칫국부터 드링킹하시고 부동산 사장님에게 당장이라도 계약할 듯이 약속을 잡자고 했다. 



원래 모든 관계에 밀당이라는 게 있다. 남녀관계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이해관계가 엮여 있으면 더욱 그러하다. 학생이 처음 수업을 하러 엄마 손에 끌려오면 선생과 학생 사이에 신뢰관계가 형성될 때까지 (그런 걸 라포 Rapport라고 하더니만) 묘한 신경전이 계속된다. 어떤 경우는 아이를 확 세게 잡아서 끌고 가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아이는 천천히 관계를 만들고 스물스물 끌고 들어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런 밀당을 모르는 이 분은 본인의 감정을 투명하게 다 보여주고 나 너 좋아해, 너 나 좋아해? 이런 식으로 너무 덥석 물어버렸다. 그때 한발 물러나서 보고 있던 나는 알아버렸다. 이 땅, 우리에게 올 물건이 아니구나. 



문중에서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의견이라고 다시 매물을 걷어드리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 사이에 투명한 내 님은 벌써 농막 가격도 알아보고 농막 스펙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고 나는 종이에 사인해야 비로소 내 땅이지 그때까지는 들뜨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다시 원점. 허탈했다. 남편의 들뜬 마음을 워워했지만 솔직히 나 역시 들떠 있었나 보다. 좋아한다고 고백했는데 집에 가서 엄마한테 물어보고 오겠다던 남자애가 "엄마가 안된대."라는 문자를 보낸 거다. 기분이 더러웠다.   

   


한동안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차인 기분을 달래며. 농림지역인데 차라리 잘 됐어. 거기다가는 건물도 못 지어. 종축장이랑 너무 멀어, 우리랑은 인연이 아닌 거야. 그렇게 단점을 나열하며 마음에서 지우개로 박박 지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뜬금없는 타이밍에  전화를 받았다. 


(어찌저찌 중략하고)



그런데 이번에는 또 엉뚱한 일이 생겼다. 우린 계속해서 땅을 찾아 헤맸는데 길 잃은 집이 우리에게 왔다. 이 집의 지번을 문자로 받고 구글맵으로 찾아 보면서 일단 이 스푸키한 집을  부수고 깨끗하게 대지로 만들어서 나무를 심는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물론 철거비가 들겠지만 농림지역이 아니고 계획관리지역이고 전이 아니고 대지라고 하니 갑자기 나를 찬 썸남이 후져 보이고 하늘의 뜻으로 업그레이드된 남친을 만나게 된 느낌이랄까. 좋다. 좋아. 그간 나의 고통은 너를 만나기 위함이었어. 우리는 이렇게 운명적으로 만났다. 내 상처를 알아주고 아껴주고 사랑해 줄 수 있는 그런 너. 



땅이 필요했으니깐 집안에는 들어가 보지도 않고 쿨하게 계약을 했다. 마당을 돌아보며 "어차피 집은 철거할 거예요." 이 말을 몇 차례 했던 거 같다. 그래 어차피 집은 철거하고 깔끔한 농막을 놓을 생각이었으니깐. 집을 볼 필요가 없었다. 땅을 샀는데 갑자기 집이 따라온 셈이었다. 포켓몬빵을 샀는데 띠부씰이 따라 온 것처럼. 


띠부씰은 그냥 버릴 생각이었다.  



포켓몬빵 안에 뮤 띠부씰이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AyMtl9FRHI

사실 별로 좋아하는 노래는 아니지만. 

그중에 그대를 만나서 

행복하노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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