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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형주 David Lee Jun 07. 2019

일본의 장수하는 중소기업들은 어떻게 전시회를 활용할까?

고다와리(こだわり)와 카이젠(改善) 문화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다. 

What should they know of England who only England know?
(영국밖에 모르는 사람이 영국의 무엇을 알고 있단 말이냐?)

짐 로저스의 '세계에서 가장 자극적인 나라'를 보면 위와 같은 글이 나온다. 영국을 벗어나 다른 나라에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영국에 대해 훨씬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비단 나라뿐 아니라 다른 곳에도 적용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중소기업들, 그중에서도 전시회를 통해 해외 시장을 개척하려고 하는 기업들은 다른 나라의 기업들이 어떻게 전시 마케팅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훨씬 더 우리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와 가장 가까운, 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일본의 장수하는 중소기업들이 어떻게 전시회를 마케팅에 적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면 우리 기업의 현실을 파악하고 시장을 공략하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일본의 장수하는 중소기업들은 어떻게 전시회를 활용하고 있을까?  


고다와리(こだわり)와 카이젠(改善) 문화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다. 


일본 중소기업의 기업 문화를 두 단어로 말하자면 고다와리(こだわり)와 카이젠(改善)이라고 할 수 있다. '고다와리(こだわり)'는 '~에 까다롭다. ~에 집착하다'라는 뜻인데, 한 분야에 까다롭게 얽매여 일말의 타협도 용납하지 않고 몰두하는 고다와리 경영이 일본 중소기업의 문화를 잘 표현한다. 이것은 소위 '장인정신'이라고 하는 말과 일맥상통함으로써, 일본 제품 하면 떠오르는 '쉽게 고장 나지 않고, 품질만큼은 세계 최고'라고 하는 그 무엇이 바로 고다와리 경영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다와리와 함께 일본만의 기업문화로 생각되는 두 번째 단어가 개선 능력을 뜻하는 '카이젠(改善)'이다. 얼핏 보면 고다와리와 카이젠은 상반된다. 고다와리는 한 분야를 고집스럽게 밀고 나간다는 뜻이고, 카이젠은 기존 것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특하게도 일본의 장수하는 중소기업들은 이 상반되는 두 개념을 절묘하게 결합함으로써 세계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마케팅 수단으로 전시회가 있었다.


1. 노사쿠: 파리 메종 오브제를 통한 해외 진출에 성공하다.  


노사쿠(能作)는 1916년 창업한 이래 전통적인 주조기술로 구리 및 황동 주물을 하청 생산해 도매상에 판매하던 작은 주물공장이었다. 창업 초기에는 꽃병, 다기 등을 만들어 팔았으나 주물공장의 힘든 작업 때문에 3D업종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다가 금속의 소재 특성에 집중해 놋쇠로 만든 풍경이나 순도 99.9%의 주석으로 만든 구부러지는 주방용품 브랜드 '카고(KAGO)'를 통해 명실상부 인기 브랜드를 소유한 주물 회사로 인정받게 되었다.  

노사쿠는 소재가 지닌 본래의 특성에 집중해 브랜드 제품을 개발했다. 놋쇠로 만든 풍경(좌)과 주석으로 만든 구부러지는 그릇(우)

노사쿠는 일본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2010년 국제 인테리어 전시회인 파리 메종 오브제(Maison et Objet)에 참가했다. 하지만 반응은 차가웠다. 카고로 관심을 끌기는 했지만 매출로 이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일본에서 판매하던 제품을 그대로 들고 간 것이 문제였다. 이후 노사쿠는 자사의 기술력에 더해 프랑스의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하여 프랑스 현지화에 집중한 디자인 제품을 개발하였다. 다시 전시회에 현지화된 제품으로 참가하자 프랑스의 호텔 및 레스토랑 등에 납품하며 해외 진출에 성공했다. 본래의 기술과 새로운 현지 디자인의 결합으로 전시회를 참가하여 현지 공략에 성공한 케이스이다. 

노사쿠는 본래의 기술력과 현지화된 디자인으로 메종 오브제를 통해 해외 진출에 성공했다.


2. 우루시 사카모토: 메세 프랑크푸르트에서 디자인 플러스 상을 수상하다.


한국에 나전칠기가 있듯이, 일본도 옻칠 공예와 관련된 다양한 기술에서 일본인들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전통문화가 어떻게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면 일본 전통 공예 전문 기업 '우루시사카모토(坂本乙造商店)' 를 주목하자. 전통 공예 기업의 고민은 모두 비슷하다. 더 이상 현세대에서는 관심을 받기 힘들다는 점이다. 우루시사카모토 역시 그릇 등의 공예품 위주로 사업을 벌이다가 1970년 이후 급속하게 쇠락했는데, 세계 유수 기업들과 협력하면서 전통 공예 세계에 갇혀 쇠퇴하던 옻칠 기술을 현대적으로 되살려냈다. 고급 만년필 세트, SLR 카메라와 한정판 시계 모델, 고급 헤드폰 등 지금까지 500점 이상의 협업 제품을 만들어오고 있다. 이에 자신을 얻은 우루시사카모토는 1989년 메세 프랑크푸르트의 ambiente 전시회를 통해 디자인 플러스 상을 수상하고,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영구 전시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렇게 전통 공예 기술을 인정받으면서 해외에서 옻칠 가공에 관심이 있다며 회사를 방문하는 횟수가 늘어나게 된다. 지금은 자동차 실내공간, 항공기 퍼스트 클래스 좌석 등의 도장 작업에도 참여한다. 전통 공예 기술의 현대적 해석으로 명품 브랜드의 가치를 높인 전략이 전시회를 통해 인정받은 경우이다. 

카메라, 만년필 등 명품 브랜드에 우루시사카모토의 옻칠기술이 덧입혀져 메세 프랑크푸르트에서 디자인 플러스 상을 수상했다. 


3. 유키정밀: 파리 에어쇼를 통해 공중전화 부품 회사에서 항공우주 기업으로 변신하다.  


유키정밀(由紀精密)은 1951년 창업한, 대기업에서 공중전화 부품을 주문받아 하청 생산을 하던 작은 부품 공장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공중전화 산업이 쇠퇴하면서 유키정밀은 위기를 맞게 된다. 이후 자사의 강점이 제품 완성도가 높고 불량률이 낮아 품질면에서 우수하다는 점에 있음을 고객들의 평가로 알게 된다. 결국 유키정밀은 사업 방향을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항공 우주 분야로 방향을 전환한다. 

유키정밀은 항공우주 분야로의 진출을 결정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전시회에 참가한 것이었다. 2008년 파리 항공우주쇼에 참가하여 회사의 기술을 공개하자 부스를 찾은 바이어가 전시된 정밀 부품을 보고 '이런 항공부품을 만들 수 있냐'라고 문의해 온 것이다. 이것이 유키정밀이 항공우주 분야로 첫 발을 내딛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후 불과 1년 만에 JISQ9100(항공우주 품질경영시스템)을 취득하고 관련 분야 전시회를 통해 사업을 확장하게 된다. 사업 타당성을 고민하기보다 일단 전시회에서 기술을 선보이고 관련 업계 사람들의 반응을 파악한 것이 적중한 것이다. 

정밀부품 제조의 강점을 살려 항공우주 기업으로 전환한 유키정밀, 파리 에어쇼를 통해 시장 개척에 성공했다.


일본 기업이 전시회를 활용하는 방법


위에서 설명한 3가지 사례 이외에도 일본 중소기업들의 전시회를 통한 해외시장 진출 사례는 다양하다. 비록 제품이나 기술은 저마다 다르지만, 일본 기업들이 전시회를 활용하는 방식은 몇 가지 패턴을 보인다.

첫째, 전시회에 단순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회의 어워드 프로그램을 통해 자사의 기술력과 브랜드를 널리 알린다. 전시회에서 수상한 기업은 언론과 바이어에게 우선적으로 노출되기 때문에 해외 시장 공략에 큰 도움이 된다. 파리 메종 오브제나 독일 ambiente와 같은 소비재 전시회에서 특히 이런 어워드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좋다.  

둘째, 지속적으로 전시회에 참가하여 바이어들의 신뢰와 호감을 산다. 일본 기업들은 비록 예산이 부족하여 부스 크기가 작더라도 한 전시회에 꾸준히 참가하여 바이어들에게 지속적으로 노출되도록 한다. 독일의 Euro Shop과 같은 초대형 유통 전시회의 경우에도 아예 일본 국가관이 지속적으로 참가하여 일본 기업의 유럽 시장 진출을 돕고 있다. 

셋째, 산업전시회뿐 아니라 직접 기업 전시회를 개최하거나 또는 미술 전시회를 통해서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축한다. 제품 디자인에 강점이 있는 기업들은 산업전시회뿐 아니라 백화점이나 미술관에서 직접 전시회를 개최하며 현장 판매를 한다. 비록 산업전시회처럼 크지는 않지만 이렇게 작은 전시회를 계속 개최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품이 노출되고 더불어 기업의 긍정적인 이미지도 얻게 된다. 적극적으로 판매 채널을 확대하기 위하여 전시회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제 한국 기업들의 사례를 찾아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껏 기업들이 어떻게 전시회를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어쩌면 이 또한 나의 몫이라 생각하고, 여기의 사례를 참고 삼아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전시회를 통해 전 세계로 더욱 활발히 진출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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