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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박찬선 Nov 21. 2017

생각하는 삶

화단을 정리하며

화단을 정리하며     


 어제는 다 시들어버린 화단을 정리했다. 두세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지만 화단은 봄부터 불을 뿜는다. 빨간 튤립으로 시작된 봄은 붉은빛 연산홍과 노란 수선화로 이어지고, 하얗고 노란 백합은 연분홍빛 백일홍과 보랏빛 도라지꽃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수줍게 웃음 짓던 채송화는 노란 금잔화에게 그리고 나비들의 날갯짓에 꽃을 피운 노란 국화는 마침내 하늘 가득 풍성한 한해를 장식했다.     


봄부터 초겨울까지 뜨겁게 타오르던 불이 마침내 꺼지고 까맣게 타버린 화단은 고요함과 침묵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울긋불긋 색의 향연도 끝이 나고 손 시린 바람만 거친 숨을 몰아쉰다.     

이빨 빠진 낫을 들고 서리 발에 데쳐진 국화의 몸뚱이를 베어내기 시작했다. 말라 비뚤어진 이파리들이 연신 소리를 지르며 떨어진다.      

“사그락 사그락 빠사삭 빠사삭.....”     

무서운 기세로 휘둘렀던 낫질을 잠시 멈추었다. 은은한 국화향이 온 화단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화가이자 판화가인 조르주 루오의 판화 중에 “의인은 향나무 같아서 치는 도끼에 향기를 묻힌다.”는 작품이 있다. 요즘은 이 작품의 이름이 “향나무는 자신을 찍는 도끼날에 향을 묻힌다.”로 불린다.


“향나무는 자신을 찍는 도끼날에 향을 묻힌다.”     


정말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명언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가장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할 사람들에게서 온몸과 마음이 흔들리는 상처를 받을 때가 있다.   이럴 때 우린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누구의 도끼날이 더 센지 어디 한번 시험해볼까?”하는 마음으로 똑 같이 상대방의 마음을 찍어댈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받은 상처를 보듬고 가슴앓이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따뜻한 반응은 내가 가지고 있는 좋은 것으로 상대방을 감싸고 내 안에 있는 좋은 향기를 상대에게 불어주는 것일 것이다. 사람들은 향기를 좋아한다.       

몸뚱이가 잘린 국화는 땅속에서 뿌리를 돌보며 차가운 겨울을 보내게 될 것이다. 자신을 찍어낸 낫을 용서하며 상처 난 몸에 부스럼을 만들어 새로운 싹을 틔울 준비를 하리라. 그리고 봄이 되었을 때 얼어붙은 땅을 녹이고 따스한 봄기운을 입에 물고 힘차게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어 갈 것이다.        


국화는 나에게 그렇게 은은한 향을 뿜어 주고 있었다. 자신의 몸뚱이를 자르는 낫에도 진한 향을 묻히며 온 화단을 덮고 있는 것이다. 우리 마음이 국화를 닮아갈 때 우리를 찍어 상처를 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더 진한 향기로 보답할 수 있을 것이다.


오동나무는 잘린 몸통으로 더 깊은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매화는 북풍한설 친구 삼아 더 진한 향기를 풍기며, 국화는 몸뚱이가 다 잘려 나가도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향나무는 자신을 찍는 도끼날에 향을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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