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형주 David Lee Sep 16. 2019

한국의 강소기업들은 어떻게 전시회를 활용하는가?

글로벌 마케팅에 성공한 한국 히든챔피언들의 5가지 전시회 활용 사례

최근 세계 경제 흐름은 한마디로 '각자도생'이다. 미-중 무역 전쟁, 석유 패권을 노리는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일본의 한국 화이트 리스트 배제 등 일련의 이슈들을 보자. 전 세계는 자유무역체제가 조금씩 흔들리고 각자 알아서 생존해야 하는 형국으로 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에 대한 대응을 준비하는 듯하다. 지난주 정부가 발표한 '수출시장구조 혁신 방안(2019.9.11)'에 따르면 정부는 미국-중국-일본-EU 등 기존 '주력 시장'에 대한 수출 비중을 2022년까지 13.4% 포인트 줄이는 대신 동남아-중앙아시아-중남미-아프리카 등에 대한 수출 비중을 1.5배 높여 전체 수출을 늘리겠다고 했다. 과도하게 집중되고 의존적인 선진국 시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신남방 및 신북방 정책을 펼치겠다는 의도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실행 방안으로 '한류(韓流)를 활용한 브랜드 마케팅 강화'와 '현지 전시회 참여 지원' 등이 담겨 있다. 

정부의 새로운 수출 확대 방안에 전시회 참여 지원 내용이 곳곳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과거처럼 전시회 지원이 또다시 단기 성과 창출 위주의 '상담액, 계약액 달성 현황' 같은 보여주기 식으로 진행된다면 장기적 관점에서의 수출전략과는 멀어지게 될 것이 뻔하다. 개별 기업들의 생존력이 절실해지는 지금, 작지만 강한 한국의 강소기업들이 해외 시장 진출 목적에 따라 어떻게 전시회를 활용하는지 5가지를 사례를 뽑아봤다. 글로벌 마케팅에 성공한 한국의 히든 챔피언들은 어떻게 전시회를 활용했을까? 


해외 시장 진출 목적에 따른 한국 강소기업들의 5가지 전시회 활용 사례 


1. 잠재고객을 발굴하라

#오로라 월드 : 독일 뉴렌버그 완구 전시회에서 바이어가 '팔 수 있는 물건'을 보여주다. 

지금 5세 이하 유아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를 고르라고 한다면 단연코 '핑크퐁'이다. 핑크퐁이 만든 '상어송'은 심지어 빌보드 차트 32위에 올라가기도 했다. 이 핑크퐁의 캐릭터 인형을 만드는 회사가 국내 굴지의 완구 기업인 오로라 월드이다. 오로라 월드는 1981년 설립된 오로라무역상사를 전신으로 1999년 법인명을 변경, 약 30여 년간 캐릭터 완구 생산 및 라이센싱, 콘텐츠 제작 등으로 확장 중인 토종 기업이다. 토종기업이라지만 국내보다 해외에서 활약이 두드러진 글로벌 기업인데, '유후와 친구들'이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이다. 

오로라 월드는 해외에서 판매를 책임질 유능한 판매 대리인(Wholesaler)을 발굴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매년 미국 및 유럽 주요 전시회에 참가하는데, 특히 독일 뉴렌버그(Nurenberg) 완구 전시회에는 20년 전부터 참가하여 현지 바이어-Wholesaler에게 지속적으로 '팔 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오로라 월드는 전시회에 온 바이어에게 '우리 부스에 오면 늘 가져갈 게 있다'라고 인식되게 만듦으로써 해외 시장 공략에 전시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오로라월드 : 뉴렌버그 완구 전시회에서 바이어가 '팔 수 있는 물건'을 꾸준히 보여주다.

2. 제품에 대한 고객 반응을 조사하라

#선일금고 : 신제품 판매 및 브랜드 마케팅의 전략을 수립하다. 

1972년 창립된 선일금고는 사무용, 가정용 내화금고를 제작하여 판매하는 금고제작회사다. 이 회사의 금고는 '이글 세이프'와 '루셀'이라는 브랜드를 갖고 있다. 특히 가정용 인테리어 금고인 '루셀'은  금고를 '내 인생의 보석상자'라는 콘셉트로 바꿔 금고에 대한 이미지를 값비싼 보석이나 돈뿐만 아니라 일기나 사진 등 개인의 소품까지 보관할 수 있는 것으로 재 포지셔닝하였다. 최근에는 와이파이와 연동되는 스마트 루셀 금고를 출시하여 해외 바이어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선일금고는 '루셀' 금고의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 다양한 국가의 전시회에 참가하는데, 2008년 처음으로 인테리어 개념의 루셀 금고를 해외 전시회에 내놓았을 때 바이어들은 대부분 '환상적이다', '아름답다'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바이어들이 원했던 것은 '루셀'이 아니라 이 제품에 자기들의 브랜드를 부착하는 ODM 방식이었다. 현지 소비자들의 '루셀'브랜드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 현지 바이어들의 투자를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후 자체 브랜드 마케팅의 중요성을 절감한 선일금고는 ODM이나 OEM의 경우에도 독수리 상표는 꼭 부착하도록 고집해 브랜드는 달라도 독수리 상표를 보면 선일금고에서 제작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선일금고 : 전시회를 통해 바이어의 반응을 파악하고 브랜드 마케팅 방향을 정립하다.

3. 계약을 준비하라

#디카팩 : 창업 후 첫 계약을 전시회를 통해 체결하다. 

디카팩은 2005년 설립된 디지털 기기 방수 케이스 전문 업체로 전 세계 60여 개국의 포토그래퍼가 선택한 가장 안전한 방수팩 브랜드이다. 디카팩은 2005년 4월에 법인을 설립한 후 6월에 방수 케이스를 제작하여 워터파크에 제안했지만 거절당한다. 신생 브랜드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첫 계약은 엉뚱한 곳에서 들어왔다. 디카팩은 판로를 찾으려고 애쓰던 2005년 10월에 강원도의 지원으로 G-FAIR Korea에 참가하였는데, 이곳에서 해외 진출의 결정적 계기가 된 태국 바이어를 만났다. 태국에는 매년 3월 말에서 4월 초까지 '송크란'이란 물 축제가 열리는데, 이 축제에 판매할 목적으로 태국 바이어가 11월에 3천 개의 방수 케이스를 주문하였다. 이것이 디카팩의 첫 해외 수출이었다. 이 수출을 계기로 디카팩은 2006년 러시아 수출, 수출유망기업 선정에 이어 2005년 거절당했던 국내 워터파크에도 입점 계약을 체결했다. 지금은 방수 기술을 바탕으로 디카팩 액션 카메라 장비, 아쿠아슈즈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였으며 연간 20회 이상 국내외 전시회를 통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디카팩은 고유의 방수 기술을 바탕으로 전시회를 통해 첫 계약을 체결했다.

4. 고객을 관리하라

#해피콜 : 제품 판매보다 바이어의 검증이 더 중요하다. 

해피콜은 양면 프라이팬으로 TV 홈쇼핑에서 소위 대박을 친 회사이다. 해피콜을 이끌고 온 원동력은 단연 독특한 특허기술과 성공적인 해외 시장 진출이었다. 특히 해외 시장 진출은 1999년 설립 이후 2년 만에 시작되었다. 독일 Ambiente 전시회와 미국 최대 주방용품 전시회인 IHHS(Int'l Home and Houseware Show)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는데, 특히 Ambiente의 메인 전시회는 평균 10년 정도를 기다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2년 만에 입성해 품질의 우수성을 입증받기도 하였다. 

해피콜은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해외 진출 초기 에이전트에 많이 의존했다. 그러나 에이전트가 자금력 등의 문제로 오히려 현지 마케팅에 방해가 생기게 되자, 2012년부터는 오래 같이 할 수 있는 전략적 파트너를 선정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그래서 전시회를 통해 수많은 에이전트의 제안을 받지만 무조건 판매하거나 OEM 생산을 배제하였고, 전시회에서 만난 바이어를 회사의 규모나 판매 전략이 있는지를 따져 1단계 Screening, 2단계 직접 회사 방문으로 추후 에이전트를 선별하였다. 

해피콜은 전시회에서 만난 에이전트를 2단계에 걸친 Screening을 통해 파트너로 확정한다. 

5. 기업 라이프사이클에 따라 전시회 참가 목적을 수정하라

#라비또 : 수주보다 기존 바이어에게 신제품을 소개하는 게 더 중요하다. 

끝으로, 전시회가 창업의 계기가 되었지만 기업의 성장에 따라 전시회를 바이어 관리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기업도 있다. 라비또는 2010년 영국 디자인 전시회에 프로토타입의 토끼 귀 모양의 스마트폰 케이스를 출품한 것이 계기가 되어 창업한 회사로 유명하다. 곽미나 대표가 학교에 다니던 중 시험 삼아 만든 제품이 바이어 눈에 띄어 영국, 미국 등에서 라이센싱 계약이 쇄도한 것이었다. 라비또는 100% 자체 브랜드로만 수출을 하고 있다. 기술력보다 디자인에 경쟁력이 있어 OEM보다 직접적인 브랜드 진출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라비또는 전시회에 나갈 때도 한국관보다는 독자적인 부스를 선호한다. 한국관은 공동관 형태로 라비또만의 독특한 디자인을 보여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창업 초기 라비또 브랜드를 알리고 판매 파트너를 만나기 위해 전시회를 참가했다면, 현재는 전시회를 통해 기존 바이어를 관리하고 신제품을 기존 바이어에게 소개하는 목적이 더 크다. 회사의 라이프 사이클에 따라 전시회의 참가 목적이 달라지는 경우이다. 

라비또는 수주보다 바이어와의 관계 구축을 위해 전시회에 참가한다.

위의 5가지 사례는 전시회 참가 목적에 따라 한국의 기업들이 어떻게 전시회를 활용하는가에 대한 참고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기업의 해외 시장 진출 목적이 달라지면 전시회의 참가 목적도 달라져야 한다. 모든 기업이 똑같이 계약을 달성할 수도, 새로운 바이어를 발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기업 자체의 노력뿐 아니라 전시회를 지원하는 정부 기관도 전시 참가기업의 마케팅 전략에 따른 차별적 지원 계획이 실행되어야 한다. 그것이 불확실한 세계 경제 흐름에서 기업들이 자존(自尊)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일 것이다. 

이전 11화 오큘러스는 어떻게 부스 하나 없이 CES를 점령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